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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는 이른 아침인데도 활기를 띠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했고, 형사들도 서류를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 경장은 범인의 모습이 보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의 천장에 철사 줄로 드리워진 '수사1계'의 하얀 팻말이 먼지 냄새를 풍기며 흔들리고 있었다. 실내의 후덥지근한 공기 중에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대형 선풍기의 날개가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둔중 하게 공기를 때려댔다. 담당 공안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어깨를 툭 두드렸다.

"범인이 어디 있는 겁니까?"

형사는 대답대신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켜 보였다. 범인은 유치장과 맞닿아 있는 구석진 책상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김 경장은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덥수룩한 머리에 소매가 없는 셔츠는 낡아 땟국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범인은 건장한 체구였다. 움푹 파인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얼굴에 일자로 꽉 다문 입술에 핏기가 사라져 있었고, 작고 날카로운 눈에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사이 형사가 범인 앞의 책상에 마주 앉았다. 김 경장은 그 옆에 선 채 어조를 높여 물었다.

"왜 한국인 교수를 죽인 거야?"

하지만 범인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김 경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입가에 비씩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 웃음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것이었다.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그 자를 죽인 거야?"

하지만 범인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김 경장을 쏘아보다가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김 경장이 두 손을 허리에 가져가며 물었다.

"이 자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오. 이미 범행 일체를 우리에게 자백을 했소이다."
"그런데 왜 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죠?"
"댁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챘나 봅니다."

형사는 앉아 있는 범인을 일으켜 유치장으로 데려갔다. 범인은 살인혐의로 잡혀왔으나 두려워하거나 초조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김 경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형사 반장을 찾아갔다. 그는 범인에 대한 조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김 경장이 물었다.

"어떻게 저 자를 잡은 것입니까?"

"동네 우범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거동한 수상한 자들을 족치자 저 놈이 자백을 하더군요."

"자백만 가지고 범인으로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도 저 자와 일치하였소."

문득 김 경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문이라니요? 사건 현장에서는 어떠한 지문도 나타나지 않았잖아요?"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나중에 현장을 다시 조사를 해보니 문손잡이 쪽에서 옅은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소. 저 자의 것과 정확히 일치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분명 현장에는 그 어떤 지문도 없었어요. 범인은 분명 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질렀다 말이오. 그런데 난데없이 지문이라니…."

"말도 안 된다뇨? 그럼 우리가 생사람을 잡아놓고 범인으로 꾸미고 있단 말이오?"

"난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소이다. 이건 분명 단순한 살인 강도 사건이 아니란 말이오. 안 박사의 살인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도 죽은 것을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뒤에 어떤 거대한 세력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형사는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아무튼 우린 한국인 박사를 살해한 범인을 잡았습니다. 때문에 댁의 임무도 이제 끝이 난 것이죠. 그렇지 않아도 영사부에서 연락이 왔소이다. 당신의 비자 만료기간이 끝이 났기 때문에 댁의 나라로 가셔야 겠습니다."

"난 갈 수 없소. 범인의 잡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 문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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