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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장과 동시에 앉아 있던 형사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가까이 다가온 자는 바로 공안청의 외사부 부부장인 양만춘이었다. 그는 말끔한 양복차림에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있었다. 예전에 보았을 때와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한쪽 손으로 안경을 매만지며 손을 내밀었지만 김 경장은 애써 외면했다. 그러자 양만춘이 그 옆의 의자에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김 경장을 건너다보았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비록 살인범은 우리가 잡았지만, 댁의 그 열성은 우리 정부에서 높이 평가하는 바이오."

김 경장이 문득 어조를 높였다.
"저 자는 살인범이 아니오. 안 박사는 단순한 강도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게 우리 중국 공안을 무시해선 곤란합니다. 이미 이쪽 공안 쪽에서 조서를 작성하여 우리에게 넘긴 상태입니다. 상황은 모두 종료 된 거죠. 댁은 애초부터 이 수사를 지켜보기 위해 왔던 것이 아니오? 상황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난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우리 대사관에 연락해주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시죠. 이미 한국에서도 당신이 속히 돌아오길 원하고 있소이다. 왜 양국 사이에 끼어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오? 강제로라도 송환하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오."

"강제 송환이라뇨?"

그렇게 묻는 사이 양만춘과 함께 온 두 명의 사내가 김 경장의 두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양 겨드랑이 사이를 밀착하여 압박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렇게 외쳤지만 두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잡은 기다란 손으로 김 경장을 복도로 끌어냈다.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댁을 위한 비행기 표를 준비해놓았소이다. 지금 이 사람들의 안내로 곧장 공항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오? 난 대한민국 공무원이오. 이런 법이 어디 있다 말이오?"

하지만 양만춘은 아무 표정 없이 다른 사내가 건네준 가방을 손에 들어 보였다.

"이건 호텔에서 가져온 당신 짐이오. 함께 보내드리도록 하죠."

김 경장은 두 남자 사이에 끼어 복도를 걸어갔다. 두 남자는 그의 팔을 꽉 쥐고 있었다. 그들의 엄지손가락으로 팔의 급소를 눌러, 김 경장은 마비되는 듯한 고통으로 의식이 몽롱해왔다. 양만춘의 목소리가 겨우 들릴 정도였다.

"우린 난폭하게 굴고 싶진 않소. 안 그렇도록 해주시오. 알겠소?"

경찰서 건물로 나온 김 경장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김 경장을 떼어내 힘 안들이고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둘이 양쪽에 나란히 올라타 잽싸게 차를 출발 시켰다.

김 경장은 뒷좌석에서 몸을 틀어, 차 뒤 유리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유리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갖다 대자 따가운 햇빛에 반짝이는 경찰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앞에 양만춘이 나와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옆으로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듯 했다.

경찰서에서 공항까지의 거리는 가까웠다. 20분 정도 달려가자 멀리 공항 청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암담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청사의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 자신이 중국에서 추적한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른다. 박사를 죽인 범인도, 박사가 숨겨놓은 유물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기로 다시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자신의 입국을 막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을 강제로 출국시키는 것도 어떤 의지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많았다. 김 경장은 이 일에 어느 선까지 개입 되었는지 몰라 답답했다. 그 개입된 윗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박사를 죽인 범인과 연결된 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강한 의욕이 생겨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자신은 꼼짝없이 중국에서 쫓겨날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차가 멈추자 김 경장을 꼭 붙잡고 차에서 내려 곧장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심양공항 국제선 청사 앞은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과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출국 수속이 한창인 청사 내부는 여행객들로 혼잡했다. 온통 원색의 옷차림 물결 속에 뒤섞여 김 경장은 두 남자의 압박 속에 청사 안으로 걸어갔다.

출국장에는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내들의 팔에 끌려 곧장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비행기 표는 준비되어 있었다. 한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김 경장의 가방을 건네주었다.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댁의 나라에 가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출국 심사장 앞으로 밀어 넣었다. 미리 이야기를 해놓은 덕분인지 김 경장은 별다른 절차 없이 출국장을 통과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두 사내가 씩,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김 경장이 비행기에 올라타는 걸 끝까지 지켜볼 요량이었다.

김 경장은 천천히 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미간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는지 피가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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