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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10년만의 외출이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호주머니에 교통비만 있으면 홀로 여행을 떠났던 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벽면 수행자처럼 오로지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도 늘 가족과 함께 떠났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가족과 함께 떠날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처가에 일이 있어 아내와 아이들은 처형 댁으로 한발 앞서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지난 한 달 내내 뭐 빠지게 일을 했습니다. 평소 보다 두 배가 넘는 일을 했습니다. 한쪽 팔이 마비될 정도로 미련 곰탱이처럼 부지런히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야 했습니다. 적게 벌어먹고 산다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벌었습니다.

큰 맘 먹고 여행지를 제주도로 정했습니다. 제주도 여행은 세 번째였지만 비행기는 처음 타 보았습니다.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는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좋았습니다. 창 밖에 시선을 두지 않거나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돈을 지불하고 멀뚱멀뚱 놀이 기구만 구경하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제주도는 뭉게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군산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너무나 짧고 아쉬운 비행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아는 분들이 여럿 있었지만 미리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혹여 나 때문에 일상이 어긋나지 않을까 싶어서 였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하늘연꽃'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연꽃'은 성읍 민속촌과 표선 사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전통 찻집의 이름인데 찻집이라기보다는 마당 너른 일반 가정집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 하늘연꽃에서 바라본 노을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 송성영
화산돌로 바람막이를 한 크고 작은 밭들과 그 사이로 억새들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는 너른 벌판, 그 한 가운데, 오롯이 자리한 '하늘연꽃'. 그 너른 벌판에 50미터쯤 솟아올라 앞으로는 멀리 수평선이, 옆으로는 저만치 듬직한 한라산이 보입니다. 또한 지평선 끝으로 기가 막힌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온통 산으로 막혀 있는 우리 집 주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다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명당자리라 할지라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이 곱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10년만에 홀로 여행을 떠나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사람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선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 집, 주변에 민가 한 채 없는 '하늘연꽃'의 주인은 황규현씨와 안수정씨. 이들 부부와 이래저래 기분좋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묵어 가는 곳입니다. 우리 식구 역시 지닌해 이곳에서 사흘 밤낮을 머물었습니다.

억새 밭 사이 길에 버려진 감귤을 까먹으며 '하늘연꽃'에 도착했을 때 안 선생은 간발의 차로 대구로 떠났고 황 선생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눈빛이 맑은 안 선생은 어린아이처럼 장난 끼가 많은 사람입니다. 묵언승처럼 말수가 거의 없는 황 선생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이건 내내 조용한 미소만 건냅니다. 황 선생은 그 미소로 반기며 나를 차실로 이끌었습니다.

▲ 제주도 화산돌과 황토흙으로 빗어 만든 하늘 연꽃 차실
ⓒ 송성영
'하늘연꽃'은 너른 마당을 앞에 두고 안채와 손님들이 머물고 가는 사랑채와 차실, 세 채로 꾸며져 있습니다. 안채는 전통 한옥에 가깝고 사랑채와 차실은 제주도 화산돌과 황토흙으로 벽을 세우고 억새로 지붕을 이은 제주도 전통 초가입니다.

차를 내는 황 선생은 1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낡은 조끼를 걸친 소박한 옷차림도 그대로 였고 조용한 미소도 그대로 였습니다. 우리는 마주 앉아 조용한 음악을 들어가며 차를 마셨습니다. 나흘 내내 차를 마셨습니다. '하늘연꽃' 사랑방에서 잠을 자고 염치없이 그가 차려준 밥을 먹어가며 나는 아주 뻔뻔하게도 나흘 낮밤을 보냈습니다.

▲ 하늘 연꽃 장독대 주변에 핀 수선화
ⓒ 송성영
아침 산책을 다녀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갑자기 눈 내리는 한낮에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어쩌다 장작을 패고 나서 저녁밥을 먹고 또다시 차를 마셨습니다. 저녁나절에는 언제나 노을이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습니다.

황 선생은 밥을 하고 나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는 나흘 내내 내게 밥을 해줬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사흘 낮밤을 같이 지내면 미소가 흐트러지기 쉽상인데 그는 첫 날 반겼던 그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나는 본래 쑥스러움을 잘 타 친척집이나 친구 집에 이틀 이상을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지난해 열흘 간의 제주 여행 중에 사흘 낮밤을 '하늘연꽃'에서 신세를 졌을 때는 성격이 활달한 아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기에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 송성영
사실 지난해 처음 이곳 '하늘연꽃'에 왔을 때도 선뜻 마당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밖에서 뱅뱅 돌던 나였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였는데도 나흘 낮밤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황 선생을 만난 것은 평생을 통 털어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흘 내내 그가 해주는 밥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설거지뿐이었습니다. 다만 우리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러하듯이 몇 킬로그램 짜리 쌀 한 포대에 어쩌다 통나무를 실어와 사랑방을 덥힐 만큼의 장작을 패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끼질도 그가 한 수 위였습니다. 장작을 패는 데도 그는 두 서너 차례 휘두르면 기분 좋게 쪼개지는데 나는 씩씩거리며 대여섯 차례를 찍어야 했습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도끼질을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8년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그는 20년이 넘었으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그는 제주도로 들어오기 전에 경주 토함산 자락 깊숙한 오지에 터를 잡았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에 황무지를 개간해 텃밭을 일구고 100여 통의 토종벌꿀을 치면서 생활하다가 부인 안수정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의 소박한 삶과 손 큰 인정에 끌려 찾아오는 사람들의 꽤 많았습니다. 우리 식구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먹여주고 재워줬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손님들이 찾아와 이들 부부는 하루종일 나무를 해야 할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허름한 농가 두 채에 이들 부부가 몇 년에 걸쳐 직접 만든 차실을 합쳐 모두 다섯 군데에 아궁이 불을 지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지금도 역시 그때의 연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가 봅니다.

▲ 차실에 눈이 쌓이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맑아졌습니다.
ⓒ 송성영
저녁 나절 '하늘연꽃' 차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차실 왼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허허벌판 지평선 너머로 환장할 지경으로 아름다운 노을이 집니다. 보석에 눈먼 사람들처럼 나 또한 눈이 멀도록 노을을 봅니다. 노을을 보다가 그도 웃고 나도 웃습니다. 그는 한라산 삼다수 맑은 물을 차 주전자에 끓여 말없이 차를 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합니다. 묻는 말에 속 시원하게 대답도 하지 않고 웃고만 있어 답답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좋습니다. 말없는 그의 미소에는 차 향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 노을 빛이 들어온 차실
ⓒ 송성영
그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향기가 있습니다. 그가 미소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없음에 나는 가끔씩 오장육부가 뒤틀려 있는 내 안을 들여 다 봅니다. 10년만의 화려한 외출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아내와 자식들에게 발목을 잡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외출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자유롭고 싶어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여 과연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지 자식으로부터 아내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뿐입니다. 결코 나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얽어 메고 있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연꽃'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붙임성 좋은 삽살개 '호동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처럼 '호동이'도 털보입니다. 태어난 지 4개월 밖에 안 됐지만 나보다도 털이 더 많습니다. '하늘연꽃'에 손님이 찾아오면 나는 호동이와 놀았습니다.

▲ 붙임성 좋은 삽살개 호동이는 하늘연꽃 부부의 유일한 자식입니다.
ⓒ 송성영
호동이와 함께 사흘 내내 빈둥거리며 '하늘연꽃' 차실을 지켜본 결과 하루 두세 팀 정도의 차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입 소문을 통해 제주에서도 오고 뭍에 사람들도 제주 여행길에 찾아온다고 합니다. 차를 마시는 손님들이 얼마간의 차 값을 내고 또 전통차를 구입해 가는 것 같았으나 그것으로 생활하기에는 택도 없어 보였습니다.

경주 토함산 자락에서처럼 토종벌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나는 황 선생에게 차를 팔아 생활비라도 건질수 있는지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그는 생활을 위해 차실을 낸 게 아니라 단지 차와 사람이 좋아 차실을 냈을 뿐이니까요.

황 선생과 마주 앉으면 한 자리에서 세 가지 이상의 차를 마십니다. 그의 차실 '하늘연꽃'에는 국산차와 중국차 등의 많은 차가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녹차, 국화차는 물론이고 쉽게 맛볼 수 없는 차들도 많습니다. 녹차를 발효시킨 황차는 물론이고 보이차, 청차, 무이암차 등에 이르기까지 30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차가 있습니다. 모두가 손으로 만든 수제 차라고 합니다.

나는 그의 미소가 담긴 차를 마십니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치면 그냥 웃습니다. 더러는 농담을 한두 마디 주고받습니다.

"점점 수염이 허애 지네요. 지난 가을인가, 우리 집 큰애가 그러데요. 지덜 반 애가 니들 할아버지냐고 묻더랍니다. 야, 니덜 할아버지 운전 잘 한다 그랬답니다."
"저는 목욕탕에 갔더니, 어떤 아이가 형 등 좀 밀어 주세요 그러던데요."

그가 농담으로 말했지만 그는 나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흰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그의 머리는 이 삼십 대의 젊은이들 보다 오히려 검고 싱싱해 보입니다. 그의 치아는 찻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은 치아에 찻물이 들 정도로 20여 년 동안 마셔온 전통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전통차를 처음 접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 절 집에 다니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군대에 다녀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 여행을 떠났다가 그 길로 복학을 접어두고 지리산에서 7년을 묵었다고 합니다(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그는 말문을 닫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얘기로는 수도자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절제된 차를 접했고 지리산에서 내려와 성품이 기이한 한의사를 만나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마시는 차'를 접했다고 합니다.

나흘째, 여전히 노을 속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그가 건네는 맑은 차는 노을처럼 고요하면서도 커피처럼 따듯했습니다. 젊은 시절 지리산 겨울 골짜기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마셨던 따듯한 커피 한 잔, 직장 생활에 지쳐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시간에 쫓겨가며 마셨던 자판기 커피 한 잔처럼 달콤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가 건네는 차의 이름은 모르지만 차에도 사람처럼 다양한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차들은 달콤했습니다. 맑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부드러웠습니다.

흔히들 전통차는 정신이 맑아지게 해주고 기운이 생기고 뜻을 세워 준다고 합니다. 사흘내내 전통차를 마신 결과 정신이 맑아졌는지 기운이 생겼는지 뜻이 세워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늘연꽃'에 오기 전에 심했던 어깨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어깨 통증이 없다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어쩌면 기분좋게 차를 마시다보니 어깨 통증이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전통차하면 정갈하게 잘 차려입은 한복이 떠오릅니다. 다선일여(茶禪一如)니 해가며 온갖 어려운 문구를 갖다 붙여놓고 온갖 예절을 강조하며 다구를 다루고 차를 따르고 엄청 조심스럽게 마시기도 합니다.

나는 태생이 촌놈이다 보니 그런 예절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런 숨막히는 격식은 오히려 전통차를 대중화시키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봅니다.

예절이 차 맛을 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차 예절은 단지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전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절에 매달리게 되면 되려 차 맛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차에 깨어있던 옛 선인들도 그런 격식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편하게 마시라 했다고 합니다.

▲ 하늘 연꽃 차실에 앉아 있으면 해가 뜨고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 송성영
어림잡아 예닐곱 평 정도에 불과한 초가, '하늘연꽃'의 차실은 아기자기한 다구들로 말끔하게 정돈된 정갈하고 깔끔한 공간이지만 격식이 따로 없어 좋습니다.

20여년 동안 전통차에 애정을 쏟아온 황 선생은 분명 전통차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옛 선인들의 말씀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수도자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차만 따릅니다. 차 주전자에서 찻물 끓는 소리, 차를 우려내고 찻잔에 찻물 따르는 소리만 냅니다. 거기에 감미로운 음악이 배고, 노을이 담기고 그의 미소가 뱁니다.

▲ 사흘 내내 눈이 멀도록 노을을 보았습니다.
ⓒ 송성영
돌아오는 비행기 안,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나도 모르게 합장을 했습니다. 승무원이 아주 좋아라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무렵 수고하시라고 나도 모르게 다시 합장을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묻습니다.

"어떤 인사법이에요…"
"그냥 하는 건데요."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그렇게 인사해 주니까 기분이 좋아서요."

승무원을 기분 좋게 해준 것은 내가 아니라 사흘 내내 마셨던 차 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몸에는 제주의 바다와 억새 밭, 눈이 멀도록 바라보았던 붉은 노을과 '하늘연꽃'의 차, 그리고 황 선생의 미소가 배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세상의 향기는 그렇게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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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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