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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이는 아직도 밥이 최고래요?"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에 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올렸는데, 우리 식구에 관련된 기사를 읽어 주시는 분들 중에 더러 인상이 안부를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밥과 연관지어 묻습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상이 하면 밥이 연상되는가 봅니다.

"인상아, 넌 뭐가 제일 맛있어?"
"밥유."

▲ 지난 3년 동안 독감 주사는 물론이고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간 일이 없는 인상이
ⓒ 송성영
<오마이뉴스> 기사를 뒤져보니까 <인상이가 밥을 좋아하는 이유>라는 기사를 올린 것이 2003년 2월 6일이더군요. 꼭 2년이 되었습니다. 녀석은 조만간 초등학교 3학년이 될 참인데 여전히 밥이 최고랍니다. 이제 좀 컸다고 예전처럼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더 이상 "밥해 줘서"라고 대답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밥을 가장 좋아하는 촌놈입니다.

우리 집 애들은 눈이 오면 개 사료 포대로 눈썰매를 탑니다. 인상이 녀석은 눈썰매를 타다가 비탈길에서 거꾸로 곤두박질쳐 이마에 피가 맺힐 정도로 생치기가 나도 헤벌쭉 웃어가며 신나게 눈썰매를 타는 씩씩한 생촌놈입니다.

얼마 전 녀석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내리막길을 힘차게 뛰어 내려가다가 발목이 꺽였던 것입니다. 발목 부위가 심하게 부어 올라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늘어나 3주 동안 깁스를 하고 다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녀석은 일주일도 채 안 돼 깁스를 풀었습니다.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돌아온 다음날부터 약은 물론이고 병원을 접어두었습니다. 요즘 한창 침술을 배우고 있는 아내로부터 나흘간 침을 맞고 깁스를 풀었던 것입니다. 아내의 침술이 한몫을 단단히 했겠지만 3주 진단을 받은 녀석이 나흘만에 깁스를 벗어 던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녀석의 '유별난 힘'은 죄다 밥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삼손이 머리카락에 힘의 근원이 있다면 우리 집 인상이의 힘은 바로 밥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전통 차와 함께 했던 '10년만의 외출'(이전 기사에 올렸습니다)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서울 이모네 집에 갔던 아이들과 아내가 동시에 돌아왔습니다. 다들 점심을 건너뛰다시피하여 저녁을 좀 일찍 차려 먹던 밥상머리에서였습니다. 급히 차린 밥상이라 김치에 김 쪼가리가 전부였는데 인상이 녀석은 거듭 밥공기를 내밀었습니다.

"엄마, 나 밥 더 줘."

녀석은 두 공기째가 아니라 세 공기째 밥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저지하고 나섰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구먼, 고만 먹어."
"그래, 이따가 밤에 출출하면 엄마가 간식으로 줄게."
"그람 이따가 간식 줘야 해."

아내가 주겠다는 간식이란, 밥입니다. 인상이 녀석도 그 간식이 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밥을 간식거리로 먹는 녀석 봤습니까? 녀석의 머리통이 굵어진 만큼 밥에 대해 '조예'가 깊어졌다고 할 수 밖에요.

▲ 완전무장한 인상이. 아빠가 만들어 준 매끈한 때죽나무로 만든 목검에 활, 부지갱이였던 단검까지 찼다
ⓒ 송성영
그동안 인상이와 밥과 얽힌 얘기는 엄청 많지만 그 중 사람들에게 종종 재미 삼아 얘기하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아마 작년 봄이었을 것입니다. 녀석이 마당에 들어서며 "학교에 다녀왔습니다"에 토를 달았습니다.

"엄마, 나 오늘 일등했다!"
"뭐? 일등!"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우리 부부가 참교육 운운하며 지 아무리 아이들 등수 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자식놈이 일등을 했다는 소리에 '참교육'이고 뭐고 순간, 눈에 뵈는 게 없더군요. 반에서 홀로 백점이라도 맞았나 싶었습니다.

"백점 맞았냐? 니들 반 오늘 시험 본 겨?"
"아니, 전체에서 일등 했어."
"전체에서? 뭘루 일등했는디, 달리기는 아닐 테구."
"밥을 일등으루 먹었지."

녀석은 아주 진지하고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칭찬은 뒀다가 뭐하겠습니까. 부모 된 도리를 다했지요.

"그려, 잘혔어. 아주 잘 혔다. 우리 집 밥돌이가 최고여. 그려, 밥이 최고지..."

우리 식구가 살고 있는 곳이 계룡산 주변이다 보니 도 닦는 사람들이 더러 찾아옵니다. 계룡산에서 몇 년, 강원도 태백산에서 몇 년, 도합 10여년을 도 닦고 있는 어떤 후배가 그럽니다.

"내가 말유, 산에서 도 좀 딱겠다구 요것저것, 약초에 베라별 잡 곡식에 몸에 좋다는 거 먹을 만큼 먹어 보았지만 쌀밥만한 게 없더라구요."

그 이후로 그 후배 별명이 '쌀밥'이 됐는데, 그 후배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쌀밥만한 보약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옛날 옛적에 '마당쇠'가 이런저런 보약을 잘 챙겨먹어서 거시기한 '마님'에게 힘을 썼겠습니까? 보약을 먹게 되는 것은 몸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좋다면 따로 보약을 먹을 이유가 없고 또한 몸이 좋으면 쌀밥만 먹어도 충분히 건강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집 인상이를 보면 그렇습니다. 녀석은 태어나서 보약 한첩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에이, 비, 시, 디 알파벳이 들어가는 비타민 따위를 정기적으로 복용한 적도 없습니다. 3년 전부터는 독감주사조차 맞지 않았지만 감기 때문에 병원 신세 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다 '밥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 초저녁에 잠들면 시간과 장소 여하 불문하고 중간에 일어나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집 밥돌이, 인상이. 반찬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시장이 반찬입니다. 맹물에 밥 말아 김치 쪼가리 하나면 그만입니다.

▲ 검술이나 봉술, 궁술, 미술 등 술자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마시는 술도 좋아 하지만 이 술은 두모금 이상 마셔본 일이 없다.
ⓒ 송성영
녀석은 종종 아빠가 만들어 준 온갖 무기로 중무장을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아직 성치 않은 발목을 끌고 공터로 나섰습니다. 어깨에는 활을 메고, 허리춤에는 부지갱이 쓰던 짤막한 목검을, 손에는 매끈한 때죽나무로 만든 목검을 들고 당당하게 나섭니다. 녀석은 목검으로 흔히들 24반 무예로 알려져 있는 '경당'을 연마하기도 합니다.

사실 녀석은 경당 사범으로부터 정식으로 배운 경당보다는 홀로 그림자를 보고 연마했다는 검술과 봉술을 더 잘합니다. 목검과 긴 장대를 보기 좋게 휘둘려대다가 가끔씩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쳐서 탈이지만 말입니다.

녀석은 봉술이나 검술만을 연마하는 게 아닙니다. 때론 폼나게 활시위를 당겨 대나무 숲을 향해 함부로 화살을 날려 보기도 합니다. 자식새끼 전쟁터에 내보낼 일이 있냐구요? 그냥 목표물 없이 놀이 삼아 재미로 하는 거지요. '밥심'으로 살았던 그 시절, 흙에서 자란 촌놈들이 다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인상이 녀석이 밥 잘먹는 돌쇠처럼 힘쓰는 일만 죽어라 하는 게 아닙니다. 녀석의 주특기인 그림 그리기를 비롯해 레고 놀이나 공기돌 놀이 등에도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무엇으로요? 그야 '밥심'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기사를 다 쓰고 나서 밥 먹는 자리였습니다.

"생각해 보니께, 인상이는 술자 들어가는 거는 다 잘하는 거 같혀, 검술, 봉술, 궁술에다가 미술도 잘하고, 거기다가 마시는 술도 잘하지(녀석은 술을 두 모금 이상 마신 적이 없지만 아빠가 어쩌다 술을 마시면 옆댕이에 바싹 붙어 앉아 쩝쩝 거리며 입맛을 다십니다). 또 엄마가 하라는 대로 침을 콕콕 잘 찔러 넣으니까 침술도 잘하지..."

"심술도 잘 부리지."

큰 아이 인효 녀석이 한마디 거듭니다. 인상이 녀석은 다른 아이들한테는 군자가 따로 없는데 꼭 형에게만 심술을 부립니다. 이것도 술은 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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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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