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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 근처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잉카의 젖줄은 어디에 있을까?

그곳은 바로 우루밤바 강. 주변에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비롯하여 중추적인 도시들이 주변에 발달해 있는 이 강은 신성한 태양의 진로를 따라 동서로 흐르는 성스러운 강이라 하여 예부터 잉카의 젖줄로 간주되어 왔다고 한다. 이 강은 피삭(Pisac), 우루밤바(Urubamba), 올란타이탐보(Ollantayambo)를 거쳐 마추픽추 너머까지 길게 뻗어 있다.

드디어 잉카의 젖줄인 성스러운 계곡을 순례하는 날.

이른 아침, 배낭 질끈 동여매고 버스에 올라탔다. 쿠스코를 떠나 북쪽으로 달리길 10분여. 주변에 알록달록한 빛을 내는 드넓은 평원과 만년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안데스 산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나라보다 하늘이 가깝게 닿아 있어서 일까?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들이 맑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 우루밤바 강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절경
ⓒ 배한수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에 빠져 한 시간여를 달리니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하천에 흙탕물이 흘러 내려오는 강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우루밤바 강. 이렇게 우루밤바 강은 기나긴 안데스 산맥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었다.

▲ 거센 물살이 흘러 내려오는 우루밤바 강
ⓒ 배한수
우루밤바 강을 따라가다 다리를 하나 건너니 '성스러운 계곡 순례'의 첫 기점인 피삭(Pisac)이 나타났다. 버스에서 내려 제일 먼저 간 곳은 주말마다 열린다는 민예품 시장. 시장 입구를 들어서니 온갖 총 천연색 옷감과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특히 각종 문양이 알록달록 수놓인 원주민 전통 의상은 시선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 피삭 민예품 시장
ⓒ 배한수
시장에서 한창 전통의상 구경을 하다 밖으로 빠져나오니 인근 부락에 사는 인디오 꼬마 아이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모여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그렇게 푼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갑자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돈을 달라고 하가에 큰 맘 먹고 1솔(Sol=페루의 기본 화폐단위)을 건네자 아이가 "땡큐 베리마취"하고 말하며 다시 무리속으로 돌아간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귀여운 어린 아이가 이렇게 나와서 구걸을 하고 있다니, 한편으로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 관광객을 기다리는 인디오 꼬마 아이들
ⓒ 배한수
시장 구경을 마치고 민예품 시장과 더불어 피삭에서 유명하다는 마을 정상 잉카 유적지로 향했다. 본격적인 성스러운 계곡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오르는 길은 정말 만만치가 않다. 안 그래도 고산지대인데 언덕길을 굽이굽이 두 시간여 올라가니 머리가 아프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멀찌감치 내려다 보이는 전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낀다.

한 시간여 걸었을까. 산 모퉁이를 하나 돌자 드디어 유적지가 나타났다. 계단식으로 깎아놓은 경작지 정상에 돌을 겹겹이 쌓아 방처럼 만들어 놓은, 잉카제국의 전통적 석조 양식을 볼 수 있는 그런 건축물이다.

▲ 계단식 경작지 위에 만든 피삭 유적지
ⓒ 배한수
"겨우 이거 보려고 두 시간을 걸어 올라왔어?"

기대했던 것보다 그 초라한 규모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유적지로 들어가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일부는 무너져 있는 곳도 있었지만 건축물 구조 대부분 긴 시간의 흐름에서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돌을 쓰다듬으며 방에서 방으로 연결된 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잉카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 피삭 유적지 내부
ⓒ 배한수
유적지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올란타이탐보(Ollantayambo)로 향했다. 두 시간을 고산지대에서 헤맸더니 배도 고프고 기운도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까 산 빵 조각을 꺼내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까 민예품 시장에서 원주민이 사달라고 애걸하기에 한개 샀던 별로 맛없어 보이던 그 빵의 맛이 정말 놀랄 만큼 기막힌 게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한 개 더 살 걸.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벌써 올란타이탐보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앞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계단형 농경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이곳은 우루밤바 강의 중심이자 쿠스코에서 88km 떨어진 곳에 있는 망코 잉카 최후의 요새라고 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가에 우리나라 성터 같은 석벽과 성문이 있으며 주변 산에는 많은 유적이 널려 있다.

밭 양측에 나있는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넓은 광장이 눈앞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광장 주변에는 아름다운 잉카의 석조물들이 주변 풍경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 올란타이탐보의 계단식 밭
ⓒ 배한수
광장에는 사람 키의 두 배 만한 커다란 돌 6개를 세로로 세워 늘어놓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중 돌 하나는 맞은 편 산 채석장에서 운반해 왔다고 한다. 어떻게 3000년 전에 이 가파른 V자 협곡으로 이 커다란 돌을 운반해 왔는지, 이번 순례를 하면서 정말 돌 만큼은 잉카인들에게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리고 말았다.

▲ 6개의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
ⓒ 배한수
광장에서 보이는 강 건너 앞에는 산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이 산의 능선을 보다 보니 산 중앙에 네모난 사격 표적지 같은 유적지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변 사람에게 물으니 잉카시대에 곡물을 저장했던 창고라고 한다. 경사가 거의 60도는 될 것 같은 저런 곳에 유적지가 있다니, 보는 것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산 중턱에 위치한 사격 표적지 모양의 유적
ⓒ 배한수
그런데 안내인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기니 산 한 지점에 정말 커다란 바위가 눈에 띄었다. 한참 동안 설명을 들으며 시선을 가다듬었더니 곧 사람의 옆 얼굴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전해져 내려오기를, 그것은 바로 잉카의 가장 위대한 창조신 '비라코차'의 모습이라고 한다.

▲ 비라코차의 얼굴이라 불리는 바위
ⓒ 배한수
더욱 신기한 것은 태양의 각도로 음영이 변함에 따라 저 비라코차의 눈이 감겼다 떠졌다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잉카제국은 이미 오래 전 멸망했지만, 그 석조 건축물들은 세월의 풍파에도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페루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이 건축물들이 수 백년 세월을 견뎌내며 남아있는 것은 혹시 잉카의 신 비라코차가 여전히 잉카제국을 지켜주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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