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할아버지의 유일한 거처인 왕숙천변 움막
할아버지의 유일한 거처인 왕숙천변 움막 ⓒ 송영한
아파트 촌에 웬 움막?

경기도 구리시의 수택고등학교 뒤 편 왕숙천 둑 밑에 한 평이 채 안 되는 움막이 있다. 움막의 주인은 올해 77세의 김조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40여 년 전에 할머니를 여의시고 슬하에 자녀들도 없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식구는 매미라고 부르는 삽살개 한 마리뿐.

할아버지는 이곳 수택동에서 30여 년을 살아오셨단다. 30년 전이라면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곳이 온통 농사짓는 비닐하우스로 덮여 있을 때인데 같이 살던 사람들이 모두 다 떠난 지금까지 움막을 치고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지"

유일한 식구인 삽살이
유일한 식구인 삽살이 ⓒ 송영한
<"그 때 같이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보상을 받거나 임대아파트를 받아서 나갔어. 나는 누가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글을 아는 자식들도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살던 집이 헐리게 된 게지.

작년까지는 그나마 헐리고 남은 가건물에 의지해 살았는데 작년에 완전히 헐려버려서 할 수 없이 움막을 치게 되었어. 딱히 갈 데도 없는데 30년이나 살아온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잖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이제 콘크리트 숲으로 변해버린 주변 환경이 적응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따뜻한 이웃들이 있어 이제까지 살아가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단다.

"주변은 변했지만 인심은 변하지 않았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다 이기적이지는 않아. 입을 옷을 가져다주는 사람, 반찬이며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사람, 매미와 내가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하지만 세상인심은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만큼 수월하지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미 동사무소에서 불법거주자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있었다. "매년 2번씩 주민등록 일제정리를 하는데 할아버지가 계시는 주소에 거주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소하게 되었다"고 전하는 동사무소 직원은 "인근 아파트에서 움막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시청으로 많이 접수되고 있어서 시에서도 더 이상 방치하고 있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됐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이미 기초생활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어 생계를 위지하기가 힘들어졌다.

"동사무소에 갔더니 주민등록이 말소 되었다고 이번 달 생계비를 안 줘. 날도 추워지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내가 이래봬도 참전 유공자야"

참전 유공자증
참전 유공자증 ⓒ 송영한
"이래봬도 내가 참전 유공자인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유공자로 인정해서 한 달에 6만원씩 주던 연금도 주민등록이 말소 되었다고 주지를 않아. 저녁이면 복지관에서 배달해주던 도시락도 끊어버리고."

할아버지의 양 아들로 자처하며 자주 움막에 들러 돌봐주고 있다는 강아무개씨(48)는 "어디든지 전입신고 하고 나서 전월세계약서만 제출하면 주민등록을 원상복구 해준다니까 11월초에 일단 저희 집으로 모실까 한다"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이렇게 대접해야만 하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지는 해처럼 사라지겠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사는 날까지 남에게 민폐나 끼치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지는 해에 비친 할아버지의 힘없는 눈동자에 물기가 반짝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