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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살인사건(殺人事件)

첩실들이 기거하는 곳은 손가장 내원 뒷쪽에 위치한 상화각(相和閣)이었다. 서로간에 질투를 하지 말고 화합하여 살라는 뜻으로 경여가 직접 이름 붙였다. 그 이름 덕분이었는지 경여의 능력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적지 않은 첩실들은 서로 투기하지 않고 서로 언니 동생하며 사이좋게 지냈다.

상화각에는 소각(小閣)을 십여개 지어 놓고 그 중 하나에 첩실 한명이 그에 딸린 시비 한명과 같이 기거했다. 수화의 거처는 상화각 네 번째 소각(小閣)에 있었다.

“.........!”

이미 도착한 경여는 방안의 끔찍한 모습에 현기증이 나는지 손으로 머리를 집고 그 방을 지키고 있던 수화의 시녀인 아취(娥翠)와 경여를 모시고 왔던 아앵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당신은 이만 가서 쉬시오. 이곳은 내가 처리하리다.”

손불이는 얼른 자신의 아내를 안고 마당으로 내려 섰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시비 두명에게 아내를 맡겼다.

“어떻게 우리집에서 이런 일이...”
“얼른 마님을 모시고 쉬시게 하거라. 쯧... 몸도 약한 사람이...”

그의 아내는 젊었을 때의 고생으로 몸이 항상 안 좋았다. 갈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갈유와 전연부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시녀가 말한 그대로였다. 방 대들보에 줄을 걸고 수화는 목을 매단 채 축 늘어져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약간씩 흔들렸다. 발 아래는 화장할 때 앉는 의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목을 매달고 의자를 발로 차 버린 것 같았다.

언수화(彦秀花)는 고의나 젖가리개 등을 걸치지 않았는지 속옷인 나삼(羅衫)을 입은 그녀의 몸이 다 비춰 보였다. 아침결에 들어오는 햇살에 심지어는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과 아랫배 음모도 훤히 비춰 보일 정도여서 여인의 규방 내음과 함께 들어온 두 사람을 민망케 했다.

“허...이런 일이 어쩌다 일어났누. 수화는 이리 죽을 사람이 아닌데...”

손불이는 혀를 차며 차마 언수화의 시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첩실 중에서 항상 웃음을 띠고 밝은 표정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때문에 경여는 손님을 맞을 때 언수화를 시키곤 했다.

갈유는 따라 온 전연부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수고 좀 해 주겠나?”
“그러시지요.”

전연부는 훌쩍 뛰어 줄이 매달려 있는 대들보로 올라섰다. 줄을 풀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왠일인지 품속에서 조그만 비수를 꺼내 줄을 자르며 시신을 안아 들어 내렸다.

갈유는 언수화의 시신에서 목에 걸린 줄을 풀어 내다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상하군.. 이상해.... ”
“갈대인께서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자네 보기에도 그런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목을 매달지는 않은 것 같군요.”

전연부는 이런 것에는 전문가다. 그는 무수한 시체를 보았고, 그 시체로부터 단서를 얻어 어려운 사건을 풀어낸 적이 많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경여를 시녀들에게 부축하게 하여 보내놓고 들어 온 손불이가 묻는 말이었다. 갈유는 언수화의 목에 선명히 나타난 밧줄 자국을 가르켰다.

“언씨가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면 목 앞에서 귀밑 쪽으로 길게 사선이 나타나야 정상인데, 줄 흔적이 목 주위에 일정하게 나 있는 것 보이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갈유는 손불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언수화의 목에서 풀어낸 밧줄을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 뒤로 밧줄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해 보였다.

“자 보게나. 사람이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게 되면 뒤의 매듭을 완전하게 조이기 어려워. 그 때문에 매달리게 되면 길게 귀밑 쪽으로 사선이 생기지. 하지만 누군가 사람을 죽인 후 자살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매단 것이라면 이렇듯 뒷매듭을 조였을 테니 목 주위로 일정하게 흔적이 나는 것이지.”

그제서야 손불이는 이해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자살이 아니라 하기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모습을 본 전연부가 말을 이었다.

“간단한 것이지만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이 목을 매달려고 줄을 대들보에 걸 때는 몇 번 던져 보고 잘 걸렸는지 확인합니다. 아무리 잘 던져도 한번 만에 대들보에 걸 수는 없지요.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가 불안한 탓이지요. 더구나 의자 위에 올라서게 되면 줄을 고정시킬 때 아무래도 줄이 이리저리 움직이게 되는 게 상식적인 일입니다.”

“헌데...?”

“대들보 위쪽에는 먼지가 쌓여 있어. 그렇게 되면 먼지가 많이 떨어지게 되지요. 방바닥에는 먼지가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위쪽에는 오직 이 줄이 걸린 부위의 먼지만 사라졌을 뿐 다른 자국이 없습니다. 한두번만에 줄을 던져 매듭을 만들었다는 증거지요.”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전연부가 대들보를 올라갔다 내려온 모양이었다. 대들보에 걸려 있는 줄을 풀지 않고 그냥 줄을 잘랐는지 그제서야 손불이는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게 보통입니다. 헌데 이 방은 전혀 그렇지 않군요.”

전연부의 시선은 한쪽에 놓인 침상에 이불이 접히고 한쪽 끝은 방바닥에 닿아 있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대부분은 주위를 정돈한다.

갈유는 그녀의 손톱 및 목주위, 그리고 그녀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그런 갈유의 행동에 전연부는 내심 감탄을 하며 자신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눈꺼풀에 일혈점(溢血點)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목 매달아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지.”
“그렇지요. 최소한 질식사는 아니라는 증거이지요.”

“도대체 자네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손불이가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말을 나누는 두 사람에게 답답함을 호소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게. 일혈점이란 질식사할 때 안결막(眼結膜)이나 피부, 점막 등에 좁쌀 크기의 피가 맺히는 현상이야. 목을 매달면 왜 죽겠나? 결국 질식사하게 되는 거야.”

일혈점(溢血點)은 질식사를 판명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질식사했다면 대체로 일혈점이 맺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손불이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언수화는 그에게 있어서도 요긴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살인줄 알았던 언수화의 죽음이 타살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거 무슨 일이 일어 난거야..?.”
“알고 싶으면 묻지 말고 가만히 있게. 전영반은 이런 쪽에 전문가야. 알아낼 수 있을거야.”

갈유는 안절부절하며 자꾸 보채는 손불이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알았어... 알았다구...”
“자네... 민망하지만 언씨 옷을 벗겨도 될까?”

죽었다 하더라도 손불이와 몸을 섞었던 여자다. 첩실이지만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허나 손불이는 혼쾌히 대답했다.

“좋도록 해.”

그 말에 전연부가 조금씩 조심스럽게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어깨도 채 가리지 못하는 상의와 훤히 비치는 치마다. 벗겨놓은 언수화의 몸은 시체였지만 정욕이 일 정도로 정말 풍만했다. 들어 갈데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충분히 나온 몸매였다. 더구나 삼십대 초반의 몸매는 언제나 요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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