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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이젠 자주 찾아 뵙도록 할께요.”
“그러려므나. 그렇지 않아도 네게 할 말이 있어 부르려던 참이었다.”

갈인규의 말에 경여가 갈인규의 등을 쓰다듬고는 무당의 현진도장에게 음식을 담아 주기 시작했다.

“육(肉) 고기가 아니니 드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면서 되도록 야채와 죽을 골라서 떠 준다. 조그만 일에도 그만큼 신경을 써 주고 있다.

“빈도는 음식을 별로 가리는 편이 아닙니다.”

현진은 별로 망설임이 없이 입에 넣는다. 아마 육식이라 해도 그는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경여는 손님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그에 맞추어 대접하고 있다.

“구양대협께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 그 모습이시군요.”
“서소저와 송소저라 하셨지요. 음식이 입에 맞을지….”
그녀는 일일이 손님과 대화를 하며 마지막으로 손불이의 그릇에 연포탕을 담았다.

“정말 목이 빠질 뻔했군.”

손불이는 그릇에 담기자마자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경여 역시 손불이 옆에 앉아 자신의 그릇에 담고는 수저를 들었다.

“한분이 더 계신다고 했는데 안 보이시는군요.”

담천의가 빠진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좌중의 사람들도 궁금했는데 정작 물어 보지 못한 말이다. 갈유가 수저를 내려 놓으며 대답했다.

“몸이 안 좋아 치료 중이오. 점심은 먹을 수 있을 테니 그 때 주면 되오.”

그의 대답에 좌중은 모두 이해하는 듯했다. 어제 저녁의 담천의 모습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향과 맛이 사라지지요. 그건 그렇고 규야.”
“예. 어머님.”
“너는 또 언제 떠날 예정이냐?”

갈인규는 그녀의 말에 갈유와 구양휘를 번갈아 보았다. 이 일행은 사실 오늘 점심을 먹고 떠날 예정이었지만 그녀에게 보자마자 간다고 하기 어려워 대답을 못한 것이다. 갈유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험... 험... 제수씨...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오늘.... 점심... 뭐 제수씨가 그러면 규아는..”
“오랜만에 오셔서 바삐도 가시는군요. 너는 떠나기 전 잠깐 들르거라.”

같은 말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갈인규에게 하는 어조가 전혀 달랐다. 그녀가 갈인규를 얼마나 끔찍하게 위하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낳은 것 만큼 기른 정(情)도 깊다. 그녀가 갈인규를 오래 곁에 두고 싶어도 이제 갈인규도 어엿한 사내다. 사내라면 이러한 위명이 쟁쟁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였다. 화들짝 실내로 뛰어드는 시비 차림의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이십세 갓 넘은 듯한 동그란 얼굴의 소녀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 내어 들어오느냐?”

경여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직히 야단쳤다. 그녀는 지금껏 손님을 모시고 있는 중에 저렇게 경망스럽게 뛰어오는 시비는 보지 못했다.

“마... 마님. 죄송스러우나...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말도 떠듬거렸다. 저 소녀는 손불이의 여섯번째 첩인 윤소소(尹少沼)의 시비인 아앵(娥櫻)이란 소녀다. 꽤 영리한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이리도 경망스럽다니 경여는 그녀를 나중에 혼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아앵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자 그녀는 여전히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앵은 주위를 둘러 보고 쭈빗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어려운 말인 것 같았다.

“괜찮다. 모두 외인(外人)이 아니시니 찬찬히 말하거라.”
“저....셋째 작은 마님께서..”

그녀의 두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금방 떨어질 것 같았다.

“어...허...!”

경여의 다긋침에 아앵은 울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방에서 목을 매달고 돌아 가셨습니다.”
“뭐야...?”

아무리 차분한 경여도 이쯤되면 아니 놀랄 수 없다.

“수화(秀花)가 죽었다고?”

언수화(彦秀花)는 손불이의 세번째 첩이다. 그녀는 성격이 활달하고 적극적이어서 경여가 직접 나서는 일이 아니면 대신하여 손님을 맞게 시켰고, 경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더구나 어제 저녁 이곳에 있는 손님들의 시중을 든 것도 그녀였다. 담천의를 정고헌으로 먼저 안내하고 옷을 마련해 준 것도 그녀였고, 저녁 겸 술상이 끝나자 나머지 손님들에게도 정고헌으로 안내해 방을 배정해 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경여가 직접하지 못하는 일을 스스로 잘 해내는 여자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손불이도 놀라는 표정으로 벌써 수저를 놓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이 목을 매달았다면 모르지만 수화는 목을 매달 여자가 아니다.

“소녀들이 마님들 조반을 차려놓고 기다려도 셋째 작은 마님만 오시질 않아 가 보았더니 목을 매달고.. 흑...”

대체로 식사는 같이 하는 것이 손가장 내의 법도였다. 경여는 많은 첩들을 관리하기 위해 아침만큼은 항상 같이 했고, 손불이도 손님이 없으면 그 자리에 있었다.

“어서 가 보자.”

경여는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고 좌중에 가볍게 목례를 건넨 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아무리 맛있는 조반이라도 끝이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음식이 목으로 넘어갈 리 없다.

“자네도 가 보겠나?”

손불이는 나가면서 갈유에게 같이 갈 것을 권했다. 갈유는 의원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의원의 확인은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 준다.

“그러세.”

갈유가 일어나자 전연부가 곧바로 따라 일어섯다.

“손대인. 저도 따라 가도 되겠습니까?”

전연부는 이름난 금의위의 영반이다. 사건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임을 안다.

“뭐... 그럴 것 까지야.....”

손불이는 거절하려다 말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같이 가지. 다른 분들은 식사를 마치고 쉬시도록 하시오.”

손불이는 미안한 듯 고개를 끄떡이며 밖으로 나섰다. 집안에 사람이 죽으면 관가에 신고를 해야 한다. 정주 내에서야 관가에서 귀찮게 할리 없겠지만 전영반의 확인 하나면 관가의 인물들이 시신을 확인하러 올 필요도 없다. 외인이지만 전영반은 이럴 때 필요했다.

(8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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