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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전설과 신화가 많은 제주는 산, 바다, 나무, 돌 등 그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 땅을 신들의 이야기로 뒤덮인 땅이라 일컫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 바다에서 내려온 신, 땅 속에서 나온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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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개벽 '삼성혈'

1만8천 신들이 살고 있는 신들의 고향 제주. 그 전설의 비밀은 한라산 영실기암 5백 장군에서부터 제주의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녹고물'의 봉우리까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다닌다.

혼인지의 비밀
혼인지의 비밀 ⓒ 김강임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쯤 올랐을까? 온평리의 마을은 마치 신들의 고향에 온 것처럼 한적하기만 하다. 이정표를 따라 차를 돌렸지만 워낙 인적이 드물어 사람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니, 벽랑국의 세 공주가 혼례를 치르기 위해 목욕을 했다는 연못과 신방 있었다. 개벽의 신화가 얽힌 '혼인지'.

'혼인지'의 풍경
'혼인지'의 풍경 ⓒ 김강임
'혼인지'는 하얗게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전설 속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말이다. 열려진 대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울창한 나무 숲. 관광지라고 말하기엔 이렇다 할 구경거리가 없었지만, 이곳은 1971년 지방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된 곳이다.

혼인지에 세워진 석비
혼인지에 세워진 석비 ⓒ 김강임
붉은 송이가 깔린 진입로를 통해 들어가자. 작은 연못이 눈에 띄었다. 연못이라야 그저 마을 어귀의 작은 웅덩이 같았다. 그 작은 연못 뒤에는 석비가 세워져 있다. 이 석비는 혼인지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았으나 전설 속의 자연을 모방하고 있는 듯했다. 진입로의 깔아 놓은 석송이가 끝나는 곳에서 만난 연못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태초에 세상이 열리는 듯한 고요함이 이처럼 조용할까.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숲으로 우거진 이곳에 왜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연못엔 붉은 연꽃으로 가득
연못엔 붉은 연꽃으로 가득 ⓒ 김강임
연못의 면적은 대략 800여 평쯤 되었다. 그리고 800여 평의 연못은 온통 붉은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혼인지'에 대한 전설을 말해 보자면, 아득한 옛날 모흥이라는 곳에서 고을나·양을나·부을나라는 3신인이 솟아 나왔다.

세 을나는 수렵과 어로생활을 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 찬란한 나무상자가 떠 내려와 해안에 머무는 것이 보였다. 3신인이 내려가서 목 함을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이 있고 사자가 있었다 한다. 그리고 그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목 함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3공주와 우마와 오곡의 종자가 있었다 한다.

사자는 3신인에게 "벽랑국의 임금님께서 3공주를 두었는데, 배필을 구하지 못해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어 신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다"고 했다. 또한 사자는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한다.

이때 3신은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즉석해서 혼인지에서 혼례를 올리고,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끼낀 동굴 속 신방
이끼낀 동굴 속 신방 ⓒ 김강임
연못에서 동북쪽으로 한 50m쯤 걸어가니 마치 매듭 풀린 띠처럼 돌담이 끊기는 지점이 있다. 그 끊겨진 돌담 사이를 따라 들어가니 동굴이라 하기엔 너무나 작은 굴의 모습이 보인다. 이 굴이 바로 삼신인이 혼례를 올린 후 신방을 차렸던 신혼방이다.

서너 개의 계단 아래에는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굴은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 각각 3인이 세 공주와 함께 신방을 차린 동굴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굴의 높이가 너무 낮아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어려웠다.

세개의 신혼방이 있다는데...
세개의 신혼방이 있다는데... ⓒ 김강임
카메라를 들이댔으나. 굴속의 표정은 이끼만 보였다. 남의 집 신혼 방에 카메라를 들이대다니, 신혼방에 대한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3인은 세 공주와 결혼을 해서, 한라산에서 활을 쏘며 각자가 살 곳을 정했다고 한다. 삼신인이 쏜 화살은 '삼사석'으로 현재 제주시 화북동에 그 화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처음 제주 테마여행에 나섰을 때 개벽신화의 이야기가 얽힌 삼성혈의 자취를 더듬는다. 전설 속의 현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제주도를 밟는다는 것은 태고의 시간을 상륙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전설 속 기행을 하다보면 정말이지 태고의 시간에 상륙하는 기분이 든다. 흥미진진한 전설 속 이야기를 쫓다보면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가상의 세상처럼 여겨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세 공주의 신혼 방을 뒤로하고 혼인지 연못에 서니, 나는 마치 벽랑국 세 공주 결혼식장 하객으로 초청된 기분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연못을 바라보니 빨간 연꽃이 술에 취한 듯 서로 얼굴을 내민다.

동굴은 전설, 연꽃은 현실
동굴은 전설, 연꽃은 현실 ⓒ 김강임
혼인지에 피어 있는 붉은 연꽃은 현실 속에 있는데, 동굴속 신혼방은 전설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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