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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 굵게 매달린 토마토
ⓒ 이종찬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우리 집 앞마당 가죽나무에 붙은 여러 마리의 참매미가 그렇잖아도 뜨거운 햇살을 더욱 뜨겁게 달구며 고막이 터지도록 요란하게 울어댔다. 얼음처럼 차가운 우물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바가지를 내려놓고 돌아서면 이내 또 목이 탔다.

진종일 물배만 채운 탓에 걸음을 걸으면 뱃속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앞산과 들판에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던 그 빨간 멍석딸기를 따먹으려고 해도 햇살이 너무도 따가워 엄두도 내지 못했다. 냇가에서 개구리헤엄을 치며 더위를 식히려 해도 냇물마저 반쯤 데워놓은 물처럼 미지근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무더웠다. 그늘진 마루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이마와 온몸에서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우리 집 앞마당에 선 가죽나무와 감나무, 박태기나무도 돌돌 말은 잎새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가 여름방학 내내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마을 누나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우물가에서 씻고 있었던 것이 발갛게 잘 익은 토마토였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그 토마토, 아니 차가운 우물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그 토마토는 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토마토 하나만 먹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누야(누나야)! 그기 뭐꼬? 도마도 아이가? 딱 한 개만 주라. 그라모 평생 누야 니 똘마이(똘마니) 하께. 응?"
"그래? 그라모 누야가 문제 한 개 낼 낀께네(낼 테니) 알아 맞출 수 있것나?"
"머슨 문젠데? 한번 내 보거라."
"도마도 이기 과실이가? 채소가?"
"참! 누야 니도 그거로 문제라꼬 내나? 당연히 과실 아이가."
"틀릿다. 도마도는 과실이 아이라 채소다."
"아이다. 도마도가 우째 채소란 말이고."


▲ 토마토꽃
ⓒ 이종찬

▲ 알알이 영글고 있는 토마토밭
ⓒ 이종찬

그날 누나는 토마토뿐만 아니라 수박과 참외, 물외(오이)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고 했다. 다년생 식물에서 열리는 사과나 감 등은 과일에 속하며 일년생 식물에서 열리는 열매는 모두 채소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그 토마토가 먹고 싶어 그 누나의 말을 끝끝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누나는 그런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씨알 굵은 토마토 하나를 내 손에 꼬옥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라모 토마토로 채소과일이라카모 안 되것나'. 그때 눈웃음 툭툭 던지던 누나의 쌍꺼풀 예쁘게 진 눈, 노오란 수건에 가려진 누나의 고운 볼은 토마토처럼 붉었다.

그래. 그때부터 나는 과일과 채소를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구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토마토와 참외, 수박 등의 채소를 과일이라고 고집 피우는 아이들이 있으면 늘 누나처럼 말했다. 그것들은 모두 채소과일이라고. 채소과일. 참,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누나의 말은 너무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매일 도마도로 한 개씩 묵으모 의사가 울고 간다 카더라. 그라이 도마도 이거는 음식이 아이라 약이다 약!"
"근데 우리는 와 도마도로 안 심노?"
"도마도 농사도 그리 쉬운 기 아이다. 그라고 도마도가 몸에는 좋지만 밥이 되는 거는 아이다."


▲ 매일 한 개씩 먹으면 의사가 울고 간다고 할 정도로 건강에 좋은 토마토
ⓒ 이종찬

▲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다
ⓒ 이종찬

그때 우리들은 누구나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불렀다. 쌀을 '살'이라고 하듯이. 평소 억세고 거친 경상도의 된소리로 보면 그렇게 싱겁게 부르지 않을 법도 한데 유독 토마토와 쌀에 대해서만은 아주 약하고 부드럽게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토마토와 쌀은 우리 마을에서 너무도 귀한 것이어서 세게 부르면 행여나 깨질세라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는 토마토나 수박, 참외 같은 그런 채소과일을 잘 심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것은 어머니의 말씀처럼 반드시 먹지 않아도 되는, 다시 말하자면 한 끼 밥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갈라먹기 쌀농사를 짓고 있었던 탓에 채소과일을 심고 싶어도 마음대로 심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앞산가새와 마당뫼 등지를 개간해 다랑이밭을 일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토마토는 잘 심지 않았다. 아마도 간식거리에 불과한 토마토를 심는 것보다는 당장 끼니를 때울 때 반찬거리로 오를 수 있는 풋고추나 상추, 배추, 무 등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잘 모르겠다.

"누야는 참 좋것다."
"와?"
"누야는 맨날 도마도밭에서 일한께네 도마도 하나는 배불리 먹을 수 안 있것나."
"그기 아이다. 니는 고무신 공장 댕기는 사람이 고무신 한 짝도 못 얻어 신는다는 그런 말도 안 들어봤나."
"내는 밥 대신 도마도나 실컷 묵었으모 좋것다."
"아나! 그 대신 올 가실에 너거 집에서 고매(고구마)로 캐모 내도 좀 주라."
"그거로 말이라꼬 하나."


▲ 잘 익은 토마토
ⓒ 이종찬

▲ 매일 아침 토마토 한 개씩 갈아 드세요
ⓒ 이종찬

그랬다. 우리 마을에서도 토마토 농사를 짓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신작로 곁에 꼭 한 군데 있었던 그 토마토밭도 이웃 마을사람이 주인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쯤 많았던 그 누나가 내게 주던 그 맛난 토마토도 누나가 그 토마토밭에서 하루종일 일한 품삯으로 대신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중학교를 중퇴한 그 누나가 우물가에서 토마토를 씻을 때마다 침을 질질 흘렸다. 그러면 그 누나는 그런 내게 눈웃음을 툭툭 던지며 애를 먹이다가 우물가에서 일어설 때쯤 알맹이 굵은 토마토 하나를 내게 주었다. 그리고 서둘러 토마토가 가득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상남시장으로 향했다.

그래. 나는 지금도 우물가에 앉아 잘 익은 토마토를 씻던 그 누나의 우물처럼 깊숙하고 동그란 그 커다란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신작로 저만치 토마토가 반쯤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허우적허우적 마을로 돌아오던 그 누나, 그 누나가 끌고 오던 긴 그림자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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