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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법원으로부터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최명진씨.
15일 대법원으로부터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최명진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사 대체: 15일 오후 4시 30분]

'양심적 병역거부'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으나, 재판에 참여한 12명의 대법관 중 절반인 6명이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후 대체복무제 도입 논란과 관련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재판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15일 오후 2시,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입영을 기피해 1심과 2심재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최명진(2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해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무에 우월한 것이라 볼 수없어"

재판부는 "종교적 양심의 자유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제한되는 상대적 자유"라며 "국방의 의무가 국가존립을 위한 기본적 의무이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안보상황을 고려해 이같이 판결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현역 입영을 거부할 경우 형벌 규정을 두거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은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돼 있다"며 "대체복무제는 마련돼 있지 않고 형벌만 주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나 비례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종교적인 차별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14명의 대법관중 법원행정처장과 출장으로 재판에 빠진 1명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한 이번 재판에서 6명은 유죄판결, 5명은 다수의견에 동의하는 보충의견을 냈으며 이강국 대법관은 "반대의견은 양심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양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이강국 대법관만 반대의견 "양심자유와 국방의무 충돌하면 양심자유 보장돼야"

그러나, 반대의견을 낸 이강국 대법관을 비롯해 유죄의견을 낸 유지담·윤재식·배기원 ·김용담·조무제 대법관은 대체복무제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대법관은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럽의회는 수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촉구해왔고 지원병제가 아닌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25개국이 대체복무제를 인정하고 있다"며 "심각한 국가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대만도 대체복무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한해 600여명 정도로 이는 연간 징병인원 약 30만명의 0.2%에 불과하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대체수단의 내용도 병역의무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 무거운 내용의 복무를 하도록 한다면 국가 안전보장과 공평한 병역의무의 부여라고 하는 헌법상 법익도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대다수 사회구성원과 가치관을 달리하는 소수의 국민에 대해 국가 통합을 위한 관용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이로써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정당성과 우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유지담 대법관 등도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적인 양심의 결정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집총의무를 강제하기보다는 집총병역의무에 비견되는 다른 내용의 국방의 의무를 스스로 이행하도록 하는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 복무제 도입은 입법정책상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국가의 헌법적 의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명진씨 변호인 "대체복무제 도입에 도움되는 판결…헌재 합헌나면 UN인권위 제소""

최명진씨의 변호인단의 김수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체복무제 도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있는 판결"이라고 평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92년 재판까지 대법원은 '양심상 결정은 헌법이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었으나 이번에는 이를 양심상의 자유로 인정했고 처벌은 하면서도 대체복무제 도입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것. 반면, 전쟁을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양심의 자유가 분단이라는 상황논리에 따라 재단돼 처벌하는 상황은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따라 헌재결정도 기대하고 있다"며 "만약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나오면 UN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같은 내용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윤여범씨와 함께 재판을 지켜본 최명진씨는 "담담하게 헌재판결을 기다리겠다"며 "사회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지 못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의 권리 인정에 나서 줬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재 보석으로 석방돼 있는 최씨는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됨에 따라 구속될 예정이다. 대검은 오늘 최씨를 기소했던 서울동부지검에 재판결과를 통보하고, 동부지검이 최씨에 대한 구속을 집행하게 된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여호와의 증인'신도인 성우 양지운씨는 "헌재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며 "그러나 상황은 또 바뀌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양씨는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반대의견이 있었다는 것은 이번 판결이 '솔로몬의 재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소수자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민변 "대체복무제 즉각 도입하라"
대법원의 기존입장 고수에 실망감 드러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석태 회장)은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개탄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민변은"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은 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기존입장을 고수했다"면서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상태가 계속되도록 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변은 "자신의 양심상 결정에 반하는 집총병역의무의 이행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을 뿐이므로 국가공동체 다른 사람의 법익을 직접 침해하는 것이 아니고, 병역법 입법목적을 훼손한다고 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에 주목한다"며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결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수자에 대한 포용이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징표"라며 "정부와 국회는 즉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자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재판이 열린 대법원 대법정에는 재향군인회, 한국참전동지회, 여호와의 증인 신도 등 150여명이 나왔으며, 6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으나,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관련조항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청구소송에 대한 심리를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1월 당시 박시환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1단독 부장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아무개(21)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바 있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헌법상 규정된 병역의 의무와 기본권인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 양자는 적절히 조화·병존해야 한다"며 "병역거부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을 규정한 현행 병역법 제 88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단 중지에 상태에 있던 일선 법원의 관련재판이 다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의 쟁점은 종교 또는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느냐는 것이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 또는 소집에 불응할 때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여기서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한 입영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4월 대법원 3부에 배당됐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일선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자 대법원은 최대한 신속하게 이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초 이 사건을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부에 회부했다. 보통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사건을 심리해 의견일치가 안되거나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경우 전원재판부에 회부된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사건에 대한 지난 61년과 69년의 유죄 판례를 뒤집을 지 주목됐으나 결국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

지난 2002년 4월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발족식 장면.
지난 2002년 4월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발족식 장면.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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