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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퍼즐 한 조각 안에는 그림 전체를 반영하는 비밀이 담겨 있죠.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일상의 파편으로부터 삶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거든요.”

2004 도쿄 서밋 페스티발(Summit Festival 2004)의 개막작인 <세자매~크로스 아시아 버전>의 연출을 맡은 홍은지(35)씨.

▲ <세자매~크로스 아시아버전>의 연출가 홍은지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2001년에는 국립극장의 초청을 받아 창작실험극 <사막을 걸어가다>를, 2002년에는 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제작된 <내 안의 검은 물소리>를 연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일본, 홍콩, 서울의 연극인들과 함께 이번 작품 <세자매~크로스아시아 버전>을 만들어 냈다.

이번 작품에서 홍씨가 보여주고자 노력한 건 각기 다른 언어를 쓰고,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나라 여배우들을 통해 보여지는 ‘소통불가 상황’이다. 100년 전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토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의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을 반영해보겠다는 의도다.

“한 가족이 한 집에 살고, 식탁에 모여 다같이 밥을 먹어도 갈등이 일어날 때 소통불가능의 상황이 벌어지죠. 서로 같은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 자매’를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나라 여배우가 연기한다면 새로운 삶에 대한 은유가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전세계를 무대로 20여 년간을 활동해 온 일본의 니시야마 미즈키(西山水木), 홍콩의 보니 챈(陳麗珠)과 함께 작업하며 배운 것도 많단다.

“어떻게 보면 무대 위의 대선배들인데, 이 분들을 보면 배우라는 범주에 넣고 생각하기 힘들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는 실험과 모험을 서슴지 않는 예술가라는 느낌이 더 크죠.”

작년 초, 이 작품을 기획할 당시에는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적 문제보다는 수십년간 개인 안에 축적된 연극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모든 장면을 배우의 생각을 토대로 구성했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그렇게 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게 됐죠.”

직접 연기 지도를 하거나 자신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독단적인 연출보다는 배우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홍은지 식 '상생의 연출력'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정서적으로 섬세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마음 속까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여성 연출가에 대한 편견과 폐쇄적인 태도가 공연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세 자매의 이야기를 세 나라 여배우, 여성 스태프들과 함께 하며 새로운 계기를 얻었어요."

창조 정신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 없이는 삶이 풍요로워질 수 없다고 말하는 홍은지씨는 다음 작품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농밀하게 다뤄볼 예정이다.

"밀실 안에 갇힌 개인이 자신의 내면 속에 나름대로 광장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마음 속에 존재하는 욕망과 좌절, 모든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굴절된 모습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현미경 같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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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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