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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 마음산책
이 책을 읽으면 마치 텔레비전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서 뒹굴며 보아도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무언가 남기려고 만든 책이라기보다 일상을 위한 '잔 재미'를 발견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면 대강 짐작되리라. 하지만 무턱대고 통쾌한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웃음 속에는 잔잔한 삶에 대한 진실이 박혀 있다.

영화를 빗댄 자전적 에세이

'약간 알려진' 소설가 김영하와 '조금 알려진' 만화가 이우일이 짝을 이루어 만들어 낸 <영화이야기>는 표지만 보아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면, 엄숙주의에 반기라도 들 듯 유쾌, 상쾌한 구어체 문장과 만날 수 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려운 이 책의 묘미는 고상한 체하는 속물 근성과 구별되는, 그의 어투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의 코드에 맞는 직설적인 언사가 생생한 느낌을 준다. 그에 비해 '좀 덜 젊은' 나 역시도 그의 개성적인 문장을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로 강한 흡인력이 있다.

이우일의 '못생긴' 그림도 압축된 파일을 보는 것처럼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곳곳에 배어 있는 거칠게 끄적인 흔적들은 역시 키치적인 면을 드러낸다. 혹 이 책이 '키치'에 익숙한 세대에 한정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영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잡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 표지의 타이틀에서도 감을 잡을 수 있듯이 이 책은 '영화'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영화이야기'라는 글자는 흐릿하고 활자가 작아서 부제에 가까워 보인다. 대신에 '김영하'와 '이우일'의 이름이 더 돋보인다. 이 책이 이들 작가 자체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로 영화 잡지에서 3년 동안 영화 비평을 쓴, 본업이 소설가인 김영하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영화와 자신의 엉거주춤한 관계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은 오히려 '영화를 싫어한다'고까지 밝히는 그는,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 같은 그의 경험담

▲ '이우일'이 그린 , 영화 <친구 >
ⓒ 이우일
김영하는 <디 아더스>의 마지막 대사인 "This house is ours"에서 시작하여 자신이 겪었던 집에 대한 기억을 풀기 시작한다. 13평의 아파트에서 남의 집 식구들과 함께 5명이, 혹은 6명이 살 때의 에피소드들이 웃음 뒤의 페이소스를 남기기도 한다.

<메멘토>를 통해 자신이 연탄가스로 10살 이전의 기억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 순간에 남아있는 편린의 영상을 고집하기도 한다. 뒤에 그런 기억은 작위적으로 조작된 것임을 실토하면서. 그렇게 그는 기억과 기록의 혼동을 말하기도 한다.

<화양연화>에서는 20대와 30대의 각기 다른 사랑 체득법을 소개한다. 절제가 안 되는 20대에 비해 30대의 사랑법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방식'이라고 그는 구별한다.

알 거 다 알고, 상대방이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러면서도 슬쩍 모른 체 해주는 것, 모른 체하고 있는 걸 상대방이 알고 있다는 것까지도 모른 체 해주는 것, 그것이 30대의 사랑이라고.

'김영하'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처량하게도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이 같음과 다름의 변증법적 줄다리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엿가락에 다름 아니다. 같아지려는 구심력과 달라지려는 원심력 사이의 역동적 균형, 그 균형이 주물럭대며 우리를 엿가락으로 만든다.(본문 중에서)

이렇게 우리 모두는 다르지만 사회는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김영하는 인간이라는 유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다름'이 곧 '나음'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내 옆의 '시다바리'보다 우월하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그 '시다바리'가 내 대신 번식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슬프지만 진실이 그렇다. 달라야 할 뿐 아니라 잘나야 하는 것이다. '다름'에 대한 사회적 질시와 탄압을 뚫고 우리는 우리의 '잘남'을 널리 알려야 하고 그것을 통해 유전자 재생산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냉혹한 현실의 삶을 인식하는 그이지만 '집'에서 보여주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인간애, 새벽에 다시 일어나 영화 <봄날은 간다>를 눈물 훔치며 보는 그의 여린 감수성은 그가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느끼게 해 준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마음산책(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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