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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노보> 2월 27일자.
ⓒ 조선노보 PDF
"조선일보는 다시 사회와 민족을 이끄는 역할을 되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동안 '안티조선' 등 여러 비판에 직면했던 <조선일보>가 향후 진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내부 위기의식을 함께 드러낸 조선일보의 이같은 움직임에는 일선 기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선민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는 지난 27일자 <조선노보>에 '다시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자'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를 실었다. 이 기자는 기고에서 지금을 '비상의 상황'으로 진단하고 "한국 보수주의의 버팀목이었던 조선일보가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서 조금씩 빗겨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시대 흐름을 정확히 알고 대응해야 올바른 방향 설정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한 그는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는 것'"으로 대표되는 조선일보 '신역할론'을 제기했다. '새로운 보수'의 형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는 게 조선일보의 '할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허물어지는 한국 보수주의를 쇄신하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보수이념을 만들어내고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는 등 내부 의사소통을 활성화시키고, '마스터플랜' 등 회사 차원의 특단 마련과 더 이상 스스로 '혹'을 붙이지 말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경보장치로써 노조의 역할도 강조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희섭)은 기고 서문에 "우리 신문에서 시대 흐름에 걸맞은 변화에 대한 내부 토론과 실천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며 게재 취지를 밝혔다. 노조는 또 "이 글은 조합의 공식 의견이 아니며, 이에 관한 다른 조합원들의 이견이나 다른 제언도 충분히 반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이선민 기자는 지금 시기를 '보수세력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의 보수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표류만이 아니라 보수 이념을 만들고 전파해야 할 보수 지식인과 보수 언론 역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공격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조선일보를 '보수주의의 버팀목'으로 표현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한국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좌파 세력이 그처럼 그악스럽게 공격하는 이유도 조선일보가 '보수주의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그는 '안티조선'의 논리를 "우리 민족이 지난 세기 고난 속에서 걸어온 '성공의 역사'와 그 속에서 조선일보 역할을 읽지 못하는 비역사적이고 단세포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또 그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조선일보가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서 빗겨나고 있다고 분석하며 조선일보가 민족과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가르치는 '나침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 원인으로 그는 "근대화의 3단계인 '개인의 발견'이 본격화되고, 한편으로 '반공'과 '근대화' 과제에 억눌렸던 우리 민족의 유별한 '자존·자주' 의식이 터져 나오는 사회적 변화에 조선일보가 둔감했던 점"을 꼽았다.

그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는데도 여전히 지난날의 의식과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는 점차 영향력의 감소로 나타날 것이고, 이는 '최고의 신문'을 물려준 선배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는' 게 조선일보를 위해서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회사 안이 좀더 시끄러워져야 한다"

그는 조선일보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를 위해 ▲회사 안이 좀더 시끄러워져 한다 ▲회사 차원의 특단이 필요하다 ▲더 이상 '혹'을 붙이지 말자는 등의 세 가지를 조선일보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우선 내부 의사소통 활성화와 관련, 그는 "조선일보는 너무 조용하다. 지금처럼 안팎이 비상인 상황이라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의견이 분출해 백가쟁명의 상태를 나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이 지면에 생생하게 반영되고, 그 속에서 사회와 민족을 이끌어가는 해설-기획-사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견이다. 그는 "각 부서별 회의와 부장단 회의, 간부회의가 좀더 대화와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열어놓자"며 "노조는 회사의 유일한 경보장치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으로 그는 회사 차원의 종합적인 재점검과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특별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조선일보의 현재 상태를 깊이 있고 허심탄회하게 짚어보아야 한다"고 그는 제언했다. 여기에는 "조선일보에 애정어린 고언을 해줄 수 있는 외부 인사도 참여시키고, 필요한 부분은 전문기관에 맡길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혹'을 더 이상 만들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한국 언론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시대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던 것도 있지만 터무니 없고 억울한 '혹'을 달게 됐다"면서 "그러나 최근 불필요하게 스스로 단 혹도 있다, 거추장스러운 혹을 하나씩 떼어버려야 하는 시점에서 괜히 혹을 스스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감정을 떨어버리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우리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는 법'을 논의하자"고 거듭 역설하면서 "조선일보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희망과 포부를 잊지 않는다면 얼마든 할 수 있고 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선민 기자가 <조선노보>에 쓴 기고 전문이다.

'다시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자'

문화부 이선민 조합원이 ‘다시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자’는 제목의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조합은 이 기고를 계기로 우리 신문에서 시대 흐름에 걸맞은 변화에 대한 내부 토론과 실천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조합의 공식 의견이 아니며, 이에 관한 다른 조합원들의 이견이나 기타 제언도 충분히 반영할 예정이다.

1. 조선일보와 한국 보수주의

한국의 보수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의 표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 이념을 만들어내고, 국민에게 전파해야 할 보수 지식인과 보수 언론 역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공격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이끌어갈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정권의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나라의 주도권은 좌파 세력이 갖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보수 세력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한국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 왔다. 좌파 세력이 그처럼 그악스럽게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도 조선일보가 바로 보수주의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이 근대국가 건설과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선배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조선일보의 과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안티조선’의 논리는 우리 민족이 지난 세기에 고난 속에서 걸어온 ‘성공의 역사’와 그 속에서 조선일보의 역할을 읽지 못하는 비역사적이고 단세포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정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런 터무니없는 공격이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보수’의 형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허물어지는 한국 보수주의를 쇄신하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보수 이념을 만들어내고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지금 조선일보가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는 것은 조선일보의 전통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지난 80여 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늘 민족과 사회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일제시대 조선일보는 식민지라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민족의 계몽과 근대화에 앞장섰다. 광복 후 국가 건설이 시대적 과제가 됐을 때는 거기에 부응했다. 196∼~70년대 근대화의 제1단계인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에 공감해 그것을 뒷받침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세계사의 새 장이 열렸을 때 한국이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을 이끌었다.

2. 오늘의 조선일보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일보는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서 조금씩 빗겨 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1등 신문이고,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이다. 그러나 과연 조선일보가 지금 예전처럼 민족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드는 사람들이 선배들의 ‘정신’은 계승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1980~90년대 근대화의 제2단계인 민주화를 달성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대화의 제3단계인 ‘개인의 발견’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난 50년 동안 ‘반공’과 ‘근대화’의 과제에 억눌렸던 우리 민족의 유별한 ‘자존’과 ‘자주’ 의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최근 이런 사회적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지적은 우리도 시류에 편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이런 흐름을 정확히 알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조선일보는 2000년대에도 계속 우리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는데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여전히 지난날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점차 영향력의 감소로 나타날 것이고, 이는 ‘최고의 신문’을 물려준 선배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일보는 다시 사회와 민족을 이끄는 역할을 되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일보를 위해서 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한국에는 우리 말고도 몇 개의 보수 신문이 더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는 우리가 보수 세력과 보수주의의 쇄신에 중심 역할을 하기가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여기서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우리는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섰던 충분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만 지적하겠다. 조직이나 집단의 핏줄에 흐르는 전통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이 시대가 ‘새로운 보수주의’를 요구한다면, 그것을 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언론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가 그것을 못한다면 한국 사회와 민족의 앞날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암울할 것이다.

3.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의 조선일보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가 이처럼 크다면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것은 어느 한 사람이 제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조선일보를 만들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고민해야 할 몫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몇 가지를 지적해 보려고 한다.

첫째, 회사 안이 좀 시끄러워져야 한다. 조선일보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조용하다. 신문사는, 더구나 지금처럼 안팎이 비상한 상황이라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의견들이 분출하여 백가쟁명의 상태를 나타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이 지면에 생생하게 반영되고, 그 속에서 사회와 민족을 이끌어 가는 해설-기획-사설이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의 의사 소통과 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우선 각 부서별 회의와 부장단 회의, 그리고 간부회의가 좀 더 대화와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노조는 회사의 유일한 ‘경보 장치’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특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신문이 뭔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구성원들의 능력이나 열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고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조선일보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특별 태스크 포스 팀’을 만들어, 조선일보의 현재 상태를 깊이 있고 허심탄회하게 짚어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조선일보에 애정 어린 고언(苦言)을 해 줄 수 있는 외부 인사도 참여시키고, 필요한 부분은 전문기관에 맡길 수도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한다. 구성원들이 조선일보의 5년, 10년 뒤 모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어야 지금 신문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이제 더 이상 ‘혹’을 붙이지 말자. 우리 신문은 민족사적으로 격동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세월을 한국 언론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본의 아니게 여러 개의 혹을 달게 됐다. 그 중에는 시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고, 터무니없고 억울한 것도 있다. 그러나 최근 불필요하게 스스로 단 혹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적들은 논리에서 밀리거나,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나 논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혹을 잡고 늘어진다. 이제 거추장스러운 혹들을 하나씩 떼어버려야 하는 시점에서 괜히 또 다른 혹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봄이 오고 있다. 봄이 되면 만물은 움츠렸던 몸을 펼치고 자유를 만끽한다. 이번 봄에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쓸데없는 감정을 떨어버리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되찾자. 그리고 다시 우리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는 방법을 논의하자. 우리가 조선일보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희망과 포부를 잊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모두 함께, 오는 봄을 맞이하자.
-- 이선민·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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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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