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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사 내의 의사소통 부재를 질타한 <조선노보>. 앞장은 지난 7일자이며, 뒷장은 지난해 7월 19일자.

"피가 펄펄 돌아야 하는 신문사 조직이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대부분 느끼면서도 누구도 나서서 먼저 얘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사내에서 의사소통 단절의 문제가 또다시 제기됐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희섭)은 지난 7일자 노보 1면 <"말 못하고, 막히고…미치겠다"> 제하 기사를 통해 이같은 조합원들의 비판을 상세하게 실었다. 노조가 지난해 7월 내부 의사소통 단절의 심각함을 지적한 지 불과 1년여만이다.

조선 노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님에도 새삼스레 제기하는 것은 어느새 의사소통 부재를 체념하는 분위기로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피가 펄펄 돌아야 하는 조직이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대부분 느끼면서도 누구도 나서서 먼저 얘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꾹 참다가 병에 걸리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노조는 전화를 받은 한 조합원의 하소연부터 소개했다. "내가 직접 가서 얘기하겠다"며 노조 사무실로 바로 달려온 그 조합원은 "꾹 참다가 병에 걸리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왔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해 기사가 안 된다고 하면 데스크는 짜증부터 낸다, '왜 너만 보내면 기사가 안되냐'는 말부터 한다, 왜 그게 기사가 안 되는지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회사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심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쓰라니까 쓴다'고 쉽게 체념해 버리고, 그러다 보면 내가 정말 기자인지 좌절감 비슷한 것이 생길 때가 있다, 다른 동료들도 말은 안 하지만 비슷한 감정을 겪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노조는 "일선에서 회사에 적대적인 외부 세력을 취재하고 있는 그는 사익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과 현장기자로서의 판단 사이에서 종종 갈등을 느끼는 듯했다"면서 "더욱이 그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동료가 없어 무척 답답해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기자들 "편집회의는 데스크들의 시국 강연장"

노조는 지난 5일 노보 편집위원회에서도 회사내 의사소통의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같은 현상의 뿌리는 토론문화 부재와 직결된다"고 분석한 뒤 "하루하루 신문의 틀이 결정되는 부장회의부터 가장 생기가 넘쳐야 할 사회부 기동팀 회의까지 토론이 없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고 표현한 편집국 한 부장의 말을 전했다. 토론은 없고 일방적 지시만 있는 부장회의 장면에 대한 묘사이다.

그 간부는 "국장이 신문 한 페이지를 넘기면 부장들이 전부 따라서 한 페이지를 넘긴다, 다시 국장이 한 장을 넘기면 부장들이 다시 한 장을 넘긴다, 지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국장이 갑자기 페이지를 뒤로 넘긴다, 그러면 부장들이 화들짝 놀라 따라서 페이지를 넘긴다"고 덧붙였다. 또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노조에 말했다.

노조는 부서내 회의도 마찬가지라고 적시했다. 즉 "데스크들은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말하고 치고 올라와야 한다'고 불평하지만 후배들 사이에선 '회의는 데스크들 시국 강연장'이란 비아냥이 일상화돼 있다"며 단절의 벽이 있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데스크들은 현장을 강조하지만 거의 매일 회의에 참가하려고 시간을 비우는 사이 현장은 돌아가고, 그때 현장을 놓쳤다고 또 깨지고, 그렇다고 회의에서 얘기해본들 한마디로 킬 되면 그만이고, 그러니 회의는 의무감에 참가할 뿐"이라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된 한 조합원의 말도 전했다.

▲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뒷편에 있는 조선일보 사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조의 해법 "각 부 데스크들이 먼저 나서달라"

대화통로는 일선기자들과 논설위원 사이에도 막혀 있다는 게 노조의 분석이다. 젊은 논설위원들이 보강되면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선 기자들은 사설이 현장 분위기와 약간 다를 경우 "이건 아닌데"라고 얘기하고 싶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는 것. 노조는 이에 대해 "낮은 기수의 조합원들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의견을 전달해야 할 지도 잘 모르고, 괜히 전화했다가 호통이나 들을까봐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고 전했다.

노조는 지금의 단절이 회사와 데스크, 기자 가운데 누구의 책임인지 가릴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선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했다.

한편 노조는 이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편집국장을 비롯한 각 부 데스크들이 먼저 나서줄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사석에서 후배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주기를 기대했다. 노조는 이와 함께 "조합원들도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을 뒤로 숨기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는 어느 한 쪽이 막히면 흐르지 않는다'는 게 노조의 마지막 주장이다.

김희섭 노조 위원장은 이번 노보의 지적에 대해 "서로 잘해보자는 차원에서 마련했다"면서 "노조가 문제를 제기했으니까 데스크가 생각해주고, 변화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이보다 앞서 지난 10월 24일 취임사를 통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로 지적되는 게 의사소통 채널의 부재"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단시일에 해결하지는 어렵겠지만,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지난해에도 "더 많은 말이 흐르게 하자"고 지적

조선 내부에서 심각한 의사소통 단절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 노조는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우리는 이렇게 본다' 제하의 각 부서별 방담을 14회에 걸쳐 진행하면서 회사 내부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지적한 바 있다.

노조는 방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지난해 7월 19일자 노보에서 '더 많은 말이 흐르게 해야 한다'라는 마무리 기사를 통해 "매주 부서별로 조합원들과 접촉하면서 우려스러웠던 점은 아예 방담 참여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라며 "우리 회사가 이렇게까지 언로가 막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을 때 가장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를 "섭외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할 이야기는 많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참가 자체를 터부시했고, '내놓고 말해봐야 고쳐질 것도 아니고 괜히 일만 낸다'는 냉소적 태도가 사내에 퍼져 있었다"고 표현했다.

당시 부서별 방담에서 자주 지적된 주요 사안으로는 △데스크의 부서관리 능력 문제 △소외 부서 정책 △외부 인력 활용 문제 △구성원의 전문성 문제 등을 꼽았었다. 노조는 지난해에도 "진정 업무환경 개선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부서별 방담의 취지를 강조한 바 있다.

올해 조선일보에 입사한 신입기자들의 인식도 이같은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29일자 조선 사보는 수습을 갓 뗀 42기 기자들의 내부 비판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한 신입 기자는 "선후배간·부서간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같다, 인간적인 교류도 거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고, 다른 기자는 "아이디어 회의 때도 기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 여부만 따지지, 평등한 의사소통이 없다, 기사나 편집결정권이 데스크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서해 꽃게잡이 기사를 보면 한겨레와 조선의 논조가 극과 극을 달렸는데, 개인 성향 때문인지 이미 조직 분위기에 함몰돼서인지 궁금해진다"고 물었다. 역시 다른 기자는 "황학동 재래시장 회장은 '강자입장만 들어주는 신문'이라고 쏟아부었다, 이런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경험을 말했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출입처에서 조선 기자들이 사내 의사소통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더러 목격한 적이 있는데, 요즘 그 극한점에 도달한 것 같다"고 진단하고 "회사측이 '안티조선운동'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가 사내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내부의 '안티조선'에 대한 고민
일선기자 "고통으로 느끼는 이들까지 생겼다"

▲ 지난 11월 9일 조선일보사앞에서 노동자대회 사전집회를 열고 있는 언론노동자들.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사 언로의 불통을 비판한 조선 노보 7일자에는 '안티조선'에 대한 취재 기자의 소회가 같이 실려 눈길을 끈다.

정성진 인터넷뉴스부 기자는 '안티조선 그냥 바라만 볼건가' 제하의 기고를 통해 '안티'에 대한 울분은 나오고 있지만 공론화의 장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조선일보 씹기'를 생업으로 하는 단체들이 몇 년새 엄청나게 늘어나 조선의 모든 조합원이 '안티'에 영향을 받는다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2000년 즈음 시민단체를 주로 취재했다는 그는 "밥을 먹어도 안티와 먹고, 취재도 안티를 대상으로 해야 했다"면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안티'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금은 극히 일부 기자들이 '안티'를 상대하면 별 문제가 없던 시절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안티와 부딪치는 조합원들이 늘어났고, 이를 고통으로 느끼는 이들까지 생겼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어느 취재 상황에서나 전쟁을 치르는가 하면 취재 자체가 불가능해 소속을 밝히지 않고 취재했다는 기자들 이야기도 전했다. 또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일련의 소송도 언급했다. 연일 회사 앞에서 계속되는 시위에 몸살을 겪는 업무 부서의 고충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이같은 현실에 대한 울분은 나고 있지만 전혀 공론화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취재현장에서 안티들을 마주친 후배 기자들은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이를 터놓고 선배들에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는 "한번쯤 안티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 신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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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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