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 yes24
책을 잡아서 한 번 넘겨본다. 여기저기서 익숙한 나무들의 사진이 보인다. 언제부턴가 글만 빼곡한 책은 잘 읽지 못하게 되더니 책 속에 삽화나 사진이 들어간 책이 좋아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작부터 아주 만족스럽게 읽힌다.

이따금 식물도감을 사고 현암사에서 나오는 쉽게 찾는 꽃 시리즈를 갖고 꽃이 피는 들판을 헤매기도 한다. 봄철이 되면 들에 나가서 새싹의 기운을 맞보며 꽃을 바라보는 것은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요즘에는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꽃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그런데 스스로 우리나라의 많은 식물들과 나무들을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부끄러움과 수치심과 가슴 아픔에 쩔쩔매야 했다.

꽃에는 관심을 두면서도 정작 그 옆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제자리에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란 다른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서 그 나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난 늘 숲을 보지 못하고 숲 안에 살고 있는 작은 것들에만 관심을 가져왔나 보다. 그래서 다 아는 얘기에 뻔한 내용인데도 이 책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은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인 우종영씨는 '나무의사'라고 불린다. 나무의사라는 직업도 있나? 속으로 이 사람 돈 안되는 일만 하니 집에서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책장을 한 장 넘겨놓고 흠칫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이들고 직장다니면서 사람 됨됨이의 기준을 직업이나 그 사람의 경제력으로 평가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사람의 직업이란 얼마나 그 사람이 행복하고 만족하느냐를 기준으로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으니 씁쓸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우종영씨는 참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소외받고 아픔받는 나무들을 보살피고 다시 생명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니 그만큼 보람있고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무의사'란 결코 좋은 직업도 행복한 직업도 아니구나 싶었다. 얼마나 아프고 죽어가는 나무가 많으면 '나무의사'라는 직업으로 생활을 할까 싶으니 나무의사라는 직업이 없어도 나무들이 모두 행복한 그런 사회가 더 낳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마 우종영씨도 행복보다는 마음 아픈 일이나 슬픈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이 세상을 같이 살고 있는 나무들은 큰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다. 바로 우리 인간들에 의해서 말이다.

이 책은 나무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바라는 희망들이다. 예전처럼 나무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 서로 아껴주며 잘 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언제부턴가 나무들은 우리의 욕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쓸모있는 나무와 쓸모없는 나무라는 구별이 생기고 쓸모없는 나무들은 멸종위기에 처하고 쓸모있는 나무들은 인간들의 무분별한 손길에 괴로워하고 있다.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들은 전신주를 건드린다고 간판을 가린다고 무차별하게 가지를 잘라내고 자라지 못하게 석유를 뿌리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자신의 나무를 너무나 애지중지해 생우유를 부어 뿌리가 썩게하고, 잠복소를 제 때 치워주지 않아 병든 나무를 치유한다며 영양제와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

이런 일들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처음 이러한 행위들이 나무에게 커다란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친 과잉 보호도 또 너무 밖에서 자유롭게 키우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깨우치면서도 정작 나무들에게도 그런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나무들도 이런 일에 병들고 힘들어 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인가보다.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도 있다. 아픈 나무들이 가서 쉴 수 있는 나무 고아원 이야기나 장님이면서도 만지기만 해도 나무의 상태나 기분을 알 수 있는 할아버지, 풀독 때문에 고생하시는 데도 나무들을 일일이 보살피는 수녀님, 자신의 자식처럼 나무를 사랑하면서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지 않는 스님,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는 파란눈의 나무 원장님 이렇게 이 세상에는 정말로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누구나 나무의 고마움을 알고 그 생명의 신비함에 경외를 표했는데 이제는 몇몇 사람으로 줄어간다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다 읽어갈 때쯤에는 다래나무, 싸리나무, 탱자나무, 쉬나무, 헛개나무, 국수나무, 소태나무, 향나무, 박달나무 등이 지난 날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보내고 있다.

시골에서 산 나도 다래나무나 탱자나무, 향나무 등은 알겠는데 도저히 쉬나무나 헛개나무, 국수나무는 모르겠다. 책을 읽어보면 지난 날 우리 곁에서 눈에 보이는 큰 것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삶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들을 갖게 하는 나무들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들의 외면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나무들이 편지를 쓰고 있다. 너무 자신들을 외면하지도 말고 귀하게 여기지도 말며 그저 우리 인간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인정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무들은 인간들이 부리는 끊임없는 욕심과 경쟁과 개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 세상을 사는 나도 왜 이렇게 치열하게 숨쉴 틈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하늘 한번 쳐다보고 나무보고 얘기할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네모의 책>에 따르면 빅뱅이 일어난 시간을 0시라고 했을 때, 지구가 나타나려면 15시까지 기다려야하고, 생명체는 17시에 출현하고, 지구 최초의 지배자였던 공룡은 23시 30분에 나타났다가 겨우 12분만에 사라졌다. 우리 인간은 자정 바로 7초전에 처음으로 이 세상에 출현했다니 우주에서 봤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인간들에 의하여 지구가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은 예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아무 욕심도 없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인간들이 다시 자신과 함께 공존하며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쉽다.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그 쉬운 글 속에 가시가 있고 회초리가 들어 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책에서, 나무들에게서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회초리를 피하거나 아픔을 잊는다고 해결할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회초리 앞에서 아파하고 부끄러워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 우종영 지음 / 중앙M&B / 2003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로 뽑힌 조현화(yes1062) 님의 글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우종영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3)

이 책의 다른 기사

더보기
나무에게 말걸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