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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세상'의 남강휴게소 자선공연 장면(12월 27일)
'음악세상'의 남강휴게소 자선공연 장면(12월 27일) ⓒ 황원판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는 열창도 감동적이지만, 간이 무대에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 쓰인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입니다."는 문장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지켜보는 이에게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어려운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의 노래로 백혈병·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이들은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음악세상'의 자원봉사자들로 벌써 7년째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노래로 지켜왔기에 '거리의 수호천사'라고 불린다.

이 '음악세상'을 처음 시작하여 이끌고 있는 사람은 회장 이재영씨(50).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은 가수 활동을 해온 이 회장의 아들 대룡씨(26·예명 '준' JUN)와 라이브 가수 양선오씨(32), 회사원 김민정씨(26)와 제상욱씨(32), 김정걸씨(22), 주부 최명숙씨(36), 대학생 안은경씨(22)와 최호영씨(25), 김은희씨(22), 휴학생 주영복씨(24) 등 직업도 다양하지만, 어린 생명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난 27일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명사랑'의 진한 감동이 있는 이 무대 앞에서 이 자선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이재영 회장을 만났다. 공연 진행하랴, 모금함에 성금을 넣는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 드리랴 매우 분주해 보였지만 얼굴에는 착잡한 기색이 떠나질 않았다.

'음악세상'을 이끌고 있는 이재영 회장
'음악세상'을 이끌고 있는 이재영 회장 ⓒ 황원판
그 이유를 묻자 이 회장은 "사실 어젯밤, 그동안 우리가 도와오던 한 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병이 나은 어린이를 보면 무척 기쁘지만, 어제처럼 꿈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치료 도중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 내 자식을 잃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치료 중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혜경이, 호원이, 주완이, …. (솟구치는 슬픔에 잠시 말을 못하다가)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노래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공연이 아픈 아이들에게 큰 힘은 될 수 없지만, 우리의 돕고싶은 '마음'이나마 전달되어 조그만 희망과 용기는 줄 수 있다고 믿기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의 겉모습은 흔히 말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처럼 보이지만, 꺼져 가는 어린 생명이 안타까워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잇지 못했다. 중년의 이 회장 모습에서 진정한 이웃사랑과 자상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러한 '어린 생명 살리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500여회 자선공연을 부산·경남지역에서 해왔으며, 그 수익금 전액인 약 2억1천만 원으로 200여명에게 치료비를 도왔다. 지난 한 해 동안만 부산·경남지역의 환아 총 15명에게 1129만 원의 치료비를 남모르게 지원하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 회장은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밝히기를 무척 쑥스러워 하며 밝히기를 꺼렸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는 환아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다'는 기자의 간곡한 부탁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15년 전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듀엣 '수와 진'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공연을 보고 이 일을 꼭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실 '음치'이기 때문에 직접 노래를 할 수 없어 고민하던 중, 당시에 제가 운영하던 레스토랑 한 쪽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저와 뜻을 같이 할 무명가수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부를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자선공연 봉사를 나간다는 조건이었죠."

"이렇게 하나, 둘 모여든 봉사자들이 첫 공연을 시작한 것은 1998년 2월 14일입니다. 출범 초기에는 주로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장애노인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치료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백혈병 어린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백혈병·소아암 환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음악세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혈병·소아암 환아들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자 지금까지 자선음반 1·2·3·4·5집을 발표하여 수익금을 전액 지원하였고, 저희 음악세상 출신가수 '준'(JUN)과 양선호도 뜻을 같이하여 음반판매 수익금을 치료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4년 새해 소망을 묻자 이 회장은 다음과 같이 우리 사회와 국가의 소아암·백혈병 어린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골수기증 동참을 소망했다.

남강휴게소에 마련된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있는 어린이
남강휴게소에 마련된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있는 어린이 ⓒ 황원판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백혈병·소아암 어린이들이 4만 여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 환자 부모의 대부분은 30대 초반입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치료비는 엄청난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가정의 경제적인 능력으로 지킬 수 없는 어린 생명들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힘 모아 지켜주려는 이웃의 따뜻한 '관심'이 더욱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소아암 지원특별법'을 제정하여 어린 생명을 구하고, 경제적인 파탄으로 해체되는 환아 들의 가정도 지켜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골수 부족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의 골수기증자는 대만의 1/4에도 미치지 못해서, 부족한 골수를 일본, 대만 등지에서 수입하는 실정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골수기증에 동참하기를 기원합니다."

한 때, 디자이너를 꿈꾸며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회장의 아들인 가수 '준'도 아버지의 이러한 뜻을 이어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메신저가 될 것을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어린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기를 소망하는 가수 '준'
어린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기를 소망하는 가수 '준' ⓒ 황원판
"백혈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가엾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거듭 다짐하게 됩니다."

"새해에도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이면 소아암과 백혈병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을 방방곡곡에 홍보하고, 소중한 어린 생명과 그들의 꿈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그 날까지 우리의 노래는 메아리 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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