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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는 열창도 감동적이지만, 간이 무대에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 쓰인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입니다."는 문장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지켜보는 이에게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어려운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의 노래로 백혈병·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이들은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음악세상'의 자원봉사자들로 벌써 7년째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노래로 지켜왔기에 '거리의 수호천사'라고 불린다.
이 '음악세상'을 처음 시작하여 이끌고 있는 사람은 회장 이재영씨(50).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은 가수 활동을 해온 이 회장의 아들 대룡씨(26·예명 '준' JUN)와 라이브 가수 양선오씨(32), 회사원 김민정씨(26)와 제상욱씨(32), 김정걸씨(22), 주부 최명숙씨(36), 대학생 안은경씨(22)와 최호영씨(25), 김은희씨(22), 휴학생 주영복씨(24) 등 직업도 다양하지만, 어린 생명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난 27일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명사랑'의 진한 감동이 있는 이 무대 앞에서 이 자선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이재영 회장을 만났다. 공연 진행하랴, 모금함에 성금을 넣는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 드리랴 매우 분주해 보였지만 얼굴에는 착잡한 기색이 떠나질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이 회장은 "사실 어젯밤, 그동안 우리가 도와오던 한 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병이 나은 어린이를 보면 무척 기쁘지만, 어제처럼 꿈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치료 도중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 내 자식을 잃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치료 중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혜경이, 호원이, 주완이, …. (솟구치는 슬픔에 잠시 말을 못하다가)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노래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공연이 아픈 아이들에게 큰 힘은 될 수 없지만, 우리의 돕고싶은 '마음'이나마 전달되어 조그만 희망과 용기는 줄 수 있다고 믿기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의 겉모습은 흔히 말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처럼 보이지만, 꺼져 가는 어린 생명이 안타까워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잇지 못했다. 중년의 이 회장 모습에서 진정한 이웃사랑과 자상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러한 '어린 생명 살리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500여회 자선공연을 부산·경남지역에서 해왔으며, 그 수익금 전액인 약 2억1천만 원으로 200여명에게 치료비를 도왔다. 지난 한 해 동안만 부산·경남지역의 환아 총 15명에게 1129만 원의 치료비를 남모르게 지원하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 회장은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밝히기를 무척 쑥스러워 하며 밝히기를 꺼렸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는 환아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다'는 기자의 간곡한 부탁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15년 전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듀엣 '수와 진'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공연을 보고 이 일을 꼭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실 '음치'이기 때문에 직접 노래를 할 수 없어 고민하던 중, 당시에 제가 운영하던 레스토랑 한 쪽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저와 뜻을 같이 할 무명가수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부를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자선공연 봉사를 나간다는 조건이었죠."
"이렇게 하나, 둘 모여든 봉사자들이 첫 공연을 시작한 것은 1998년 2월 14일입니다. 출범 초기에는 주로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장애노인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치료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백혈병 어린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백혈병·소아암 환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음악세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혈병·소아암 환아들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자 지금까지 자선음반 1·2·3·4·5집을 발표하여 수익금을 전액 지원하였고, 저희 음악세상 출신가수 '준'(JUN)과 양선호도 뜻을 같이하여 음반판매 수익금을 치료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4년 새해 소망을 묻자 이 회장은 다음과 같이 우리 사회와 국가의 소아암·백혈병 어린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골수기증 동참을 소망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백혈병·소아암 어린이들이 4만 여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 환자 부모의 대부분은 30대 초반입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치료비는 엄청난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가정의 경제적인 능력으로 지킬 수 없는 어린 생명들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힘 모아 지켜주려는 이웃의 따뜻한 '관심'이 더욱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소아암 지원특별법'을 제정하여 어린 생명을 구하고, 경제적인 파탄으로 해체되는 환아 들의 가정도 지켜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골수 부족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의 골수기증자는 대만의 1/4에도 미치지 못해서, 부족한 골수를 일본, 대만 등지에서 수입하는 실정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골수기증에 동참하기를 기원합니다."
한 때, 디자이너를 꿈꾸며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회장의 아들인 가수 '준'도 아버지의 이러한 뜻을 이어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메신저가 될 것을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백혈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가엾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거듭 다짐하게 됩니다."
"새해에도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이면 소아암과 백혈병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을 방방곡곡에 홍보하고, 소중한 어린 생명과 그들의 꿈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그 날까지 우리의 노래는 메아리 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