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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26,714,364원.

언뜻 얼마인지 계수가 안 되는 이 12자리 숫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진 빚의 정확한 총액이다. 1888억원에 이르는 이 돈은 전두환씨의 미납추징금. 올해 검찰은 전두환씨의 미납금을 환수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하고 가재도구와 별채를 경매하기까지 했지만 소득은 미미했다.

경매에 참여한 한 시민의 말처럼 "동사무소의 딱지가 필요한" 가재도구 49점은 1억9950만원에 팔렸고, 또 전씨의 처남이 사들인 연희동 별채의 최종 경매가는 16억4800만원(아직 입금되지 않았음)이었다. 그래봤자 합계는 20억도 안 된다. <오마이뉴스>가 연초부터 1891억원 미납 추징금 환수를 떠들었지만 미동도 않고 있는 셈이다.

▲ 지난 4월 28일 오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이양우 변호사(오른쪽)와 함께 재산명시 심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부지원에 출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에게 전두환씨는 올 한해 잊지 못할, 아니 잊지 '않을' 취재원이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씨에게 12·12 군사반란 및 내란수괴, 5·18 내란목적 살인 등의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재벌총수들로부터 거둬들인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뇌물로 인정,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본형은 특별사면되었고, 추징금은 지난 6년 동안 332억여원 정도가 환수되었을 뿐이다. 더욱이 본인이 자발적으로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전두환씨 1882억원 미납추징금, 2007년 1월까지 받아내지 않으면 자동소멸

2003년 1년 동안 <오마이뉴스>는 전두환씨에 관한 뉴스를 줄기차게 보도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전씨의 벤츠 승용차를 강매처분한 뒤로 추징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련법에 따라 3년 동안 추징내용이 없으면 시효가 자동 소멸된다. 올해가 바로 그 해였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검찰과 법원은 서둘러 재산명시신청과 별채·가재도구 경매 등을 통해 시효를 3년 더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2007년 1월 30일(내년 1월 30일 별채경매 배당일 기준)이 전씨의 추징금 만료일로 연장됐고, 다시 '카운트'가 시작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역사의 죄인에게 부여된 '죄값'을 받아내기 위해 전씨와 관련한 뉴스현장을 쫒아다녔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허탈한 점이 많았다.

재산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악의적인 채무자에게 재산을 공개토록 명령하는 제도인 재산명시신청. 전씨는 재산명시신청을 위해 법정에 출두한 자리에서 판사가 "측근들과 자식들이 추징금은 대신 안 내주나요"라고 묻자 "그 사람들도 겨우 사는 정도"라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전씨는 이를 가볍게 '기만'했다. 처남인 이창석씨가 감정가의 2배를 써내는 바람에 연희동 별채는 다시 전두환씨에게 돌아갔고, 또 진돗개 2마리를 포함한 가재도구 일부도 돌려 받았다. 전씨는 경매품을 되돌려준 사람들에게 답례로 '반야심경'이라고 쓴 친필휘호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또 정치인들은 꼬박꼬박 전두환씨를 찾아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식 때 전씨를 초대했고,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도 대표가 되지마자 전씨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ADTOP@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대지 385평 규모의 본채(B)는 이순자씨 명의로 되어 있고, 대지 96평 규모의 전씨 소유의 별채(A)는 지난달 실시된 경매에서 처남 이창석씨에게 낙찰되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회의가 들곤 했다. 과연 전두환씨가 추징금을 통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전두환씨는 법정 출두할 때나 경매를 전후한 때를 빼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찰과 골프장을 다니며 노후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재용씨 수사하면 연희동 사저 압수수색, 3년 이하 징역 가능해질까?

그리고 법은 무력해 보였다. '5공 청문회' 당시 백담사로 떠나면서 국가헌납 의사를 밝힌 연희동 사저는 부인인 이순자씨 소유라 추징의 대상이 아니며, 10대 손자들을 비롯한 배우자, 자식의 재산은 240억원대에 이르지만 이 또한 추징이 불가능하다.

본인 소유의 재산은 현금 29만1천원이 전부라고 밝힌 전직 대통령에게 법이 집행할 수 있는 추징금 환수내용은 없다. 별채가 마지막이었다. 이제 남은 몫은 검찰의 손에 달렸다.

그러던 차 전두환씨의 비자금으로 보이는 검은 돈이 포착되었다. 전씨의 추징금 환수를 바라는 국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11월 검찰은 현대의 대선비자금을 조사하던 중 100억원대에 달하는 '괴자금'을 발견했는데, 이 돈이 전씨의 차남인 재용씨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재용씨의 돈과 아버지 전두환씨 비자금 사이의 연계성을 수사하기 위해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재용씨에게 여러 차례 소환장을 발부했지만 불응하고 있는 상태다. 귀국할 기미를 보이던 재용씨는 언론보도가 커지자 몸을 숨겼다.

이후 검찰발 뉴스는 끊겼다. 그렇다면 가족으로 번져간 전씨 비자금 추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100억대 괴자금 계좌추적 과정에서 드러난 재용씨의 주변인물이 전두환씨 비자금 자금관리인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고 검찰은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제 전두환씨 숨은 재산에 대한 의혹은 재용씨로 모아졌다. 여기서 만약 실마리가 풀린다면 연희동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뿐만 아니라, 사법처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재산을 빼돌린 점이 드러나면 강제집행면탈의 죄가 적용돼 집을 압수수색할 수 있고, 또한 29만1천원이 전재산이라고 허위로 재산을 신고한 죄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 부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추징금은 후대에 대물림되지 않는다. 내년이면 벌써 전두환 전대통령의 나이는 일흔셋이다.

집권 과정이나 대통령 재임시절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퇴임 이후에도 온갖 특혜는 다 받으면서 보통사람만도 못한 처신으로 국민적 구설에 오르고 있는 전씨를 보면서 연민의 정을 떨칠 수가 없다.

@ADTOP_1@

세상이 다 아는 형국인데도 전재산이 29만원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그런 전직 대통령을 두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부끄럽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의 무법질주, 오마이는 파파라치
[낙종기] '신호 잡고' 시내 질주하는 전직대통령 차 따라 잡으려다…

▲ 6월 11일 서울 구파발 소재의 한 사찰을 방문하고 연신내 사거리를 통과하고 있는 전두환씨 일행 차량.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마이뉴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시내를 다닐 때조차 교통신호등을 잡고 무사통과한다는 제보를 받고 전씨의 외출에 동행할 채비를 여러 차례 했었다. 하지만 재산명시 심리를 앞두고 법정에 서야 할 처지라 여론을 의식한 전두환씨가 측근들과의 정기산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취재팀은 몇 차례 '물'을 먹었다.

그러다 6월 11일 드디어 <오마이뉴스>는 전씨가 자주 다니는 서울 구파발 인근의 모사찰에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씨 차량을 따라붙었다. 하루 전날 동선을 사전답사하며 신호등의 위치까지 점검했다.

드디어 디데이. 연희동 사저에서 사찰로 향하는 길은 두 방향이었다. 취재팀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취재팀이 '손바닥에 침을 튀겨' 선택한 길과 다른 길로, 이미 전씨는 절에 도착한 상태였다.

취재팀은 그 뒤를 따라가며 교통경찰관들로부터 '궁2'(전두환 씨를 일컫는 경찰들 은어. 경찰은 최규하 전 대통령을 '궁1', 노태우 전 대통령을 '궁3'로 일컬었다)가 신호를 잡고 통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기회는 절에서 연희동으로 돌아오는 길뿐이었다. 절 입구에 주차된 전씨의 체어맨 승용차와 경호원, 측근들의 검은 승용차 여러 대를 확인하고 취재팀은 대기해 있었다.

낮 12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전씨 일행은 산행을 접고 하산,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1시 식사를 끝내고 드디어 전씨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바짝 긴장하며 따라붙었으나 전씨가 탄 차량 뒤에는 측근들의 차가 서너대 따라 움직였고, 또 좌우에는 경호원의 차가 있어 '티를 내지 않으면서' 뒤따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교통이 복잡한' 연신내 사거리를 바로 앞두고 전씨 차량 중 한 대가 갑자기 멈춰섰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자가 내리더니 뒤쪽의 취재팀 차량을 쳐다보았다. 눈치를 챈 것이다. 취재팀은 들켰어도 어쩔 수 없다 싶어 줄기차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웬 걸, 횡단보도 신호등마저 꼼꼼히 지키며 운전을 하는 게 아닌가.

시내에 진입하자 경찰 '빽차'가 등장, 맨 앞에서 전씨 차량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만약 취재팀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전씨는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일사천리 집으로 주파했을 것이다. 당시 <오마이뉴스>의 취재팀은 동영상 카메라, 사진기자, 취재기자 등 총 5명이 동원돼 007작전을 폈으나 끝내 '결정적인 한 장면'을 잡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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