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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연말기획으로 올 한해동안 기자들의 취재수첩을 빼곡히 채웠던 취재원 중 '잊지못할 사람'들을 찾아 그 후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그 첫번째로, '한총련 장기수배자들의 수배해제 그 후' 입니다...편집자 주

▲ 지난 7월25일 오전 검찰이 한총련 수배해제 방침을 발표하자, 한 수배학생의 어머니가 이산라(왼쪽)씨의 의 손을 붙잡고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며 위로하고 있다. 이후 수사기관에 자진출두했던 이씨는 현재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무리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취재는 곧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일이라지요. 사회부 기자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던 2003년. 한해를 돌아보며 '잊지 못할 취재원'을 떠올려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마음 속에 인상깊게 남아있는 얼굴들은 '한총련 장기 수배자'들입니다. 올해처럼 급수를 따지지 않고 수배자들을 많이 만날 기회는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25일 대검의 '수배해제 조치' 이후, 대부분의 한총련 수배자들은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출두 이후, 그때 그 얼굴들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가장 기쁜 소식은 결혼 얘기입니다. 지난 8월 나란히 목포와 부산에서 경찰에 자진출두 했던 송승훈(30)·이현주(31. 여)씨는 부부가 됐습니다. 송씨와 이씨는 한총련 최장기 수배자(7년 수배)들이었습니다.

11월 30일 화촉을 밝힌 이들은 현재 경기도 안산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인생의 동반자'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신랑 송승훈씨는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연인이 돼 있었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네요.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무려 6박7일간 다녀왔답니다. '부럽다'는 말을 연발하자 송씨는 "관광은 아니었다"면서 "낚시도 하고 귤 농장에 가서 귤도 따면서 참 오랜만에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다 왔다"고 합니다. 7년만에 하는 연애다운 연애였을 것입니다. 7년간 했을 그들의 속앓이를 생각하니 '너무 오래 다녀왔다, 부럽다'는 처음 반응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동지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을 이들, 앞으로도 야무지게 결혼 생활할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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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결혼한 '수배자 커플'... 늦깎이 군복무 시작도

▲ 지난 8월 수사기관에 출두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송승훈씨. 송씨는 이후 같은 수배자 신분이었던 이현주씨와 결혼했다.
ⓒ 정거배
올해 2월부터 약 7개월 동안 서울 연세대에 상주했던 이산라(28. 01년 단국대 총학생회장)씨와 유영업(28. 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송용한(29. 고려대 서창캠퍼스)씨는 어떻게 됐을까요? 세 사람은 올 한해 열심히 발로 뛰면서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모임'을 통해 수배자 인권문제를 알리는 데 힘써온 사람들입니다.

먼저 용한씨는 늦깎이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12월 중순 입대해 현재 '상근 예비역'으로 도시락을 들고 출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라씨와 영업씨는 본업인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더군요. 법학도였던 산라씨는 내년 2월이면 졸업을 하고, 영문학도였던 영업씨는 한 학기를 더 다닌 뒤 내년 8월에 코스모스 졸업을 한다고 합니다.

마냥 좋은 나날을 보낼 줄로만 알았는데 영업씨는 독한 감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출두 당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던 영업씨는 약 2주간 수사를 받은 뒤 구속이 취소됐습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으니 앞으로 3년은 아무래도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겪겠지요. 하지만 숨어다니기만 했던 지난 7년 세월에 비하면 한층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업씨는 처음에는 "많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끝나고 풀려난 뒤에 영업씨는 우울증을 겪고 석 달 동안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고생했다고 합니다. 몸도 마음도 독한 감기에 걸린 게지요.

영업씨는 감기의 원인을 중압감 때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수배자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기에 바빴다"고 했습니다. 수배생활의 후유증이지요. 당장 군대 문제며, 직업 문제, 학업 문제가 걱정이었을 것이고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도 마냥 편하기 보다는 어색했을 겁니다.

애초 바람대로 올해 회갑을 맞은 아버님의 생신날 몇년 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는데도 영업씨는 한편으로는 웃고 얘기하며 밥을 먹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내 어색했다고 합니다.

산라씨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산라씨는 무엇보다 매일매일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친구들과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학교 앞 술집에 가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하네요. 그간 바뀐 버스 노선을 익히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하구요. 수배생활 중에 돌아가신 할머님의 묘소도 뒤늦게 찾아 뵈었다고 합니다.

산라씨는 현재 항소심 재판 중입니다. 산라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 판결은 오는 23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재판부의 전향적인 판결로 산라씨 가족에게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게 되길 바래봅니다.

▲ 지난 7월25일 검찰이 발표한 수배해제 방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유영업 수배해제 모임 대표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유씨는 현재 내년 8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직도 수배자 후배가 생기는 현실 안타까워"

오랜 수배생활을 끝냈음에도 산라씨와 영업씨는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씁쓸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대검의 조치가 있은지 석달만에 연세대 정문 앞에는 또다시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농성 천막이 들어섰으니까요.

산라씨는 "올해 수배자들의 인권문제를 알리는데 노력했고 성과 중의 하나로 대검의 7·25 조치가 있었지만, 아직도 수배자 후배들이 계속 생겨나고 법원은 11기 한총련도 여전히 이적단체로 보고 있지 않느냐"며 씁쓸해 했습니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있는 말이었습니다.

산라씨는 이어서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대의원이면 자동 수배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며 "한총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후배들이 힘을 내서 남은 몫을 해내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영업씨도 후배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영업씨는 "올해 대검이 좀더 전향적으로 풀렸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계속 수배자를 낳게 됐다"며 "그래도 후배들이 해결의 연장선에 서 있다는 희망을 갖고 넓게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오랜 수배생활을 접고 새 삶을 찾아 나선 이들. 두려움 반 기대 반의 현실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익숙했던 7년 수배생활보다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힘들지도 모릅니다. 7년간 대학생 수배자를 양산해온 부끄러운 대한민국 현실의 반영입니다.

과연 이들에게 원죄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원죄는 7년간이나 수없는 대학생 수배자들을 양산한 공안당국과 구태의연한 재판부, 그리고 '구시대 악법'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에 게으른 국회의원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석 달 만에 하는 통화를 끝내면서 영업씨가 한마디 건넵니다.

"모두 행복해져야지요. 기자님도 행복하세요!"

영업씨가 바라는 '모두의 행복', 바로 더 이상 양심수와 대학생 수배자가 양산되지 않는 현실, 바로 그것일테지요. 저도 기자로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올해 만났던 한총련 수배 학생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분들께 인사드립니다. 귀찮았을지도 모르는 제 숱한 질문에 싫은 내색 한번 않고 친절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보잘 것 없었던 기사에 직접 이메일로 의견을 보내주셨던 부모님들, 그 편지 아직도 마음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밖에도 제가 올해 만난 모든 취재원들께도 인사 전합니다. 새해에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사를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검의 7·25 조치, 절반의 조치다"
이후에도 계속 양산되는 한총련 수배

지난 7월 25일 검찰은 이례적으로 한총련 수배문제에 대한 공식 방침을 밝혔다.

대검은 이날 한총련 중앙조직 가입 등의 혐의로 내사중이거나 지명수배중인 152명 가운데 79명에 대해 우선 불구속 수사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외의 수배학생도 수사기관에 자수하고 반성할 경우 최대한 관용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검은 11기 한총련에 대해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 수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방침도 덧붙였다.

이 조치 이후 한총련 장기 수배자를 비롯한 수배학생들의 자진출두 행렬이 이어졌다.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모임'의 대표를 맡아왔던 유영업(28)씨는 현재까지 약 70여명의 수배학생들이 수사기관에 자진출두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수배해제 조치가 있은지 석 달이 지난 현재, 대검의 조치는 '절반의 성과'였다는 평이 한총련 안팎의 의견이다. 조치 후에도 새로운 한총련 수배자가 계속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10월 이후 정재욱(23. 연세대 총학생회장) 의장을 비롯해 11기 한총련의 간부급 대의원 40여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물론 7년간 이어졌던 수배자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말에는 이라크 파병반대 단식농성을 벌이다 쓰러져 병원에서 난소종양 판정을 받은 조현실(24. 국민대 총학생회장)씨가 수술 등 조치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조씨는 11기 한총련 산하 지역총련의 간부로 지난 10월 이후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혐의(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 위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그간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한총련 학생들의 치료 보장 요구와 각종 언론에서 보도가 잇따르자 당시 경찰은 이례적으로 "본인이 입원 및 수술을 원할 경우, 입원-치료 시까지 체포영장 집행을 보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도 수배자 신분인 조씨는 수술 뒤 집이 아닌 학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농성장도 다시 등장했다. 10기 한총련 산하 15기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의장이었던 정종성(23. 02년 광운대총학생회장)씨가 지난 10월 16일부터 연세대 정문 옆에 천막을 차린 것. 정씨는 이때부터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국가보안법 철폐 한총련 무기한 농성단'을 꾸리고 8기 한총련 대의원이었던 안주희(2000년 전남대 사범대 학생회장)씨와 함께 노상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아직 한총련 학생들의 수배생활도, '이적규정을 철회하고 합법화하라'는 요구도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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