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곽재구의 포구 기행>
책 <곽재구의 포구 기행> ⓒ 열림원
사랑의 바다, 실연의 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과 함께 바다에 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또한 바다에 간다. 도대체 바다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길래, 사랑의 마음을 함께 하고 실연의 아픔을 달래 주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곽재구는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살다 보면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외로움이 깊어질 때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이의 집에 전화를 건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외로울 때가 좋은 것이라고.

"물론 외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충분히 견뎌내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아파하고 방황한다. 사랑이 찾아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랑이 찾아올 때……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중략)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동해안의 맨 끝, 나라 안에서 해가 맨 먼저 뜨는 마을인 구룡포에서 저자가 느끼는 외로움은 항구의 아름다움에 씻겨 내려간다.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나 술 이름, 어린 시절 고향 동리의 이름을 새겨 넣은 뱃머리들을 바라보면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를 함께 느낀다.

생생한 삶의 터전으로 존재하는 바다

바다가 사랑과 실연,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낭만적인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멸치잡이배들의 요란한 멸치 경매 소리, 갯벌을 터전으로 삼고 조개를 캐어 자식들 공부시키고 살림살이하는 아낙네들의 목청이 있는 곳이 바닷가이다.

뿌듯한 땀방울을 흘리며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저자에게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멸치배에서 그물을 터는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따분하고 어리석었던 모습들을 날려 보낸다.

"길 위에 길게 늘어섰던 차량들아 미안해. 차 속에 앉아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눈빛의 사람들 또한 미안해. 당신들이 힘들게 길 위에 앉아 뻥튀기를 먹고 오징어다리를 깨물던 시간들 뒤에 이런 싱싱한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지. 미안해. 어디선가 다시 길게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다시는 짜증내지 않을 거야."

어부와 아낙들의 삶이 살아 숨쉬는 이 공간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처한 삶을 생각한다. 시인으로, 수필가로 바쁘게 달려 왔지만 과연 무슨 꿈을 꾸면서 살아 왔던 것일까. 바닷가에서 만난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을 할머니께서 방황의 길을 걷고 있던 저자에게 던진 한 마디 말은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 법이여."

이상과 동경의 공간, 바다

그렇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 법이며,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또한 바다이다.

"한동안 바닷가를 여행할 때면, 나는 갈매기를 찾는 버릇이 생겼지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갈매기들이 다 동일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먼바다의 푸른빛, 동경, 긴 항해, 자유로운 비상. 그것들이 갈매기의 눈빛을 이룬 것은 아니었을런지요. 이승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눈빛이 갈매기의 그것을 담아낼 수 있다면…."

끝없이 펼쳐진 먼바다의 푸른빛을 동경하며 꿈을 꾸는 갈매기처럼, 우리 인간 또한 바다의 푸른 꿈에 발을 담그고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 지나간 시절들은 아름다웠는지요. 꿈과 그리움의 시간들이 단풍빛으로 화사하게 물들었는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포옹할 수 있었는지요.(중략)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자신의 거짓말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가 되고 폭력이 되지는 않았는지요. 십 원이나 백 원 때문에, 먼저 주차할 공간 하나 때문에 내 앞의 사람과 싸우지는 않았는지요. 혹여, 꿈이나 그리움이 어디 있는지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저 벌레처럼 돈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따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쓰라리기도 했던 지나간 시간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넓고 넓은 바다처럼 새로운 시간들은 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법이다.

그러니 가끔은 우리도 바다에 가서 새로운 꿈을 꿀 필요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긴긴 외로움의 시간을 버리고, 멸치배의 노랫소리에 삶의 생명력을 느껴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운 시간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꿈을 꾸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지….

곽재구의 포구기행 - 꿈꾸는 삶의 풍경이 열리는 곳

곽재구 글, 해냄(201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