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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따뜻한 세상을 진행하고 있는 하지은 아나운서
MBC 따뜻한 세상을 진행하고 있는 하지은 아나운서 ⓒ 윤태
“저기, 혹시 TV에 나온 분…?”
“네….”

식사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우리 부부를 힐긋힐긋 살피던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어렵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맞죠? 몇 일전에 거기 뭐지…, 어디더라?
“네, 따뜻한 세상.”.
“아, 맞아, 맞아.”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손뼉을 쳤습니다. 중복인 26일 칼국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칼국수 집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 부부를 알아보셨다. 이에 멋쩍어하는 아내 모습
칼국수 집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 부부를 알아보셨다. 이에 멋쩍어하는 아내 모습 ⓒ 윤태
지난 22일 화요일 새벽 1시, 아니 12시가 넘었으니깐 엄밀히 따지면 23일이 되겠네요. 여하튼 저희 부부가 출연한 MBC 〈따뜻한 세상〉프로그램이 늦은 시간에 방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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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프로그램인 따뜻한 세상은 이날 〈아내는 못말려〉라는 제목으로 지독하게 절약하는 아내의 여러 모습을 20분 동안 담아 전국으로 내보냈습니다.

전국 방송을 타고 나간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심야방송인만큼 그렇게 큰 여파는 없겠지 하면서 아내와 저는 TV속의 우리 모습을 보며 한껏 웃었습니다. 방송이 끝난 시간은 1시 20분. 끝남과 동시에 대여섯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부부가 방송에 나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가족과 몇몇 친구, 그리고 선후배 몇명 정도였습니다.

절약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인터뷰 방영장면
절약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인터뷰 방영장면 ⓒ 윤태
수요일인 다음날, 오전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시회장을 방문했을 때 한명의 도우미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전시회 참석한 업체직원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서 있던 도우미가 꾸벅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유도 모르고 같이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잘 봤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잘 봤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해당업체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 회사 직원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도우미였습니다. 그녀는 다시 말을 바꾸어 “어젯밤에 잘 봤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아, 네 ….”

그제야 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고 얼굴이 붉그레졌습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까지 안주무시고 TV를 보셨나요?”
“네, 자는 시간이 새벽 3시예요, 오늘 행사가 오후에 있어서요.”

직업특성상 그 시간에 취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그런 사람도 있구나”생각하면서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세일품목이 많은 슈퍼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세일품목이 많은 슈퍼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 윤태

물건사는 장면이 방영되는 동안 불을  끄고 촬영해보았다. TV화면이 더욱 선명하다.
물건사는 장면이 방영되는 동안 불을 끄고 촬영해보았다. TV화면이 더욱 선명하다. ⓒ 윤태
목요일인 다음날은 하루종일 내근을 했습니다. 금·토요일도 내근이었고 일주일 내내 승용차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특별하게 대중 앞에 나설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TV에 출연했던 일은 점점 잊혀져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출연의 여파는 복날인 어제 26일 저녁때 나타났습니다. 저녁 8시쯤 삼계탕을 먹기 위해 아내와 집을 나섰고 은행동 시장통을 지날 때 물끄러미 통로를 내다보고 있던 떡볶이 아주머니가 “잉? 그 새댁 아냐? 맞구만. 그렇게 절약을 한다던 그 새댁이여”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황급히 시장통을 지났습니다.

“와,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네?”

프로그램 방영에 앞서 마지막 광고가 나가고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 따뜻한 세상 자막이 보인다. 아내가 서둘러 비디오공테이프를 넣고 있다.
프로그램 방영에 앞서 마지막 광고가 나가고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 따뜻한 세상 자막이 보인다. 아내가 서둘러 비디오공테이프를 넣고 있다. ⓒ 윤태
우리 부부는 이 사실을 재미있어하며 삼계탕집을 찾아 헤맸습니다. 복날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면서 길을 걷는 동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이는 스쳐 지나갔는데도 뒤돌아 저희 부부를 응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TV 때문에 그런가”생각도 했지만 그들은 말을 걸어오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부부를 예의주시 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며 우리 부부를 마주쳐 지나갔고 이를 수상히 여긴 제가 뒤돌아 서서 그들을 향해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러자 “맞다, 맞어”하면서 저희들끼리 낄낄 웃으며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일을 사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이유를 아내가 설명하고 있다.
과일을 사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이유를 아내가 설명하고 있다. ⓒ 윤태

아내의 얼굴이 클로즈 업된 장면이다. 불을 끄고 촬영한 결과 아내의 얼굴이 훨씬 선명히 나왔다.
아내의 얼굴이 클로즈 업된 장면이다. 불을 끄고 촬영한 결과 아내의 얼굴이 훨씬 선명히 나왔다. ⓒ 윤태
우리부부는 씽긋 웃으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방송 나갈 때 우리동네 성남 은행동 모습이 여러 번 비친 탓에 여기 사는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우리 부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닭집 몇 군데를 들렀지만 그곳은 2∼3만 원대 전문 토종닭 집이었고 결국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바지락칼국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삼계탕집을 찾아 헤매는 동안 우리 부부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기 한 무리 학생들 경우처럼 말입니다.

불이 환하게 켜진 바지락 칼국수 집. 자리를 잡았습니다.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옆을 보니 아주머니와 딸, 아들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자꾸 우리 부부를 쳐다봅니다.

“이크! 또 걸렸구나, 하필 이렇게 밝은 데서 …”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여지없이 질문이 날아든 것입니다.

“저기 혹시, TV에 나온 분 …?”

오후 내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별로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슬리퍼 차림으로 밖에 나온 우리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특히 아내는 “이럴 줄 알았으면 눈썹이라도 진하게 그리고 나올 걸”하며 아쉬운 소리를 내기도 했지요.

“에구,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TV 한번 나왔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큰 일인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하는 동안 필자도 옆 사람들이 너무나 신경 쓰였답니다.

마지막 장면이다. 모든것을 화해하고 다시 행복해지는 것으로 휴먼다큐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장면이다. 모든것을 화해하고 다시 행복해지는 것으로 휴먼다큐는 끝을 맺는다. ⓒ 윤태

촬영당시 인터뷰 대본을 들고 아내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두승택 프로듀서
촬영당시 인터뷰 대본을 들고 아내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두승택 프로듀서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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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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