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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 충북 단양]

할머니 머리맡에서 한번쯤 들어보았을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 바보 온달이 현명한 평강을 만나 출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주인공인 고구려 사람 온달은 도대체 어디서 살았을까?

충북 단양에 가면 온달 산성과 온달 동굴(온달 유적 몇 개 더) 등 유독 온달의 이름을 딴 유적들이 많다. 물론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때였으니 온달도 잠시나마 이곳에 살았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신라형 산성에 고구려 사람인 온달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온달과 연관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는 것이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위원회 김성한 간사의 말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와는 달리 대부분의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이 온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이고, 단양군도 '역사 마케팅' 차원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경 2 - 경기도 구리]

"고구려 – 고구리 – 구리!"
경기도 구리시의 이름의 기원을 둘러싸고 인구에 회자되는 말로, '구리'라는 지명이 인근의 아차산성 등 고구려와의 연관성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구리시에서도 말하고 있듯 구리는 1914년 3월 1일 부와 군, 면 폐합 당시 양주군 망우리면(忘憂里面)과 구지면(九旨面), 노해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구지면의 '구'자와 망우리면의 '리'자를 합해서 구리면(九里面)이라 한 데서 유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 고구려가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구리시에서는 지난 3월 2일 교문동에 위치한 '광개토 광장'에 '광개토태왕 동상'을 세우는 등 고구려를 활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지난 3월 2일 경기도 구리시 ‘광개토 광장’에서 열린 ‘광개토태왕 동상’ 제막식. 구리시와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 구리시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위례시민연대> 황기룡 사무국장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관광자원화하는 과정에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끄집어내거나 부풀리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도미부인 동상', 강동구 자체적으로라도 건립할 계획

그런데 최근 서울 강동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미(都彌) 부인 동상' 건립을 둘러싸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강동구가 한성 백제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인근의 천호동 광나루터를 도미의 부인이 배를 타고 왕궁에서 탈출한 나루터라고 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동구 내 천호동공원에 도미부인 동상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강동구에서는 1억여원의 예산을 배정, 서울시 문화국 전문가회의에 건립인가를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15일(화) 서울시 소유지인 천호동공원에 이를 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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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도미부인건립 계획 수정 불가피

그러나 강동구가 시유지인 천호동공원 이외의 지역에 자체적으로라도 도미부인 동상을 건립한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이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강동구 문화관광공보과 손규호 과장은 "서울시의 결정은 시유지에 세우지 않으면 괜찮다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강동구 차원에서 대체 부지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방자치단체 나름대로 관광자원을 발굴할 필요가 있는데, 도미부인은 뚜렷이 어느 자치단체에 우선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이미 지난 5월 강동구는 현상공모를 통해 트로트풍의 노래 <도미부인>(김동찬 작사, 박은표 작곡)을 발표한 바 있다.

무분별한 역사 복원은 역사 왜곡의 다른 말일 수 있어

그런데 이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먼저 애초 광나루는 도미부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팔당댐 주변 지표조사를 하면서 하남시 창우동과 배알미동에서 도미나루터 흔적을 발견한 바 있는 경기대박물관 상임연구원 유태용 박사는 "도미부인이 왕궁을 탈출했다는 도미나루터와 강동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이나 발굴된 유구를 볼 때 하남의 도미나루터가 도미부인이 탈출한 나루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역사적 근거 자료도 없고 따라서 평가 역시 힘든 상황에서, 선점의 논리로 무분별하게 역사 복원을 시도하는 것은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강찬석 위원장도 "한 번 잘못 복원된 역사는 현 세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그 영향을 끼쳐 그릇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보다 충분한 계획과 여유 아래 학술적 조사를 먼저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강동구의회 임인택 의원이 "아직 양로원이나 놀이터 하나 없는 열악한 동네가 많은 강동구 상황에서 도미부인 동상이나 세우는 것은 전시행정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등 주민 복지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요즈음 들어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문화재 복원 사업이 제대로 된 역사 고증 조차 하지 않아 자칫 역사 왜곡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과연 강동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도미부인’이 도대체 누구길래?

▲ 지난 1995년 문화관광부가 제작해 충남 보령시 도미부인 사당에 봉안한 도미부인 영정(지정번호 제60호). 윤여환 作.
ⓒ문화관광부
도미는 한성 백제 인근에 사는 평민이었는데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즉 도미의 아내, 도미부인이다.

나라 안에 아름답고 진실한 여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개로왕이 도미를 불러 말하기를 "무릇 부인의 덕은 정결이 최고이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찬성하지 않은 도미. 왕은 도미를 붙잡아 둔 상태에서 신하로 하여금 왕명이라며 도미부인을 탐하게 한다.

이에 여종을 보냄으로써 눈앞의 위험을 이겨내기는 하나, 속았음을 안 개로왕은 도미의 두 눈알을 빼고 작은 배에 띄어 보냈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던 도미부인은 궁을 탈출, 강가에 나와 배를 타고 천성도에 다다랐다가 도미를 만나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도미설화다.

강동구 역시 도미부인을 '정절의 표상'으로 보고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도미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와 동사열전(東史列傳),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을 비롯, 삼국사기(三國史記) 제48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춘향전>의 근원 설화로 알려져 있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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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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