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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갈등 빈발

군 현대화를 위해 일정부분 선진병기의 도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 군은 한미동맹 등을 이유로 미제 병기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아 이 점 늘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국방부는 지난 1980년대부터 무기도입선의 다변화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갈수록 미제 의존율이 심화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질 뿐이다. 신무기의 의존은 작전술이나 군사교리마저 대미 종속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무기체계 전문가는 한국군의 대미종속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이전에는 프랑스에 출장가면 그곳 국방부나 방위산업업체에서 적극적으로 무기자료 등을 제공해줬다. 그러나 요즘에는 본체만체한다. 지난해 F-15K가 선정되자 '성능과 기술이전 조건이 앞서도 한국은 미제 무기만 구입하니 신경쓸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미제무기 일색인 한국의 풍토를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줄 아느냐? 장기적으로 보라'고 권고했다."

▲ 연평해전에서 크게 활약한 이탈리아제 76mm 함포
ⓒ 해군본부
지난해 7월 한국은 구축함 KDX-3의 전투체계를 미제 '이지스'로 결정했다. 그러나 경쟁 장비인 '에이파(APAR)'를 생산하는 '탈레스 네덜란드'는 물론 주한 네덜란드 대사까지 나서 "미국에게 유리한 불공정 경쟁"이라고 반발했다.

이지스 체계의 주요 구성부분인 탄도탄 요격미사일 '스탠다드 블록4A'가 미국에서 개발이 취소됐다. 그러나 한국군의 작전요구성능(ROC)에는 계속 들어있었다. 네덜란드는 '에이파'가 이 분야를 제외하고는 가격이나 성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데 한국군 ROC에 계속 탄도탄 요격미사일 항목이 들어있는 것은 미국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기 입찰경쟁에서 떨어진 업체나 국가의 불만은 항상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형 무기체계 일수록 객관적 근거가 부족할 때도 미제를 구입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때문에 설사 공정한 평가를 통해 미제 무기를 도입한 경우에도 다른 나라들은 "한국은 원래 미제무기의 '천국'아니냐"며 비꼬았다.

해외 도입무기 '미제'가 압도적

지난해 9월 국방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970년대 이후 한국이 해외에서 직구입한 무기는 모두 14조6657억원치다. 이 가운데 미제가 76%(11조1481억원)로 압도적이고 영국(7.4%), 프랑스(4.9%), 독일(3.7%), 기타(8.0%) 순이다.

미제 무기의 비중은 70년대 전체의 84.7%(7295억원)에서 80년대 79.2%(3조3103억원), 90년대 이후 73.9%(7조1083억원)로 약간씩 줄기는 한다.

옆의 표는 외화로 구입한 것만 집계한 것이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제 무기의 도입비율은 평균 80%나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입한 무기가운데 계약금액 500억원 이상으로 미제가 아닌 것은 프랑스의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 유로콥터사의 'B0-105' 정찰헬기, 스페인의 중형 수송기 'CN-235-220M', 이스라엘제 레이더경보수신기(RWR)인 'SPS-1000(V)5', 무인 정찰기 'HAPPY'정도다.

도입 미제 무기에 대해 성능이나 기술이전 조건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면 한국군은 항상 '군 운용 적합성', '상호운용성'을 내세웠다. 한국군이 미제 무기에 익숙하고 한·미연합작전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F-15K를 선정할 때도 국방부는 기술이전·계약조건 등에서는 프랑스의 라팔이 우수하지만 '군 운용 적합성'에서는 F-15K가 우수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임무수행능력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4일 <한겨레>가 보도한 '차기 전투기 시험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라팔이 일반 성능, 무장 능력, 항공 전자장비, 신뢰성 가용성 정비성, 전력화 지원요소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앞섰다.

@ADTOP@
미제와 러시아 전투기 섞어쓰기도

<세계 각국 주요 전투기>

( )는 제조국, 토네이도:영·독·이탈리아 공동개발, 유로파이터:영·독·이탈리아·스페인 공동개발

국가

주력 전투기

영국
토네이도, 재규어(영·프 공동개발), 해리어(영), 유로파이터
독일
유로파이터, 토네이도F-4F(미국), MIG-29(러시아)
프랑스
라팔(프), 미라지2000(프), 미라지 F-1(프), 재규어(영·프 공동개발)
이탈리아유로파이터, 토네이도, F-16(미), F-104(미)
스페인
유로파이터, F-18(미), 미라지 F-1(프)
그리스
F-16(미), 미라지 2000(프), 미라지 F-1(프), F-4E(미), A-7(미)
대만F-16(미),미라지2000(프), 칭궈(대만), F-5E·F(미)
인디아MIG-27·29·23·21(러), SU-30(러), 미라지2000(프)
말레이시아
SU-30(러), MIG-29(러), F-18(미), F-5E(미), 호크(영)
이집트
F-16(미), 미라지2000(프), 미라지5E(프), 알파제트(프), F-4E(미), F-7(중), MIG-21(러)
이란
F-14(미), F-4E·D(미), F-5E(미), MIG-29(러), SU-24(러)
이스라엘
F-16(미), F-15(미), 크피르(이스라엘, 미라지5 전투기 개량형)
사우디아라비아
F-15(미), F-5(미), 토네이도, 호크(영)
남아프리카공화국
JAS 39 그리펜(스웨덴), 미라지 F-1(프)
파키스탄F-16(미), F-7(중), A-5C(중), 미라지 3·5(프), FC-1(중국·파키스탄 공동개발중)
ⓒ 오마이뉴스 김경화


위 표는 미국과학자협회(www.fas.org) 등 각종 군사안보사이트를 참조해 만들었다. 표에 언급된 나라들은 모두 지역적 군사 강국들이다. 그러나 '특정국 전투기 일색'인 나라는 거의 없다.

말레이시아·독일·이집트·파키스탄·이란 등은 여전히 전쟁터의 '맞수'인 러시아제와 미제 전투기를 같이 사용한다. 독일이 보유한 24대의 러시아제 MIG-29 전투기는 옛 동독 정권이 무너진 뒤 그대로 인수한 것이다. 독일 공군은 MAPS(MIG Aircraft Product Support International)의 도움을 받아 미제 F-4 팬텀, 유럽제 토네이도 등과 함께 운용중이다. 미 해병대도 영국제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사용한다.

상호운용성이란?

상호운용성이란 '동맹국 사이에 효과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각국이 동맹국의 무기체계와 단위부대 또는 군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한 동맹국으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국방연구원 <절충교역에 대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추진현황>)

상호운용성을 위해서는 특히 4가지 장비가 중요하다. 우선 서로간의 통신을 위한 무선통화장비다. 둘째 위성합법장비(GPS)의 군용코드다. 정확도가 20m인 군사용 GPS는 P코드라 불리는 암호체계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세번째로 나토가 데이터링크 체계 가운데 표준장비로 채택한 'LINK-16'의 비화코드다. 데이터링크란 지상통제소와 전투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이 레이더로 포착한 적기 및 아군기 위치정보, 아군 전투기의 무장 및 연료잔량 등의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무선 정보교환체계다. 이 데이터 링크의 비화코드를 미국이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아식별장비(IFF)의 비화코드다. 현재 한국군도 나토 표준의 피아식별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비화코드는 미국으로부터 인가받아 사용하고 있다. / 김태경
완전 독자적인 무기체계를 고수하는 프랑스의 사례는 눈길을 끈다.

프랑스는 현재 4대의 미제 보잉 E3F 공중경보통제기, 보잉 C135FR·KC-135R 공중급유기를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적은 숫자를 들여온 뒤 나중에 비슷한 장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아군기간의 오발 사고를 예방하고 적기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항공기를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적기를 어떤 무기와 방법을 사용해서 공격해야 하는지까지 아군기에게 알려준다. 공중급유기는 시속 수백 km로 비행하면서 동시에 여러 대의 전투기에게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이같은 사례는 차세대 전투기로 F-15K 이외의 전투기를 구입하면 한국 공군의 미제 전투기 또는 주한 미 공군의 전투기와의 공동작전에 장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한다.

주한 그리스 대사관의 무관인 존 올라스글로 중령은 "그리스 공군은 프랑스와 미제 전투기를 섞어쓰고 있지만 작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 군 관계자는 "나토에 체코·헝가리·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 등이 가입했다. 이들 나라 무기는 모두 옛 소련제지만 공동 군사훈련을 한다"며 "오히려 이라크전에서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아군기 2대를 격추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1999년 코소보전 때 프랑스의 미라지·재규어 전투기, 헝가리의 미그 29·21 등이 미군기와 함께 공동작전을 벌였다. 1991년 걸프전 때 한국군의 C-130 수송기를 비롯해 미제, 러시아제, 유럽제, 중국제, 자국산 등 천차만별의 군사 장비를 사용하는 26개국이 참전해 작전을 펼쳤다.

이스라엘은 1967년 중동전 때 노획한 수백대의 T54,55탱크를 개조해 80년대 초반까지 전투에 사용했고 베트남군은 미군이 버리고 간 M-113 장갑차를 운용중이다.

한 무기 중개상은 "결국 미국을 의식하는 정치적 이유와 한국군 스스로가 익숙한 미제 외의 다른 나라 무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제조국이 다른 무기라도 상호운용하는데는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연평해전서 활약한 이탈리아제 함포

▲ 프랑스 공군의 c135fr 미제 공중급유기.
ⓒ '
다른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군은 미제 외의 전투장비를 사용중이고 성과도 뛰어나다.

지난 1999년 6월 연평해전 때 한국 언론들은 남한 해군 승리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초계함에 장착된 76mm 함포를 꼽았다. 이 함포는 분당 8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이탈리아 '오토멜라라'사 제품으로 전자동이다.

'99 서태평양 훈련(Tandem Thrust)에 참가했던 한국 209급 이천함(1200t급)이 실전용 어뢰를 발사해, 표적함인 미국의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1만7000t)를 격침시켰다. 해군본부(www.navy.go.kr)는 "미 공군기가 쏜 메버릭 미사일 2발을 맞고도 끄덕않던 표적함을 어뢰 한 발로 두 동강내어 다른 나라를 놀라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209급 잠수함은 독일 'HDW'사 제품을 대우조선이 라이선스 생산한 것이다. 한국이 건조 예정인 214급(1800t)도 역시 같은 회사 것이다. 이 잠수함의 화력통제장치·소나는 물론 '오클라호마시티'호를 두 동강낸 어뢰도 독일 브레멘에 본사가 있는 'STN 아틀란틱 일렉트로닉'사 제품이다.

그런데 209급 후기 3척은 미제 하푼 잠대함 미사일을 장착한다. 지난 2002년 림팩 훈련 때 209급 '나대용 함'은 하푼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독일제 화력통제장치에 미제 미사일이 아무 이상없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해군본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한국·호주·캐나다·칠레·페루·일본·싱가포르 등이 참여하는 림팩 훈련에서 독일제 한국 잠수함도 공동 훈련을 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 육해공군의 기본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은 프랑스제 '미스트랄'이다. 지대공 미사일이야말로 자칫하면 아군기를 격추할 수 있어 상호운용성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한국군은 1997년 이후 4212억원어치의 미스트랄을 들여왔다. 그런데 이미 한국군은 1980년대부터 미제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어'를 사용했었다.

국산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마'도 눈 역할을 하는 탐지·추적장치 기술은 프랑스 '톰슨-CSF'(현 탈레스 네덜란드)사가 제공했다. 1970년대부터 해군은 일부 초계함에 프랑스제 '엑조세' 함대함 미사일을 장착해 사용했고, 육군은 스웨덴제 35mm '오리콘' 대공포를 운용중이다.

한 장교는 "미제 스팅어, 영국제 스타버스트와 경쟁한 미스트랄이 가격을 크게 낮추고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어서 구매했다"고 밝혔다. 한국군의 무기 도입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한 인사도 "70년대부터 영국·프랑스·독일제 무기를 일부 들여왔지만 사후 지원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F-15K를 둘러싼 논쟁이 남긴 이익

F-15K 도입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은 '무기 도입선 다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고물 비행기 배짱부리며 비싸게 판다"는 한국민의 비판을 의식한 보잉이 약간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우선 40대분 가격 44억5000만달러를 최종 42억3700만달러로 내렸다. 공군본부의 한 관계자는 "절충교역 비율도 80% 수준으로 이 정도면 잘 따낸 것"이라고 밝혔다.

보잉은 F-15K용으로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SLAM-ER'(사거리 270km)도 제공한다. 이 미사일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보잉은 처음에는 'JSOW'를 제안했었다. JSOW는 추진력이 없는 활공(滑空)식 유도폭탄이다. JSOW는 고고도에서 투하하면 60km, 저고도에서 투하하면 20km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는다.

보잉이 태도를 바꾼 것은 프랑스가 사거리 300km에 관통력이 콘크리트 벽 2.4m인 '스칼프' 미사일 및 제조 기술까지 제공하겠다고 한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한 현역장교는 "스칼프가 SLMA-ER보다 관통력이 2배 뛰어나고 기술 이전도 받을 수 있었다. 이것만 봐도 라팔을 선택해야 했다"고 아쉬어했다.

지난해 7월 해군이 KDX-3의 전투체계를 '이지스'로 결정할 때 미국은 가격을 2억달러 내렸다. F-X 사업에서 보여진 미제 무기 일방 도입에 대한 한국 안 비판 여론을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돈 주고도 '애걸복걸'

무기 가격은 사실상 '정가'가 없다. 철저하게 공급자와 수요자와의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80년대초 미국은 F-15를 이스라엘에게는 대당 2000만달러에 팔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대당 4000만 달러에 팔았다. 더구나 냉전 종식 뒤 세계 무기시장은 '수요자가 왕'인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도 대형 무기체계일수록 미제를 선택하는 한국의 풍토는 바뀌지않았다. 일방적인 미제장비 구입은 사실상 경쟁을 배제해 무기 값이 오르고 기술이전도 힘들다.

한 예비역 영관급 장교는 "미국은 자신이 보유한 무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5~10년 정도 앞선 상태를 유지하도록 무기 수출을 조절한다"며 "무기를 팔 때도 제공 순서는 1순위가 영국, 2순위가 이스라엘, 3순위가 일본 등"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한물간' 미제 무기를 사오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무기관련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지적도 했다.

"이스라엘 방산업이 발전한 것은 미국에서 도입한 무기를 뜯어보고 내부를 개량하거나 개조과정에서 많은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만약 이렇게했다면 미국이 가만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영향력 탓인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기술통제가 상당히 느슨하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 도입한 미제 무기의 밀봉도 뜯지 못했다. 미국이 한국군이 뜯어보고 개조하거나 기술을 모방할까봐 엄격하게 단속했기 때문이다. 고장나면 무조건 미국 본사로 보내야했다."

미제가 사후 군수지원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1989년 단종된 F-4D·E 팬텀기의 연간 유지비는 대당 평균 6억9300만원으로 F-16C·D의 4억6100만원보다 훨씬 많이든다.(2002년 국정감사자료). 이는 팬텀기의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부품 값이 상당히 비싼 탓일 것이다.

삼성테크윈이 터키에 K-9 자주포 수출을 추진할 때 엔진을 공급하던 독일 MTU가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삼성테크윈은 엔진을 영국 퍼킨슨사 제품으로 바꾸려고했고 결국 MTU는 엔진공급을 재개했다. 이는 무기거래뿐 아니라 일반 상거래에 있어서도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상식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군사교리, 작전술도 미제

국방부가 지난 2001년 내놓은 '국방획득개발서(02~16)'는 앞으로 무기 도입의 87%가 해외 도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조원 이상 사업 가운데 국외 도입의 비중의 95%로 더 높고 1000억원 이상 사업 가운데는 80% 수준이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한국에 국방비 증액을 과감하게 요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어짜피 한국이 구매할 무기의 대부분은 미제'라는 생각도 깔려있을 것이다.

특정 국가의 무기만으로 무장하면 군사교리나 작전술이 제공 국가에 종속된다. 한국군이 한국 지형에 맞는 독자적인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부대편제와 군사교리도 미국을 모방하는 것은 무기 체계가 미제 일색인 것과도 관련된다.

▲ 한국군의 기본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프랑스제 '미스트랄'
ⓒ EADS
한 군관계자는 "한국군은 수송·의무·화생방사령부 등 기능사령부를 계속 창설중인데 이는 미군을 모방한 것"이라며 "미군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투를 수행해야 하기때문에 기능부대가 발전했다. 그러나 이를 한국군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기능 부대의 증가는 한국군 조직 비대화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군 장비는 대개 '중후장대(重厚長大)형'이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특정 지역에서 비특정 적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미군 장비는 기능이 많고 복잡하고 비싸고 운영·유지비가 많이 든다. 따라서 한국군이 '미국식' 기계화·기갑부대를 증설하는 것에 대해 "산악 지형인 한반도에서 평원이나 사막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중(重)기갑부대의 효용성이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이 경량화되고 기동성있는 군대로 변신을 꾀하는 것은 '중후장대형'의 미제 무기가 엄청난 보급물자를 필요로하고 수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군사전문가인 제임스 더니건에 따르면, 미군 1개 기계화·기갑사단은 공격·방어작전을 할 때 하루 3600~4600t의 보급물자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80%가 연료와 탄약이다.

자주국방과 군 현대화를 위해 첨단무기 구입, 배치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첨단무기 구입에 앞서 강조돼야 할 것은 한국 지형에 맞는 독자적인 전투교리와 작전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한국군이 전투력 향상과 관련, 미제무기 구입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풍토는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잠수함이 미제가 아닌 이유는?
KDX-1,2는 미제와 유럽제 '혼합'

▲ 209급 나대용함이 하푼 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한 뒤 부상하고 있다.
한국 잠수함이 미제가 아닌 것은 독일 입장에서 봤을 때는 운도 따랐다. 미국의 디젤 잠수함 건조기술이 워낙 뒤떨어져 '명함'을 내밀 형편이 안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대전 뒤 대형 원자력 잠수함 건조에만 주력해왔고 디젤 잠수함 기술이 낙후됐다. 따라서 록히드 마틴 등 미 군수업체는 그동안 독일 HDW나 스페인 IZAR사와의 공동건조를 통해 기술을 이전받으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거부했다.

대만 해군은 미제 디젤 잠수함인 '구피'를 보유하고 있지만 교육용으로만 사용하고 전투용 잠수함은 프랑스제를 구입했다. 지난 2000년 209급 이후 차기 잠수함총 사업비 9734억원) 입찰경쟁에 미국은 끼지못하고 독일 HDW와 프랑스 SCORPENE가 경쟁했다.

그러나 혹시 미국이 입찰에 참여했다면 1996~2002년 F-X (총 사업비 5조6623억원), KDX-3 전투체계(총 사업비 1조921억원)에 이어 3번째 규모였던 차기 잠수함 사업을 다른 나라가 따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KDX-1·2 구축함은 미제와 유럽제 장비가 섞인 '혼합형'이다. 단 이 구축함의 레이더와 주요 무장이 모두 외제로 '껍데기'만 국산인 것은 국내 방위산업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함대공 미사일(시스패로우, 스탠다드), 함대함 미사일(하푼), 대공레이더(SPS-49V5), 어뢰는 미제다. 수상·사격통제 레이더는 네덜란드 '시그날'(현재 탈레스 네덜란드), 소나는 독일 'STN 아틀란틱 일렉트로닉', 전투정보 시스템은 영국 'BAeSEMA' 등 유럽제다.

5인치(127mm) 함포는 이탈리아 '오토브레다'사 것, 2대를 탑재하는 대잠 헬기는 영국제 '슈퍼 링스'다. 미사일 요격용 단거리 미사일은 미제 'RAM', 미사일 요격용 대공포는 네덜란드제 30mm '골키퍼'를 장착한다. 엔진도 고속용은 미 제너럴일렉트릭사 가스터빈 엔진, 중저속 및 순항용은 독일 MTU 디젤엔진이다.

미제 레이더가 한국형 구축함에 다가오는 적기나 미사일을 포착하면 네덜란드제 사격통제 레이더가 작동해 1차로 스탠다드 미사일을 발사한다. 대공 표적이 30km안에 접근하면 2차로 시스패로우(미제)가, 더 가까이 오면 3차로 RAM(미제)이 발사되고 맨 마지막에 네덜란드제 골키퍼가 요격한다.

공군은 훈련기로 영국제 호크를, 중거리 수송기는 스페인제 CN-250을 운용한다. '레이더경보수신기(RWR)는 지난 1999년 도입한 이스라엘제 'SPS-1000(V)5'다. RWR은 전투기가 적의 레이더와 무기체계에 포착되고 있는지를 감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투기 생존에 기본적인 장비다.

육군 K-1A1 전차, K-9 자주포의 엔진은 독일 MTU 것이며, 지상 감시레이다 (RASIT)는 프랑스제, 다목적전술차량은 스웨덴제를 기아자동차가 면허생산해 육군에 공급했다.

독일 공군이 옛 동독 공군의 MIG-29를 그대로 운용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항공우주전문가인 조명진 박사는 'Restructuring of Korea's Defence Aerospace Industry'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통일되면 한국 공군은 북한 공군이 보유중인 30대의 MIG-29를 운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이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MAPS(MIG Aircraft Product Support International)를 운영하는 회사 가운데 하나가 독일의 방산업체 DASA로 이 회사는 유로파이터 콘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통일 뒤 북한 공군의 MIG-29를 운용을 위한 전문성이 필요할 때 DASA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핵 위기속에서 먼 나라 일같고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치우친 의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군 무기 도입에 통일 이후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주장은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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