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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디엔 마을 전경. 뒤로 송잔린스 사원이 보인다.
중디엔 마을 전경. 뒤로 송잔린스 사원이 보인다. ⓒ 김남희

사람들이 운남성 북쪽 티벳과의 접경 지역인 중디엔과 더친으로 향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샹그릴라를 보고, 냄새 맡고, 호흡하기 위해.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 출간된 이후, 티벳 어느 곳에 숨어 있다는 이상향 샹그릴라는 낙원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목마른 꿈이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 그려진 샹그릴라는 생명의 호흡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갖추어져 있으며, 현자에 의해 통치되는 자유롭고 이상적인 공동체이다.

그런 샹그릴라를 꿈꾸며 이곳을 찾는다면 곧 허탈감이 가슴을 죄어 올 것이다. 이곳은 그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작은 변방도시일 뿐이기에. 몇 개의 절과 초원, 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야크와 티벳 양식의 집들.

중디엔 마을.
중디엔 마을. ⓒ 김남희

밭갈이하며 웃는 장족 처녀들.
밭갈이하며 웃는 장족 처녀들. ⓒ 김남희

아득히 보이는 눈 덮인 메이리 설산, 한족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기골이 장대하고 호방한 성격의 장족들. 그것이 샹그릴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풍경의 전부이다.

이곳이 '샹그릴라'라는 행정명을 갖게 된 것은 중국 정부의 약삭빠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서구인들의 '샹그릴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티벳에 선점해서 이름을 붙인 후 관광객을 끌어모아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

결국 이상향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이곳을 찾았던 이들은 '샹그릴라는 샹그릴라가 아니더라'라는 말을 남기고 또 다른 이상향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이상향을 찾아 헤맨다한들 우리가 찾는 곳이 우리의 이상향이 될 수 있을까.

야크를 몰고 밭갈이하는 사람들.
야크를 몰고 밭갈이하는 사람들. ⓒ 김남희

이른 아침의 중디엔.
이른 아침의 중디엔. ⓒ 김남희

리장에서부터 열 시간을 버스에 시달려 중디엔에 내린 날. 해발고도 3200미터인 이곳의 바람은 아직 차고 공기는 매웠다. 투명하고 강렬한 햇살은 티벳의 그것처럼 거리낌없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하늘은 짙고 푸르렀다.

나는 곧 이 도시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장족들이 자치현을 이뤄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독특한 끌림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

황폐해 보이는 마른 초원 밑으로는 새싹을 피워 올리려는 어린 풀들의 여린 숨이 모질게 붙어 있는 것처럼, 축 늘어져 몸을 낮춘 장족들 안으로는 팽팽하게 당겨져 긴장한 근육들이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예감들. 그것은 헛된 예감만은 아니었다.

메이리 설산의 품에 안긴 중디엔.
메이리 설산의 품에 안긴 중디엔. ⓒ 김남희

송잔린스 전경 - 중디엔에서 가장 큰 티벳사원이다.
송잔린스 전경 - 중디엔에서 가장 큰 티벳사원이다. ⓒ 김남희

이곳의 대표적인 사원인 송잔린스를 찾은 이른 아침.
섬세하고 결 고운 아침 햇살을 촘촘하게 받고 있는 들판에는 밭갈이하는 사람들과 야크들. 마을 언덕에서는 설산이 품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절에서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광경.

오전 공부를 끝낸 스님들이 절 마당으로 몰려나와 쉬고 있던 무렵.
절 한 구석으로 수많은 스님들이 모여들고, 곧 카메라를 든 사복차림의 경찰이 다가와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물리친 후 벽에 붙어 있던 종이를 떼어간다.

웅성거리며 서 있던 옆의 스님들께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거듭되는 내 질문에 그저 하는 말씀이라고는 "말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란다. 젊은 스님의 얼굴에 떠오른 불안과 공포를 보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혹시 티벳독립에 관한 글인가요?"고 묻자 스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맞다"고 대답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아, 아직 티벳 독립 운동은 이렇게 타오르고 있구나.
"Free Tibet" 전사들은 아직 살아남아 싸우고 있구나.
내 마음 속으로 번져 가는 안타까움과 슬픔.

송잔린스 - 티벳 독립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읽고 있는 스님들. (사진 왼쪽)
송잔린스 - 티벳 독립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읽고 있는 스님들. (사진 왼쪽) ⓒ 김남희

ⓒ 김남희

어제 저녁, 중국인 여행객들과 숙소에서 일하는 장족청년들과 어울릴 때의 일이다. 티벳은 왜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하는지, 통제하는 곳이 왜 그렇게 많은지를 푸념하는 내게 한족 청년이 대답한다.

"너 왜 그런지 다 알면서 왜 물어? 그건 정치적인 문제라는 거 알잖아?"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장족 청년.
그 얼굴에 드러난, 감춰지지 않던 비애.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최소한 티벳과 신장, 내몽고는 독립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철저히 장족을 탄압하며 티벳의 한족화를 서두르고, 약삭빠르게 중디엔에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같다 붙인 중국정부가 새삼스레 미워진다.

고요한 중디엔에서 며칠을 쉬듯이 머문 후 빙하를 볼 수 있는 빙추안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빙추안까지는 8시간.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인 길을 6시간 남짓 달려 더친에 내려, 다시 차를 갈아타고 2시간을 들어가야 빙추안이다.

빙추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단연 '올해의 버스' 수상감이다. 25인승 버스에 40여명의 사람들을 몰아넣은 데다가 그들이 도시에서 구입해 가는 엄청난 물건들로 버스 안은 병아리 한 마리 끼어 들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들일하는 가족들.
들일하는 가족들. ⓒ 김남희

재두루미가 날고 있는 나파하이 호수.
재두루미가 날고 있는 나파하이 호수. ⓒ 김남희

지지직거리는 스피커에서는 쉬지도 않고 '목청 찢기 대회'에 나온 가수들의 노래를 귀청이 찢어지도록 토해내지, 통로의 짐 위에 올라앉은 남자는 졸면서 자꾸 내게 기대오지, 내 앞자리 아줌마는 한 시간째 아침에 먹은 음식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고통스런 업무를 수행중이지...

그것뿐이라면 이토록 한숨이 나오지는 않으리라. 석유를 가득 싣고 달리는 차 안에서 담배 피는 무신경하고 용맹한 사람들과 해발 4000미터의 급커브길을 경적도 울리지 않고 과속 질주하는 운전기사.

단연 내가 타 본 최악의 버스이다. 문득 떠오르는 의문. '내 여행자 보험의 재해사고 보험금이 얼마더라?'

오직 내 마음을 달래주는 건 창 밖으로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설산의 위용이다.

빙추안에 도착하니 이 작은 마을에도 여관이 서너 개는 된다.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여관을 골라 짐을 푼다. 저녁을 먹기 위해 부엌에 들어가 가격을 흥정하는데 다리에서 법학을 전공했다는 28살 젊은 장족 주인이 우리를 놀린다.

"한국인들은 정말 대단해! 나 같으면 중디엔에서 여기까지 오면 피곤해서 쓰러졌을 텐데, 주인장 불러다놓고 밥값, 반찬값 1-2원을 깎고 있으니."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하게 잘 깎아준다.

밍양 빙추안 가는 길.
밍양 빙추안 가는 길. ⓒ 김남희
저녁을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마실을 나간다. 티벳 양식으로 예쁘게 지어진 집이 보여 문 밖에서 기웃거리니 역시 아줌마가 들어오라고 부르신다.

들어가 보니 빙추안으로 오는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장족 아줌마가 여관을 운영하는 곳이다. "여관을 하시면서 이곳에 와서 자라는 말을 왜 안 했어요?"라고 묻자 쑥스러워서 그랬다는 아줌마 대답.

돈 버는 일에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하는 한족과 다른 점이다. 다 마시기 전에는 못 돌아간다고 협박하는 칭커주를 반 잔 남짓 마신 후 내일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온다. 독한 술 반 잔에 달아오른 얼굴을 베개에 묻으니 귓전을 울리는 개울물 소리.

외지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그 작은 마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빙하가 떨어져내리는 굉음으로 아침을 맞고,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하루종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 빙하를 보고 내려와 햇살 잘 드는 마당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 후 짐을 꾸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곳에서 다리까지는 18시간.
창 밖을 내다보니 만년설에 뒤덮인 설산이 아쉬운 듯 몸을 기울여 따라오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무엇을 봤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대답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을 것만 같다. 내게는 이곳에서 보낸 매 순간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기에.

고개를 조금만 들면 어디서건 한 눈에 들어오던 눈 덮인 설산과 화려하게 채색된 창을 가진 장족들의 집, 붉은 장삼을 걸치고 말없이 골목을 오르내리던 스님들. 경계하는 마음 없이 낯선 이를 맞아 술잔을 건네던, 가난하고 아름다운 장족들. 억압과 감시 속에서 묵묵히 독립의 꿈을 키워 가는 그 낮은 목소리를 한 순간 들었다는 것.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밍양 빙하의 풍경.
밍양 빙하의 풍경. ⓒ 김남희

결국 어떤 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둔 기억들이다.

샹그릴라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곳.
아무 곳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가봐야 하는 거냐고 우문을 던질 이들에게는 까뮈가 알제에 대하여 했던 말로써 현답을 대신한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의 마음이 그냥 미지근하기만 하거든, 그대의 영혼이 그저 빈한한 짐승에 불과하다고 느껴지거든 그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 정오와 자정, 반항과 사랑 사이의 가슴을 찢어놓을 듯한 갈등을 겪어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바닷가에 피워 올리는 모닥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곳엔 어떤 불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더친에서 빙추안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메이리 설산의 모습.
더친에서 빙추안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메이리 설산의 모습. ⓒ 김남희

더친에서 빙추안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메이리 설산의 모습.
더친에서 빙추안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메이리 설산의 모습.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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