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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맞이한 참사 100일, 영정앞에서 통곡하는 유족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맞이한 참사 100일, 영정앞에서 통곡하는 유족 ⓒ 김광재
참사 후 백여일이 지나도록 지루하게 끌어오던 추모공원 문제가 이제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조해녕 대구시장의 최종결재가 남아 있고, 이 안에 대해서도 수성구 주민들이 반대를 할 것인지 유족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주변에 이미 큰 묘지가 조성돼 있고, 주위에 인가가 거의 없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가 풀릴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희생자 가족 대책위는 지난 1일 총회를 열어 이 안을 통과시킨 바 있으며, 백승홍 국회의원과 조기현 대구시 부시장은 이 안에 대해서는 시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추모공원의 핵심은 묘역이 아니라 안전교육장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은 대구시도 유족 측도 부족했다. 이번 지하철 참사는 비정상적인 한 사람의 방화로 촉발된 것이지만, 시민들이 편리함에 뒤따르는 위험에 대해서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드러내 보여줬던 것이었다.

추모공원의 핵심은 안전교육장

소방전문가들은 시민들 스스로가 소화기 사용법 등 재난 대비 행동요령을 익히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계로, 시스템으로 모든 것은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유족들은 "안전교육장이 중심이 되는 추모공원 조성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 주장해왔고 "안전교육장과 묘역은 분리할 수 있다"고 말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마지못해, 극히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합의 파기는 단적인 예다. 대구시는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뒤, 며칠 후에는 '법적으로 또는 예산상으로 불가능하다' 혹은 '인근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주민을 설득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거니와, 중앙정부가 약속한 지원을 받아 내려는 노력도 없었다. 오히려 희생자 대책위를 와해하려는 의도에서 '개별 장례를 치르면 보상금 협의를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꼼수'만 썼다.

그 과정에서 대구시 고위 간부들의 서명은 '낙서'가 됐고, 대구시의 약속은 '풍선껌'이 됐다.

대구시가 지금까지 파기한 유족들과의 서면합의문
대구시가 지금까지 파기한 유족들과의 서면합의문 ⓒ 김광재

3월 31일. 추모공원 부지를 현 KT&G부지(수창공원)으로 한다. 시비 우선 확보, 부족분 국비 보조 요청. 묘지공원조성 차원을 넘어 시민교육장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을 시민에게 설득 (서명 : 행정부시장 김기옥, 유가족대책위원장 윤석기)

4월 18일. 3우러 31일 수창공원으로 한정한 것은 대구시의 실수였음을 공표함. 추모공원 관련 TV토론후 여론조사 실시 후 수창공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추모사업추진위에서 선정. 합동영결식은 4월 24일로 하고 장례방법은 추후 협의. ※대구시장은 1번(추모공원조성)관련 주요사항결정 후 버스파업 문제로 이석하며 권한 위임함.(서명 : 대구시 대표 김기옥, 대책위 대표 윤석기)

4월 20일. [확약서] 희생자 대책위 위원장 귀하. 2003년 4월 24일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합동영결식을 위한 "영정안치제단"을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명 : 유족대책반장 강재형 代 한영기)

4월 26∼27일. 4월 18일 합의 내용중 1·2항 원안대로 시행하되 TV토론 양측 공동교섭, 추모사업추진위 구성은 5월 3일까지. 대구시는 추모사업추진위 의결 시행담보 방안 마련. (서명 : 대구시 대표 배상민, 희생자대책위 대표 윤석기)

4월 28일. 추모사업추진위 의결사항 시행담보방안으로 대구시측은 시의회의장, 언론사 대표 중 2명 선정, 유가족측은 시민단체, 종교단체 각1명 선정. (서명 : 대구시 대표 배상민, 희생자대책위 대표 윤석기)

5월 21일. [2·18 참사 희생자 묘지선정] 희생자 대책위원회에서 5월20일 대공원 주변 그린벨트에 물색한 묘지 후보지에 대해서 추모사업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그 결정에 따라 추진한다. (서명 :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조기현)


조해녕 대구시장은 이 모든 것을 법률적 한계, 반대 민원 등의 이유로 백지화했다. 유족들은 분개했지만, 이 문제의 본질과 과정은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유족들이 보상금 때문에 시신을 담보로 억지부린다'는 말이 나돌기까지 했다.

땅에 떨어진 대구시의 행정신뢰도

공무원들이 유족들과 현장을 돌아보고, 추모사업추진위가 심사하는 와중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묘역은 칠곡군 지천면으로 하고 추모공원은 희생자대책위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률적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대구시가 합의하지 않았어야 했다. 안 되는 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합의해 주는 게 250만 시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대구시가 할 일인가? 원래 안 되는 일이라면 유족들을 설득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 제시해야 했다.

만일 주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해, 혹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반대했다면 대구시는 주민들을 상대로 제대로 알리기에 나서야 옳았다. 추모공원이 단순히 도심 가까이 묘지 쓰겠다는 주장만이 아니라는 것은 시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구시는 스스로 계획한 일에는 찬성여론을 부추긴 적도 있지 않았는가?

이번 일에서 대구시는 시민들에게 추모공원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지'란 말에 시민들의 반대여론이 일자, 그것을 핑계삼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고만 했다.

대구시와 유족이 내가 하나 잃으면 네가 하나 얻는 '제로 섬'게임을 하는 관계는 아니다. 유족들은 장례도 못 치르고 100일을 지내고, 대구시는 U대회를 코앞에 두고 또 음악회로 비난받고 나서, 정녕 그러고 나서야 풀리는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구시는 과연 민선시대에 걸맞은 시민을 위한 조직인지 묻고 싶다. 그렇다고 답한다면 대구시가 위한다는 시민은 과연 누구인지 묻고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구시가 잃어버린 신뢰는 어찌 회복할 생각인가?

부시장, 국장의 서면 약속도 씹다버린 껌이 되고, 말로 한 약속은 그야말로 담배연기처럼 허망한 것이 되었는데, 조해녕 대구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시민들을 설득하며 시정을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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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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