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갈옷은 색감이 진해도 참 시원하다. 옷을 찾아 온 첫날 기분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특히 옷감이 많은 편이라서 대전에 사는 내 의동생 옷도 같이 만들었는데 우리는 진짜 형제답게 같은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갈옷은 색감이 진해도 참 시원하다. 옷을 찾아 온 첫날 기분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특히 옷감이 많은 편이라서 대전에 사는 내 의동생 옷도 같이 만들었는데 우리는 진짜 형제답게 같은 옷을 입게 된 것이다. ⓒ 전희식
어찌나 몸에 꼭 맞게 바느질을 잘 했는지 할머니 얼굴을 다시 보게되었다. 저고리 단추 구멍도 겹으로 덮어서 단추가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 한복을 입고 한 친구를 만났는데 잘 어울린다면서 여기저기 옷깃을 만져보고 들춰보고 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생감을 어떻게 주워 모았는지, 분쇄기로 갈 때 내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지, 볕에 말리기를 근 보름 이상하면서 하루하루 햇볕을 받을수록 옷감 색이 진하게 변해 가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내친김에 재봉틀을 하나 사서 직접 옷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했더니 참으라며 말린다. 저 할머니도 좀 벌어먹고 살게 제발 재봉틀은 사지 말란다. 못이기는 척 그러마고 했다. 일을 대책 없이 벌이기 좋아하는 나를 빗대 하는 충고리라.

광목 여섯 자 정도면 옷 한 벌이 나온다. 자당 오천 원 정도 줬으니까 옷감이 3만원이요. 바느질삯을 4만 5천원 줬으니 이 갈옷 한 벌에 7만 5천원 들었다. 생감즙을 내는 일이나 햇볕에 말리는 일은 그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즐거웠으니 비용이라기보다 소득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천연염색 생활한복이 30-40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실속 있는 옷 짓기라 아니할 수 없다. 황토염색 이불은 백화점에서 80만 원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걸 본적이 있다.

관련글 :내 손으로 하는 천연염색 갈옷 만들기

내가 천연염색을 배우고 나서 꼭 갈옷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이유는 다른 어떤 천연염색보다도 감물염색은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입을수록 색이 더 진해 진다는 점이다. 옷을 빨아 말리면 다른 염색은 색이 바래지지만 감물염색은 색이 더 진해진다. 감물이 햇볕을 받아 더 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색을 함으로 해서 옷감이 더 질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감즙에 있는 탄닌 성분 때문인데 옷감이 빳빳해지므로 옷을 빨은 후 풀을 하거나 다림질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제주도처럼 감이 많이 나는 지방에서는 일복으로 갈옷이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는 것이다. 잔손질이 거의 없는 옷이니 일복으로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래서 갈옷은 비를 맞거나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감 즙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땀이 묻은 채 벗어 두어도 옷이 상하지 않는다. 통기성도 좋아 갈옷은 여간 시원하지가 않다. 옷감이 좀 두꺼운 듯해도 참 시원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꼼꼼하게 준비하면 별 탈 없이 잘 해낼 수 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특히 힘의 작용점과 그 방향을 이미 지어진 건조물을 잘 살펴보면서 연구하게 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꼼꼼하게 준비하면 별 탈 없이 잘 해낼 수 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특히 힘의 작용점과 그 방향을 이미 지어진 건조물을 잘 살펴보면서 연구하게 된다. ⓒ 전희식
나는 시골에 온 후 웬만한 것은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직접 해결한다. 일이 좀 늦어진다고 뭐 어디 탈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늦어서 탈 날 일이라는 게 어디 있으랴 싶기도 하다. 빨리 하려는 데서 탈이 났으면 났지.

며칠 전에 완성한 지붕 처마 공사도 이렇게 한 것이다. 치수를 정확히 재서 스레트를 사서 재단을 하고 꼼꼼히 안팎으로 페인트칠을 해 말려 두었었다. 받침대 목재도 잘 다듬어 두었었고 특히 굴뚝 옮기는 작업을 먼저 해 놓았다.

처음에는 아크릴 판으로 덮개를 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업체에 맡기려고 했더니 168만원 견적이 나왔다. 기겁을 하고는 내가 직접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재작년 집 짓고 남은 각재들 속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내고 스레트는 읍내 철물점에 가서 샀다. 치수를 정확히 재고 이음새나 자투리까지 감안하여 자재를 샀는데 스레트에 칠 할 페인트까지 하여 20만원이 채 안 들었다. 철공소 일꾼을 불러 용접기랑 끌고 오게 해서는 모두 합해서 30만원 이내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무를 골라서 대패질하고 그라인드로 사포질하여 번호를 매겨 놓고 또 틈이 나면 여덟 자짜리 스레트를 반으로 자르고 페인트를 안쪽에는 흰색을 바깥쪽에는 짙은 풀색을 두 번씩 칠해서 말려 두었었다. 준비가 빠짐없이 다 된 날에 철공소 직원 불러서 같이 용접하고 스레트 이고하여 한나절만에 깔끔하게 일을 끝냈다.

지난 주 산속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집 마당으로 끌어내는 일은 더 재미있었다. 이 작업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했다. 시골 살림이라는 게 알뜰히 재활용하자면 천지가 다 자원이고 자재다. 아래 위 이웃집에 가서 빌리면 없는 이장이 없다.

역시 집 지을 때 상수도 배관공사 하고 남은 액셀 파이프에, 전기배관공사 하고 남은 튜브, 그리고 아래 옆집 오가며 물 호스를 모아다가 이으니 백 수십여 미터나 되었다. 아들 새들이에게 장기 통을 들고 따라 다니는 이른바 ‘시다바리’ 노릇을 맡겼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니 점점 재미를 붙이기에 쉬운 구간 작업을 맡기기도 했다. 그래봐야 시멘트못질이거나 철사 줄 매는 일 정도다.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와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내가 은근히 우리의 물 끌어대는 작업이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지를 부각시켰더니 새들이는 언제는 식량이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물이라고 둘러 붙이냐고 했다. 이놈아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물 없어봐라 창고에 곡식이 쌓여 있어도 다 죽는다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새들이랑 일을 같이 하면서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유에서 시작하여 파스칼의 원리까지 주고받았다.

물 이야기에는 구름과 비, 강과 바다이야기도 당연히 등장하면서 온 세상을 몇 바퀴 돌았다. 늘 그렇지만 일 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정말 싱싱한 물고기와 같다. 일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에는 관념적인 얘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호미잡고 일 하다가 정치가 어쩌네 경제가 어쩌네 하면서 말다툼했다는 소리 들어 본 적이 없다.

마당에 천연샤워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마당 텃밭 채소들도 배가 터지도록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여름에는 물이 많이 필요한데 이번 공사로 물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당에 천연샤워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마당 텃밭 채소들도 배가 터지도록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여름에는 물이 많이 필요한데 이번 공사로 물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전희식
재작년에 집을 지으면서 왜 옛 어른들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집 세 채는 지어봐야 한다고 했는지를 절감했었다. 집을 지으면서 나는 수도배관과 전기배선, 그리고 벽돌쌓기에서부터 미장과 목공, 나무나 돌의 특징 등을 제대로 익히게 되었었다. 인간에게 땅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집 지으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근본이 식.의.주라는 것을 제대로 본 것이다. 모든 사람관계의 이어짐과 끊어짐도 식.의.주가 그 중심에 있는 법이다.

이 삶의 근본을 전혀 모르고서도 암시랑토 않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식.의.주의 자급도를 최소수준에서라도 확보하는 일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내가 먹는 것과 입는 것, 잠자는 곳이 어떤 원리와 수고 위에서 존재하는지 몸으로 익혀는 것 보다 더한 공부가 있으랴.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머리로 체계화시켜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료를 확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식이 손이나 발, 기타 몸뚱이로 옮겨져 몸이 함께하는 지식이라야 비로소 삶으로 완성된다.

최근 나는 이틀 동안 목공강습을 다녀왔다. 톱질 대패질, 끌질. 못질, 드릴작업, 사포질 등등 강도 높은 작업을 몸이 묵지근 해지도록 하고서 어제 돌아왔다. 물론 근사한 작품도 여럿 완성했다. 새로운 분야의 내 스승이 되신 그 목공선생은 ‘손의 복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손의 복권'.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뒤통수를 갈기고 지나가는 각성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 영장류로 진화한데는 직립보행과 이로 인한 손의 자유 즉, 도구를 사용하고 만드는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 손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속된말로 자판 두드리는 일과 남 손가락질하는 것 외에 퍼먹는 일 집어 마시는 일 외에 뭐가 있나 싶다. 인간진화의 논리에 따르자면 인간이 퇴화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된다. 손을 잃어 버렸으므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