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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옆에는 할머니도 서 계셨다. 내가 대를 자를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시던 할머니다. 이유는 그랬다. 오후에 내가 대밭에 가서 대를 일곱 그루 베어 온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큰 놈으로만 골라서 베어 갔다고 또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윗집 기정이네가 대밭이랑 산을 다 샀는데 대밭을 관리하는 자기가 무슨 낯으로 기정이네 할아버지를 보겠냐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할아버지의 악의 없는 관심이 종종 간섭과 역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던 터라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정이 할아버지한테도 허락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안색이 변하는 듯 했다. '기정이 할아버지가 산을 산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산 임자 행세를 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말 머리를 돌려 지난번에 두 그루 베어 갔으면 됐지 왜 또 베어 가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뜬금없이 100년 전부터 그 대밭 밑으로 수맥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이번 일과는 상관있어 보이지 않는 이야긴데 그 얘기를 거푸 하셨다. 아마 그 대밭과 당신의 오랜 연고를 강조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내게는 그렇게 이해되었다.
이 대밭이 요즘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제법 소상히 알고 있는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더구나 이렇게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까지 야단을 치는 것은 내 이해의 정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언성 따라 나도 언성을 높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하는 얘기라기보다 해거름 들판에서 야단을 맞고 있는 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이 동네에 이사 와서 한번이라도 경우 없는 짓을 하더냐고 반문도 했다. 지난번 대나무를 잘랐을 때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더 잘라 쓰라고 하지 않았냐고도 항변했다. 오늘 대를 자르러 갔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 진짜 속마음은 ‘그 대밭이 도대체 누구네 대밭인데 이렇게 난리냐’고 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 언쟁을 보고 있는 기정이네 할머니가 못 본척하고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의 대밭에 대한 수 십 년 전권이 무너지는 현장을 쾌재를 부르며 반기고 있는 눈치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마루에 나앉아 있자니 모락모락 울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좀체 기분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이럴 때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밭에서 너무 장황스럽게 할아버지에게 해명하는 데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노인네의 앞뒤 안 가리는 땅 욕심에 내가 비굴하게 보이리만치 노인네 비위를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났다. 굳이 내가 큰 소리로 억지웃음을 웃으면서 할아버지 팔을 부축하여 지근거리를 배웅 해 드릴 것 까지는 없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문득 내가 대견해졌다. 동네 사람 다 되었구나 싶었던 게다.
땅이 유씨 종중 소유로 있을 때는 할아버지가 그 넓은 산을 자기 땅처럼 사용하고 대밭도 완전히 자기 대밭처럼 수십년을 사용해 왔는데 기정이네가 대밭이 포함된 산을 사려고 하니까 그게 배가 아파서 헐뜯고 했던 것을 내가 다 안다.
기정이네가 산을 사버리면 그 산과 대밭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산과 대밭에서 손을 떼야 할 판국이다. 기정이네가 땅을 사는 것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땅을 한 뼘도 안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공짜로 내 땅처럼 쓰고 싶은 심보다.
예부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속담이 그냥 옆 사람 잘 되는 것 시샘하는 정도의 의미로 알았었다. 시골에 농사짓고 살면서 비로소 그 속담의 살아있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땅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그 소유관계가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알고 나서 이 속담이 어떻게 무릎을 치게 하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사촌이 사기 전까지는 내 땅처럼 사용 하다가 사촌이 사버리는 순간 내게서 멀어져 가는 농촌의 땅 소유 현실이 눈에 선히 보이기 시작 한 것이다. 대밭사건이 꼭 그를 닮았다.
어쨌든 밤이 깊도록 나는 깜깜한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내가 너무 고분고분하니까 이 노인네가 사람을 정말 우습게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사이버공동체 [길동무(refarm.or.kr)]에서 두 분의 손님이 왔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분 다 정농회 회원으로 생명농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서로 농사이야기도 하고 그동안의 주변 안부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멀리 밭 어귀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어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풀을 베어 밭에 깔고 있던 나는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냉큼 길가로 나오지 않는 게 영 비위에 거슬렸나보다. 눈치로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또 앞주머니에 차고 있던 옥수수 씨를 마저 심고서야 밭가로 나왔다.
나오면서 할아버지 왜 그러시는데요? 라고 반문하자 그때도 그랬었다. “
할아버지고 지랄이고 왜 시키는 대로 안 해?"라고 하면서 그냥 심으면 까치가 다 내 먹으니까 집 앞마당에 모종을 해서 비닐로 덮어씌우면 손실 없이 싹이 잘 날 테니 비 오는 날 옮겨 심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농사에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에 오죽하면 비닐 없는 온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여러 공법을 시도했을라고. 물론 실패했지만.
우리 앞마당은 모종 할 터가 없다고 나는 쏘아붙이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 집을 뻔히 지나쳐 길로 나서야 하는데 못 본 척 한다는 것은 더 어색하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예 할아버지 집 안으로 인사하러 들어갔다. 옆집 강아지가 밭에와서 옥수수 싹 하나만 밟아 놓아도 핏대를 세우고는 개를 잡네마네 하면서도 옥수수 한 소쿠리, 팥 한 자루 그냥 주고 그냥 받는 시골 노인네들의 셈법은 일반인들이 이해 하기 힘들다.
그걸 익히 알기에 나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던 것이다. 할아버지 마음속에는 내가 벤 대나무 몇 그루의 '시장가격'이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 말 않고 그냥 아침 인사만 하려고 갔었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게 길고 긴 사과성 해명을 듣고 나와야 했다. 할아버지의 사과성 해명은 나를 놀라게 했다. 기정이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얼마나 땅 욕심이 많은지를, 대밭을 둘러싸고 당신께서는 얼마나 양보와 헌신을 해 왔는지를 해명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내가 엄청 오해하고 있었던 꼴이 된다.
돌아서 나오면서 나는 몹시 헷갈렸다. 할아버지와의 불편함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기정이네 할머니가 그랬었다고? 정말?
내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고차 방정식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담 하나를 만들고 놓고 혼란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
"이웃간에 살면서 옆집 땅 사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