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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기자의 기사에 달린 악의적 댓글들.
김용한 기자의 기사에 달린 악의적 댓글들. ⓒ 한상훈
갑자기 오마이뉴스에 기사 올리기가 두렵다. 오래 전부터 기사의 뒤를 쫓는 댓글의 역할이 생산적인 토론보다 즉물적인 배설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배설물을 내놓은 이가 자신이 믿고 있던 사람들일 경우에는 그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랄까.

28일 올라온 김용한 기자의 "당선자님, 뒷문으로 가시다니요?"라는 기사의 꼬리를 험악하게 물어뜯는 엄청난 수의 댓글이 바로 철저하게 '믿어왔던 도끼'들이다. '자칭'노짱 지지자들이 내뱉는 폭언들.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적절한 비판마저 무시하려 드는 독자의견들이 그것이다.

한숨을 쉬며 이 기사 뒤에 달린 한심한 댓글을 몽땅 읽어보았지만, 하루만에 180여개나 달린 댓글 중에서 기자, 집회를 한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댓글은 5개도 안 된다. 아무리 기사에 자세한 전후사정이 나와 있지 않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편파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자극적인 제목에 증오심을 품고 욕설 한마디 남기고 흐뭇해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노무현을 찍었나? 서민의 대통령, 지역주의에 맞서는 대통령을 바랬던 게 아닌가?

나는 기자회원 등록은 일찍부터 해왔지만 뉴스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뉴스게릴라 활동을 하면서, 자기 돈을 써가며 꾸준히 하니리포터와 오마이뉴스에 300건이 넘는 기사를 써온 '이상한' 시민기자 김용한에 대해, 그리고 3년간 시민단체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썩어빠진 관과 싸워온 '이상한' 지하상가 상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구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는 '대구중앙지하상가 특혜의혹사건'에 대해 취재하게 되면서 나는 이들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분이 생길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부대끼며 생긴 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모든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말많은 '당선자 뒷문출입 해프닝'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자 한다.

나는 이 한나라당 일당독재의 도시 대구에서 노무현 당선자를 적극 지지하고, 지난 대선 기간 동안 그를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었다. 내가 끌어온 노 당선자의 표가 적어도 2~300표는 될 거라고 자부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더 그를 지지하고 사랑한다고 자처하고 있지만 그날 추운 날씨에 아랑곳없이 4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집회를 하던 상인들을 피해 뒷문으로 출입한 노 당선자의 행동(또는 과잉 경호한 이들의 행동)에는 경중을 떠나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여기까지만 읽고도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도 부디 아래의 글들까지 모두 읽어보고 행동에 옮기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이 뱉은 침이, 자신이 던진 짱돌이 다시 당신에게, 또는 '노짱'에게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열렬한 노 당선자 지지자라고 해도 노 당선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인정해야 한다. 아니, 도리어 환영하여야 한다. 이것은 대선 전후 노사모 일각에서 일었던 노 당선자가 당선되면 노감모로 이름을 바꾸어 '노무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관점에서 말이다. 얼마 전 개혁당이 당선자에게 요구한 과학기술담당 수석 공약이행과 같이 노 당선자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비판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후보 노무현을 지켜내는 일이다.

"대구.경북 民에게 듣는다." 과연?
"대구.경북 民에게 듣는다." 과연? ⓒ 한상훈
27일 노 당선자가 대구 컨벤션센터에 들른 이유는 '대구경북 민(民)에게 듣는다'라는 제목의 대구경북 분권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왔던 대통령직에 서민후보가 당선되어 평민의 이야기를 들으러 지방을 순회한다니, 지방자치에 대한 의견을 민에게서 듣는다니 참으로 설레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 냉정하게 추운 날 못난 평민들은 '아구'를 닮았다는 대통령의 훈훈한 웃음 한번 구경하려고 비를 맞으며 4시간을 떨었지만 대통령의 뒤통수는커녕 털끝 하나 구경하지 못했다. 지하상가 상인들, 삼성생명 해고자복직투쟁 시위자들은 경찰들에게 네겹, 다섯겹 둘러싸여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불충분한 증거로 자살로 몰렸다'고 주장하며 아들의 군의문사 사건을 재조사해주기를 바라는 아주머니는 경호팀에게 사지가 들려진 채 차량에 태워졌다. 심지어 다른 볼일로 컨벤션센터에 들른 시민들까지 행사장 밖으로 쫓겨나 졸지에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비 구경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행태이다. 더더구나 노 당선자는 아직 취임식도 가지지 않은 당선자의 신분인데도 이렇게 국민들과 거리가 생긴다면 대통령직에 오르고 나서는 그 간격이 더 좁혀지기 힘들지 않겠는가. 교통신호 조작조차 하지 않고 토론장으로 도착한다는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보여지려는 목적으로 집회를 연 시민들을 피해 뒷문을 향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노후보를 테러할까봐?
그 아주머니가 노후보를 테러할까봐? ⓒ 한상훈
애초부터 시민단체들과 개혁국민정당, 지하상가상인들은 폭력시위, 과격시위로 당선자를 당황스럽게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나 단박에 대통령이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유아적인 발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법성이 드러났음에도 거대한 지역주의 권력에 막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을 당선자에게 알리려는, 무언가 대구라는 도시에서 지방자치가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눈치를 주려는 의도가 휠씬 더 강했다.

'지방자치를 반납합니다', '부패와 무능의 도시 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구시를 대통령 직할구로' 라는 피켓의 문구가 바로 그 증거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도시로서 밀실행정, 불법특혜가 빈번한 대구의 행정을, 더 나아가 견제기능이 보완되지 않은 채 시행된 지방자치제의 폐해를 당선자의 피부에 와 닫게 하려는 의도가 당선자의 뒷문행으로 좌절되고, 단지 그들이 '대구시민'이라는 이유로 노당선자에게 아쉬움을 표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자칭' 노 당선자의 지지자라는 네티즌들에게 덤터기로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결국, 노 당선자에게 대구시를 고발하기 위한 삭발이었다.
결국, 노 당선자에게 대구시를 고발하기 위한 삭발이었다. ⓒ 한상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토론회에서 민(民)들은 완전히 배제된 채 항상 민(民)을 배반했던 관료들이나 목에 깁스를 한 듯한 무슨무슨 단체 대표들의 목소리만 노 당선자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노 당선자에게 써먹을 기회는 없었겠지만 조해녕 대구시장은 노 당선자가 시위에 관심을 보일 경우를 대비하여 "몰상식하고 돈만 밝히는 상인들이 한 푼이라도 적게 내려고 저런다"는 입버릇 같은 변명, 무책임한 행정과 비리의혹 앞에 상인들을 팔아 만든 엄폐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컨벤션센터 앞에는 이미 수일 전에 상인들로부터 집회신고가 되어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기에 피할 수 있었던 집회였다. 충격요법이라기보다는 정중한 요청에 가까웠던 이 집회를, 정면승부를 피해 노 당선자는 정문이 아닌 다른 문으로 출입하였다.

4시간 동안 자신을 기다린 민(民)의 모습을 흘깃 바라보거나 이야기 한마디 들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빴는가. 물론, 이것은 노 당선자의 의중이 아니라 경호팀의 과잉경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호팀은 이제부터라도 그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경호를 시작해야 할 것이며 당선자는 조금이라도 더 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구에는 지역주의자들만이 사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상당수의 대구시민이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쪽에 표를 던졌다. 실제로 이 문제에 개입한 시민단체들과 개혁국민정당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지난 대선 노무현 당선자나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다.

3년여 동안 지겹도록 대구시와 싸워오던, 아니 한나라당과 싸우던 상인들도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주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제 지하상가 상인 중에는 열혈 노사모나 개혁당원이 다수 있을 정도로 3년간의 지리한 싸움은 상인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순히 노무현 당선자를 괴롭히고, 시비를 걸려고 거기에 가서 삭발까지 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지난 대선에서 상인들이 어떤 후보를 찍었느냐를 떠나 지역주의의 색안경을 끼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판단이다. 국민들은 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국민참여의 시대를 열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노 당선자의 뒷문행이나 김용한 기자의 기사 뒤를 물어뜯는 댓글 들은 그럼 모토들을 거꾸로 매달아 버린다. 단지, 그들이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대구 중앙지하상가 특혜의혹 사건은 단순히 상인들의 이권다툼이 아니다. 재개발사업에서 당연히 뒤따르는 고통스런 생리현상으로 오해해서도 안되고, 대구시에만 국한된 문제로도 볼 수 없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밀실행정과 정격유착이라는 전통적 병폐를 안고 있는 사건이며, 그런 사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승기를 잡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이미 민투법 관련 적법성에서 대구시는 완패했으며, 사정 프로그램까지 제대로 가동된다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비리 정치인, 공무원들이 딸려나올 사건이다. 해결의지에 따라서 대구, 경북의 가장 큰 정치적 암세포인 '한나라당 일당독재', '경북대 마피아'들에게 치명타를 입힐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더더구나 대구지하상가의 운영권을 획득하려던 기업이 대구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지하상가에 비슷한 방식으로 진출을 했거나,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업체이기 때문에 대구의 싸움은 전국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구에서 멋들어지게 싸우는 선봉장들 때문에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다른 지방들 역시 용기를 내고, 비슷한 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또한 민투법의 허점 역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말이다.

민투법으로 어설프게 2.28공원과 엮어 대구시가 시민들의 재산을 특정기업으로 넘기고, 그 특정기업의 사장이 한나라당의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라면 대충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더더구나 이 어이 없는 '특혜'에 어떤 국회의원, 시의원, 담당공무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대구시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만한 것이다.

견제세력 하나 없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밀실정치에 대항하는, 이 어려운 싸움을 시작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사실보다 노 당선자의 잘못된 행동 하나를 짚어서 비판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부각되고, '대구=꼴통, 노비판=주적'이라는 얄팍한 공식이 적용되어 쌍욕까지 얻어먹어야 하다니, 어려운 조건에 힘들게 승기를 잡은 싸움닭으로선 정말이지 힘빠지는 일이다.

신나게 자판을 두드리며 욕해댄 사람들은 그 상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는가? 대구시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자그마치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끝없는 압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온 사람들이다. 일부 상인들은 매수되어 상대편에 섰지만,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상인들은 많은 보상금을 주겠다는 유혹, 끊임없는 시민단체와의 이간질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1지구, 2지구를 빼앗겼지만,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철거, 폐쇄, 단수 등에 굴하지 않고 3지구를 지켜온 까닭에 한때 단순한 밥그릇싸움으로 오해했던 언론도, 시민단체도, 개혁국민정당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어 함께 싸웠고, 결국은 승기를 잡게 되었다.

대구의 한나라당 일당독재에 노사모, 개혁당, 당신들과 같은 인터넷 논객들이 선봉에 섰고, 또 큰일을 이루어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사람들이 저 높은 정치판을 바라보며 배놔라 감놔라 할 때 상인들은 알몸으로 그 높은 벽에 부딪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싸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대구시정의 민주화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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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님, 뒷문으로 가시다니요?"

27일 오전 8시 30분. 오돌오돌 떨며 삭발을 한 사람은 모두 5명이다. 두 사람은 상인이고, 한 사람은 시민단체, 한 사람은 개혁국민정당, 한 사람은 언론인이다. 상인들은 그들이 해온 기나긴 싸움의 끝을 보기 위해, 시민단체는 언제나처럼 대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개혁국민정당은 대구를 버려두었던 정치세력을 대신하여 반성하고, 또한 대구사회의 정치개혁을 위해, 언론인은 그간 이런 중요한 현안을 외면했던 지역 수구 언론인들을 대신해 사죄하고, 그네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의미로 삭발을 감행했다.

삭발식에 참가한 개혁당원은 안동이 고향이었다. 가풍이 단단해서 삭발을 하고는 설날, 고향으로 내려갈 수가 없다는 그 분의 말씀이, 시위를 하던 상인 중에 한 사람이 김용한 기자의 글 뒤에 달린 댓글을 보고는 이제는 노사모를 탈퇴해야겠다고 한탄하던 말씀이 지워지지 않는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한 이들의 삭발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한 이들의 삭발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다. ⓒ 한상훈

덧붙이는 글 | 대구 지하상가 특혜의혹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거리문화시민연대, 대구경북녹색연합, 대구경실련, 인간과 마을,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대구여성회, 대구여성의 전화, 대구지속가능개발네트워크, 대구참여연대, 대구환경운동연합, 대구흥사단, 대구YMCA직원노조,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우리복지시민연합, 함께하는 주부모임.

개혁국민정당

그리고... 대구 중앙지하상가 3지구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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