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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3년 8월 1일치에 실린 고희동의 친일 그림
매일신보 1943년 8월 1일치에 실린 고희동의 친일 그림 ⓒ 방학진
1943년 8월 1일 전쟁 막바지에 몰린 일제는 마침내 조선 청년들을 전선에 내몰기 위해 조선인 징병제를 실시한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조선징병제 실시 감사 결의 선양주간'에 맞춰 8월 1일부터 8일까지 (2일은 제외) 1면에 연재 특집으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화를 대대적으로 내보낸다. 이것은 당대 이름있는 조선인 문인과 화가가 짝을 이뤄 전쟁 동원을 선동한 극악한 범죄행위이다. 고희동의 그림은 바로 8월 1일자에 역시 친일파인 팔봉 김기진의 시에 어울려 실리게 된다. 이 특집 시화에는 문인으로는 김동환, 노천명, 김상용, 이하윤 등이 화가로는 김인승, 김기창 등이 참여한다.

이런 고희동의 생가 보존에 대해서 문화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도 그 문제의식이 희박한 듯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던 중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결국 최남선의 고택이 서울시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돼 머지않아 철거될 것이라고 한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선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처럼 비록 그 고택 자체로서 보존가치가 떨어지고 최남선이 그 곳에 기거하면서 친일행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장소를 친일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하도록 하는 공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에 최남선과 고희동의 옛집 보존과 관련해 우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할까. 역사적인 인물이 남긴 유형의 잔형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인물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면 두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부정적인 영향은 남긴 인물이라 할 지라도 후세에 반면교사의 산 교육장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친일행위자의 물적 유산의 보존과 철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북한산에 박힌 쇠말뚝 뽑아내듯이 모든 친일파의 잔형을 모두 철거하는 것은 오히려 과거사 인식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 그런 잔재들이 발견될 때마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논의로 친일문제를 토론의 광장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최남선과 고희동이 친일활동에 적극 참여하던 시절의 옛집은 보존하되 그 곳에 그들의 친일상을 소상히 기록해 후세에게 반성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이 어떨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누구

1918 최초의 미술단체인 서화협회 창립 주도
1940 조선남화연맹전에 참가, 판매수익금 전액을 일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헌납
1941 총독부 제2회 조선예술상 회화상 부문 수상
1945 해방 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중앙위원장과 조선미술협회 회장
1948 한민당 상임위원
1953 대한미술협회장
1955 예술원 원장
1960 참의원

※ 국전에서 오랫동안 심사위원장 역임, 화단 정치의 실세로 커다란 영향력 행사.
/ 방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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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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