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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 윤성효
'분신'이란 극단적인 말처럼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레 동안 줄곧 현장에 있었다. 9일 오전부터 15일 밤까지. 새벽에 나가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밤을 지새기도 했다. 죽음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15일 밤, 사건 7일만에 노조 간부들이 모여 '파업'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36신'으로 올려놓고 짐을 꾸려 나왔다.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발걸음은 빈소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 전 분향을 한 적이 있지만 왠지 한 번 더 가 보고 싶었다. 제목은 모르겠는데, 몇 번이나 들어 귀에 익은 민중가요가 앰프를 타고 흘러 나왔다. 그 노랫소리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시신 사수조로 편성된 진주지역 노동자단체 대표 20여명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어서 반가웠다.

노조 사무실과 농성장을 나오면서 그 동안 얼굴이 익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로서 현장에서 철수한다"고. 그러자 다들 "왜 그러느냐. 더 취재해 달라"고 주문했다. "1주일간 현장에 있었는데, 이제는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면 챙길 것"이라 대답해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노조 간부는 "며칠 전부터 방송사와 중앙언론들도 비로소 이번 사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루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이번 일을 비중있게 보도해준 <오마이뉴스>의 공로 덕분"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 노조 간부 고 배달호(50)씨 분신사망사건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종 노조탄압'이라는 회사측의 손해배상청구를 사회문제로 만들었고, "왜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준 사건이다. 또 이번 사건으로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 특혜는 없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무엇보다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가장 많은 과제와 기대를 갖게 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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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조합원들 "배 동지는 우리 대신해 죽었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 윤성효
고 배달호씨의 '분신'을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다. 해고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를 대신해 죽었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배씨가 분신한 9일 오전. 충격적인 '분신 사건'이 일어났지만, 공장은 가동되고 있어 겉으론 '평온한' 분위기처럼 보였다. 사건 첫날 오전 현장에서 지역 노동단체 관계자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것도 분신자살을 했는데 공장을 돌리고 있다니, 겁나는 사람들이구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지난해 장기파업 이후 노조 활동은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9일 오후부터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기자들은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사건 첫날 점심도 먹지 못했다. 그날 저녁 노조 사무실이 있는 건물 3층 식당에서 밥을 먹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얼굴이 굳어 있었고, 옆 사람과도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무거움이 식당까지 짙게 깔려 있었다.

다음날 고 배달호씨가 일했던 보일러공장 조합원들은 옛 동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일터를 나와 시신을 사수하기 위해 지켰고, 빈소도 차리고, 천막도 치고, 만장도 만들었다. 보일러공장 조합원들의 이날 참여도를 볼 때,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은 다르게 해석했다. 홍보실 한 관계자는 "일반 직원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일을 하고 있고, 집회 참석자도 적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공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는 말이었다. 분신자살사건이 일어났지만, 두산중공업이 정상 가동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도 했다.

회사는 "과연 파업을 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노조는 박용성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이런 속에 15일 오후에는 "회사에서 16일 사장 명의의 담화문을 낼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경총'과 '대한상의'에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성명 발표가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한 노조 간부는 "그만큼 이번 사태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노조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회사에서 보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노조 사무실에는 "왜 파업을 하지 않느냐"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어떤 중년 노동자는 "현장에 가 봐라. 파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도부 뭐하고 있냐"면서 노조 사무실에서 고함을 지르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금속노조는 16일 오후 4시간만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전날 오후부터 대의원과 간부들의 회의가 열렸다. 노조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노동자쉼터'에서 회의가 계속되었는데, 잠시 쉬었다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회의장에서는 고함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목소리는 "왜 파업을 하지 않느냐"고 지도부를 '질타'하는 말이었다.

한참 격론 끝에 15일 오후 6시30분 결정이 내려졌다. 당초 16일 '4시간 파업'에서 '8시간 파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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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관련 일화 다양…. 현장 부검에다 냉동탑차 해동 등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 윤성효
시신을 둘러싸고 평소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었다. 노조와 고인의 부인은 '자살'이 분명하다며 부검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경찰은 '변사'로 보고 부검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시신은 사건 현장에 6일간이나 그대로 있었다.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시신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드라이 아이스'가 사용됐다. 또 바닥에 얼어붙은 시신을 떼내기 위해 '가스토스'를 이용해 바닥을 녹였으며, 시신 해동을 위해 냉동탑차로 옮겨 백열전구로 가열하기도 했다.

검찰은 사건 발생 직후인 9일 오전 영장을 발부했다. 당초에는 부산 동아대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측은 유족의 요구를 앞세워 "시신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한 의도"라며 현장 보존을 고집했다. 14일 시신을 수습하려는 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절묘한 방안이 제기되었다.

즉 '현장 부검'이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는 '시신을 옮길 수 없다'는 노조 주장과 '부검은 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절충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시신 부검 역사상 현장에서 부검을 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검찰의 영장 발부가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다. 경찰은 9일 오전 승용차 안에 있던 유서와 지갑은 유족이 온 뒤에 공개하기로 하고 손을 대지 않았다. 유서는 오후 2시가 돼서야 공개됐고, 부인은 고인의 친필이 맞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날 오전에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자살도 부검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고인의 형제 등 일부 유가족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해 잠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분신 현장에 기름통이 없는 점, 머리에 피멍이 든 점 등을 들어 타살을 주장하고 나섰다. 타살론이 사업장에 퍼지면서 갖가지 해석과 추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의료전문가는 "오히려 현장에 기름통이 있으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승용차 안에서는 사건 직후 심한 기름 냄새가 났고, 다른 장소에서 기름을 덮어쓰고 현장까지 와서 불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었다. 머리의 피멍은 넘어지면서 났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는 또 "죽기 전에 분신한 것이냐, 아니면 죽고 나서 분신한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자는 고 배달호씨의 시신을 육안으로, 사진으로 보기도 했다. 몸 전체가 검게 탔으며, 팔과 다리는 들려 있었다.

이같은 형체에 대해 원진병원 양길승 원장은 "분신 사망자의 시신 형태이며, 몸에 난 수포는 사람이 죽기 전에 분신할 경우 나타나는 것이지, 죽고 난 뒤에 분신할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료들 만장 쓰며 눈시울 "형, 보고 싶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두산중공업 분신 현장 모습들. ⓒ 윤성효
사건 다음날인 10일 오전 고 배달호씨와 함께 일했던 보일러공장 조합원들이 만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빈소가 꾸려졌다. 어떤 이는 차로 대나무를 실어오고, 또 글씨를 쓸 천을 준비했다. 고인의 옛 동료들은 익숙지 않는 솜씨로, 붓을 잡고 애도의 글귀를 써 내려갔다.

한 노동자가 파란색 천에다 하얀 글씨로 "형. 보고 싶다"는 글자를 써 내려가면서 눈물을 훔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년의 한 조합원들이 말했다. "저 놈이 눈물 나오게 하네"라고. 이렇게 만들어진 만장은 분신 현장 주변을 감싸고 있다.

사태가 진전되면서 대책위는 두산 제품 불매운동 등 강도높은 투쟁을 계획하고 나섰으며, 이를 위한 갖가지 방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또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상의와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1인 시위는 물론 대규모 집회도 열고 있다.

경남지역 8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경남대책위는 창원과 마산 사이인 봉암교에서 두산중공업까지 4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에 갖가지 구호를 쓴 현수막을 달기로 했다. 리본달기 등의 방식은 두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일어난 '촛불시위'와 같은 규모로 추진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두산중공업 주식 투자자들도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5일 오후 한 투자자가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이번 사태에 대한 항의를 했다. 평소 차분해 보이던 노조 간부가 화를 내며 "그런 말은 회사에 하라"며 고함을 쳤다.

노조 간부는 "주식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값 떨어진다고 그만하라고 하네"라고 말했다. 그 간부는 전화에 대고 말했다. "주식 값 올리려면 회사에서 노조탄압 하지 말고 경영 잘 하라고 일러주세요"라고.

이처럼 두산중공업 노조 간부 고 배달호씨의 분신사망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노동계는 물론, 경제계까지 나섰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대표가 이미 현장을 방문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선거 때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던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그 구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자는 15일 밤, 7일간 머물렀던 두산중공업 사건 현장에서 나왔다. 특별한 사안이 있으면 챙길 것이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어 있을지 의문이다. 그 궁금함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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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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