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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버림받아 소송한 이노인의 기사 스캔
자식에게 버림받아 소송한 이노인의 기사 스캔 ⓒ 톈진르바오
요즘 중국 신문에서는 심심치않게 봉양을 거부하는 자식에게 부모가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11월 기자가 사는 톈진의 73세 된 이모 노인이 봉양을 거부하는 6자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법원은 다행히 매월 1000위안씩을 부모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평생동안 밖에서 돈을 벌어 자녀 양육을 위해 썼지만 1998년 병이 걸린 후 자식들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이런 소송을 제기했다. 부모 봉양을 거부하는 이런 사례는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이 노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상에 자신과 자식의 이름을 오르내리게 하고 싶은 이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변혁하는 중국에서 이런 일쯤은 아무런 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성 문제 등 각종 문제로 남편을 살해하는 여성이 늘어나 여성 범죄율이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어찌보면 중국인들은 한 세기전 가족제도의 변혁을 주창했던 선각자들의 목소리가 그리울지도 모른다.

청조가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는 시기 가장 큰 정신적 토대를 만든 두 학자인 캉요웨이(康有爲)와 량치차오(梁啓超)는 모두 중국의 가족제도에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물론 이들 이전에 중국 변혁운동을 일으킨 태평천국은 25가구를 하나로 묶어 가족간보다는 그 공동체를 중시하는 혁신적인 가정 안을 만들었는데, 모두 유교적 가족을 해체시키는 혁신적인 방안이었다.

캉요웨이는 가족이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보고‘대동서’(大同書)에서 계약식 결혼을 하고, 공공정부가 생로병사를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기를 꿈꾸었다. 량치차오는 합리적인 가족제도를 위해 조혼을 금지하는 등 전통 가족제도의 변화를 꿈꾸었다. 이런 변혁운동은 중국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실현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중국인에게 가족은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한 문화의 하나다. 한대(漢代)부터 보편화된 쓰허위앤(四合院)은 그런 중국의 가족 구조를 잘 보여준다. 번화한 베이징 시의 뒤편으로는 사람들 만이 다닐 수 있는 후통(胡同)이라 불리는 작은 골목이 있는데, 이 골목의 한쪽으로 쭉 나열된 집을 쓰허위앤이라 부른다.

이 집은 원자(院子)라고 불리는 중정을 둘러싸고 건물들이 사면에 배치되는 구조로 중국 가족제도를 지배해 온 유교 이념이 구현된 주택유형이다. 가부장의 통치하에 일목요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선각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중국 가족제도를 변화시킨 가장 큰 힘은 공산주의다. 우리 나이로 3살 정도면 공동육아시설에서 친구들과 자라면서 공동체를 배우고, 이후에도 소년궁(少年宮)이나 청년궁에서 공동체를 배우는 한편 단체라는 말을 지겹게도 경험한 문화대혁명이 가족의 해체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독생자녀, 가족제도의 핵폭탄으로

한 초등학교 앞 하교시간 풍경. 어른들이 꼭 학교앞에 나와 아이를 마중한다
한 초등학교 앞 하교시간 풍경. 어른들이 꼭 학교앞에 나와 아이를 마중한다 ⓒ 조창완
중국의 가족문화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독생자녀’ 제도다. 마오쩌둥은 인구 억제보다는 장려책을 펴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여 인구증가의 심각성을 포착하고, 적극적인 인구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집권 후 중국에는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게 하는‘독생자녀’제도를 철저하게 시행하기 시작했다.

2명 이상 자녀를 낳을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년 동안 임금의 10%를 깎는 한편 2번째 자녀가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상상이상의 불이익을 받도록 만들었다. 식구가 곧 재산처럼 생각하던 중국인들에게 큰 문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과거 처벌중심의 독생자녀 제도에서 권장 중심으로 제도로 바꿔갈 의사도 서서히 비추고 있다. 한 자녀만 갖겠다고 맹세하는 신혼부부에게는 돈과 토지를 주고 있으며 불임수술을 할 경우 추가로 현금을 지급하는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이 제도를 풀면 당장 자식을 낳게 될 가정은 절반이 넘을 게 뻔한데, 이 제도를 풀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독생자녀 제도가 정착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이 제도로 인한 갖가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흔히‘소황제’(小皇帝)로 불릴 만큼 비대해진 아이들의 가족 내 위상이다. 한 아이를 부모와 친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의 어른이 지켜보는 상황인 만큼 아이에 쏟는 정성은 가히 상식 이상이다.

소황제 현상의 한 측면을 볼 수 있는 게 바로 한 해를 잘 넘기라는 의미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주는 야수이치엔(壓歲錢 우리 세뱃돈)이다. 중국 도시가정에서 한 어른이 주는 세뱃돈의 평균치는 이미 수년전에 100위안(우리돈 15000원 가량)을 넘겼다. 최근에는 보통 200위안을 호가하고, 많으면 500위안까지 치솟는다.

최근에는 야수이치엔 대신에 컴퓨터 등 고급 아동용 기구로 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통 노동자가 500위안에서 1000위안의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자기 자녀뿐만 아니라 친지의 가족에게까지 야수이치엔을 줘야 하기 때문에 야수이치엔 공포증까지 있을 정도다. 보통 어른들은 한달 월급이 넘는 1000위안 이상을 세뱃돈으로 써야하는 일이 허다하다.

반면에 어른들은 나이 50세 정도면 사실상 실업에 가까운 하방을 당하는 일반 노동자들의 위상은 가족 내에서 이들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입장은 환갑이 넘은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중국 가정은 현재 진짜로 황제로 등극한 아이들과 독생자녀 시대에 태어나 귀하게만 자란 30대 전후의 부부, 또 이들을 낳은 60대 전후의 조부모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혼, 독신, 딩크족 등 변화요소 많아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커플의 결혼 풍경.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커플의 결혼 풍경. ⓒ 조창완
중국의 이혼율은 증가추세다. 2000년 인구조사 결과로 정부가 발표한 이혼율은 1.3%로 1990년 0.6%에 비해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실제로 이혼하는 이보다 많다는 것이 중국 언론의 분석이다. 중국 매체들은 현재 매년 이혼하는 쌍이 2백만쌍 이상이고, 이혼율도 20년 사이 스무 배 가량 증가했다고 보도한다. 톈진의 경우 현재 4쌍에 한 쌍 꼴로 이혼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이혼율이 높은 상하이나 광저우 등은 그보다 높은 수치를 갖고 있다.

이혼의 증가는 여성의 독립적인 사회활동이 가능한 상태에서 굳이 가정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는 여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이혼을 희망하는 쪽의 70%는 여성으로 남성의 폭력이나 무능력으로 이혼을 원한다.

산둥(山東)이나 조선족 동포 등 소수 지역을 제외하고는 현재 중국 가정 내 남녀평등은 실현됐다고 과언이 아니다. 어느 집안이든 빨리 퇴근하는 이가 가사 일을 돌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정권도 대다수는 여성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법은 계속해서 바뀌어 과거 많은 시간이 걸리던 이혼이 지금은 하루만에도 처리될 수 있다는 것도 이혼율을 올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6000위안가량 하는 웨딩복의 광고
6000위안가량 하는 웨딩복의 광고 ⓒ 나의결혼홈
반면에 결혼은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성비 불균형은 결혼제도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녀 성비가 1982년 106.3에서 1990년에 106.0으로 약간 하락했지만 1980년대 중반에 110을 넘었고, 1995년에는 118을 넘었으면 현재는 120을 휠씬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남녀 성비는 결혼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과거에는 남자 쪽이 시집오는 여자에게 농촌의 경우 수천위안, 도시의 경우 2만위안 가량씩 주던 결혼비용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또 전반적인 결혼비용도 급증했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보면 가재도구 장만과 인테리어 비용, 결혼식장, 결혼사진, 피로연 비용에다 비행기를 타고 유명 관광지로 신혼여행을 가는 돈까지 합하면 10만위앤을 훌쩍 넘고, 상한선은 없다할 정도다.

결혼 형식이 변하는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이 결혼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이다. 결혼 대상의 선호도를 봤을 때 60년대에는 출신성분 좋은 농민에게, 70년대에는 사회적 보장이 많은 군인에게, 80년대에는 개혁개방으로 지식인이 각광 받았지만 9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시집가고 싶어한다. 거기에 이혼할 경우 남자는 위자료 등 모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부담은 그만큼 많아진다.

독신에 대한 선호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급직종을 가진 여성의 경우 갈수록 독신에 대한 선호도가 커가고 있다. 상하이(上海) 인구정보연구센터가 2000년 년말에 발표한 상하이시 결혼 상황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쌍수가 1980년 18만쌍, 1990년 12만쌍, 1997년 10만쌍으로 점차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결혼한 후에도 부부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가정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2002년 딩크가정이 60만 가정으로 전체 가정의 12.4%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 이제는 성씨도 양보 못한다

중국의 전형적인 소가족. 부모와 한 자녀에 보통은 조부모 등 5명이 같이 산다
중국의 전형적인 소가족. 부모와 한 자녀에 보통은 조부모 등 5명이 같이 산다 ⓒ 조창완
중국 중년이상들은 누가 아이를 낳았다면 먼저 아들인가 딸인가를 묻는다. 남자 아이라면 당연하게 “타이하올러”(太好了)를 외치고, 딸 아이라면 끌탕을 찬다. 아직 살아있는 유교식 문화에 의해 성씨를 이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에도 여성들이 남성중심의 성씨 따르기에 반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이제 여자 집안에서도 손주의 성을 남자 집안에 양보 못하는 쪽이 늘어나고 있다. 독생자녀제도로 인해 딸을 하나밖에 갖지 못한 가정으로서는 갈수록 올라가는 딸들의 지위에 맞게 성씨에 대한 공평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솔로몬이 나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 중국에서도 한국과 같이 남성과 여성을 같이 쓸수도 있지만 아이의 소속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이 모두 쉽지가 않다. 때문에 각종 가정 문제로 불화를 겪는 딸이 이혼을 원할 경우 상당 수의 부모가 자식의 이혼을 방조하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성씨 문제는 중국 여성의 말하는 한가지 실증이지만 실제적으로도 중국 여성의 가정내 지위는 상당히 높다. 2002년 10월 중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가 1만857명의 여자들을 상대로 사생활과 애정관에 관해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여성의 70%가 자신의 감정을 위주로 애정관계를 이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부부관계를 맺을 때 불만이 있으면 자신이 주체적인 위치에서 해결하거나 완곡하게 거절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부부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중국 여성 지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아직도 구타당하는 여성의 숫자가 상상이상으로 많고, 보통 중년여성의 경우 낙태의 경험이 5차례 이상을 넘는 등 여성으로써 겪어야 하는 수난이 아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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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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