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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슈오. 고아한척만 하던 문학을 세상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왕슈오. 고아한척만 하던 문학을 세상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 신랑왕
80년대에 들어서야 문혁의 상흔은 조금씩 씻기기 시작한다. 문혁이 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문혁은 “사회적 신앙의 훼멸과 권위의 붕괴는 저지할 수 없는 조류가 되었으니, 많은 중국인들은 각기 정도는 다르지만 정신적으로 각성하게 되었고, 기존에 설정된 사상의 성역과 계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하고 재고해보려는 강렬한 충동”(홍즈청 ‘중국 당대 문학사’가운데서)이라는 소득(?)을 얻게 됐다.

그리고 그 충동과 더불어 문학 본연의 모습은 작가의 생각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면에서도 풀리기 시작했다. 1979년 5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문서를 통해 문인에게 직접적인 정치임무를 종속하지 않는다는 지시를 내리고, 1984년 12월부터 열린 중국 작가협회 4차 대표대회에서는 ‘창작의 자유’라는 구호까지 나온다.

당연히 그간에 금기가 됐던 서구의 문학작품이나 문학이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문학의 토대인 철학, 미학, 문화학, 심리학 등의 책도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개방의 바람도 이미 경직될 대로 경직된 노작가들의 펜을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대신에 ‘지식청년작가’로 불리는 작가군이 등장했다.

문혁 당시 군대나 인민공사 등으로 내려가 삶의 굴곡을 느끼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으로 그 경험이나 변화를 형상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사오꿍(韓少功), 스톄성(史鐵生), 장청즈(張承志), 베이다오(北島) 등이 그런 지식청년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세계도 서서히 본 궤도를 찾아갔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자시따와(西達娃), 마위엔(馬原), 거페이(格非), 위화(余華), 예자오옌(葉兆言), 왕슈오(王朔) 등 젊은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군사독재는 물론이고 80년 광주를 겪은 60년대 전후에서 65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 작가들과 유사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들은 막 밀려들어온 모더니즘은 물론이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우울, 또 여전히 혈액에 녹아있을 수 밖에 없는 사회주의 문학정신이 혼돈되면서 표출되었다.

80년대 중반, 새로운 흐름들 생겨

위화의 소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의 표지
위화의 소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의 표지
1979년부터 84년까지를 신시기 문학 1단계로 보는데, 이 시기는 주로 문혁기간 동안을 탐색하는 ‘상흔문학’(傷痕文學), ‘반성소설’(反思小說)이 소설에서는 주류를 이뤘고, 시에서는 ‘몽롱시운동’(朦朧詩運動)이 벌어지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누보로망’ 등의 경향과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작품을 받은 작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선봉문학’(先鋒文學)과 현실을 소재로 차용하는 ‘신사실주의’ 문학이 만들어지는데, 위화는 선봉문학의 선도자중 하나다.

위화는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나섰고, 곧바로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나서다’(十八歲出門遠行),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 등 실험성이 강한 중단편을 내놓았다. 폭력과 피와 죽음이 직접적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집을 통해 망각의 늪에 빠진 중국 당대사 및 개인의 기억을 환기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을 나는 중국에 들어와서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즐거움은 곳 불편함으로 바뀐다. 글로만 느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죽음의 파노라마와 소설이 담고 있는 잔혹함이 독자를 힘들게 한다.

첫 번째 소설 '어떤 현실'이 담고 있는 것은 평범하던 두 형제 가족이 어린 소년 피피의 실수로 벌어지게 되는 살육전에 관한 것이다. 동생 산봉은 죽은 아들의 복수로 다시 조카 피피를 발로 차서 죽이고, 그 형제는 계속해서 서로를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이런 잔인한 이야기는 두 번째 소설 '강가에서 일어난 일' 역시 마찬가지다. 미친 사람이 자신을 돌보아주던 할머니를 강가에서 손도끼로 목을 쳐서 살해하고, 경찰 마철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그곳으로 파견 온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진행되는 살인들. 결국 그것에서 마철 역시 혼돈 속에 빠져들고, 급기야는 미친 사람을 권총으로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구해주기 위해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상사와 아내 앞에서 결국은 혼돈 속에 빠진다.

세 번째 소설 '옛 사랑 이야기'는 가난한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이 우연히 만난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랑의 중간에는 혼란스런 상황으로 인해 인육을 거래하는 잔인한 세상이 담겨져 있다.

표제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역시 자식들의 수명을 앗아서 생명을 연장하는 점쟁이를 주축으로 죽고 죽어 가는 인간들의 허무한 과정에 관해서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다. 네 소설에서 죽어 가는 사람의 숫자가 근 백 여명에 이르지 않을까 할만큼 이 소설은 죽음의 향연이다. 때로는 잔인하게 도끼로 살해당하고, 때로는 생생한 인육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체의 일부분이 잘리고, 때로는 나무에 묶여서 발을 간지르는 개 때문에 웃다가 죽기도 한다.

작가가 가장 음울하던 시절, 그리고 원고지가 습기에 젖어 부드러워질 만큼 습한 기운 속에 썼다는 소설이 죽음의 코드를 담고 있는 것은 그가 술회하듯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얻었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그가 유년시절을 외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시체실의 옆에서 보냈다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절망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시대가 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특성은 그가 사숙했던 보르헤스나 마르께스 같은 남미의 작가에게서 따온 것이기도 하고, 선배작가인 루쉰에게도 빌어온 것이다. 알베르 카뮈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역시 그에게서 느껴진다. 물론 더 확실한 것은 우리 작가 기형도나 최승자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작가 스스로의 본원적인 환경에서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왕슈오의 소설을 각색한 '워아이니' 그의 소설은 10편 넘게 영화화됐다
왕슈오의 소설을 각색한 '워아이니' 그의 소설은 10편 넘게 영화화됐다 ⓒ 신랑왕
물론 이런 경향은 보통 3세대 작가들로 불리는 이들 모두에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학계에 가장 활발한 이슈 메이커로 활동하는 왕슈오는 지앙원 감독에 의해 영화가 된 <햇빛 쏟아지는 날들>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최근에 ‘워아이니’(我愛?)로 영화된 ‘중독된 사랑’(過把?就死)’를 비롯해 10여편이 영화화될 만큼 대중들의 인기를 받고 있다.

그는 애정은 물론이고, 해학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창작해 문예소설과 통속소설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한편 무협작가의 대부 진용(金庸)의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글을 써 새로운 경향의 문학 논쟁을 일으킨 장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왕멍(王蒙) 역시 ‘선봉소설’을 이끈 작가 가운데 하나다. 그는 ‘봄의 소리 春之聲’, ‘나부끼는 연 風箏飄帶’ ‘나비 蝴蝶’ 등의 소설을 통해 의식의 흐름기법을 시험하는 한편 역사의 무게를 버리지 않았다.

돈 앞에 피를 파는 마음으로 글쓰기

위화 소설 '허삼관 매혈기' 표지.
위화 소설 '허삼관 매혈기' 표지.
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도 역사는 거대한 짐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장이모에 의해 영화화된 ‘살아간다는 것’(活着)을 통해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그는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란과 문화대혁명을 겪는 주인공 ‘푸구이’(富貴)의 삶을 통해 역사 속에 개인의 삶에 진실성을 보여준다. 부자가 되고, 귀하게 살아가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만큼이나 아이러니한 그의 삶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현대사를 건너온 중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중국 작가들은 새로운 적을 만나야 했다. 바로 돈과 상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국인들의 본성 가운데 하나를 상기시킨 것이다. 홍즈청은 이 결과 정치 권력이 문학에 갖는 통제력은 약화시키는 한편 신문의 부간(副刊) 등은 작가에게 발표공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문학예술의 지위는 돈과 상품에 밀렸고, 문학의 상품적 속성이 문학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위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1996년 ‘허삼관 매혈기’를 발표한다. 페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페니니가 그린 시간들이 유대인에게 형악과도 같은 홀로코스트의 시간이었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 허삼관이 지내는 시간은 중국 근대사의 중심이다.

49년 공산화, 70년대 전후의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등을 겪고 있다. 페니니의 영화를 생각한 것은 비극의 역사를 차분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역사치고 개인에게 세차지 않은 시간과 장소가 어디 있을까만 그것을 여유롭고, 유머러스하게 관조할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이들을 허삼관으로 보여준다.

생사공장에 다니는 허삼관이 어느날 그는 방씨와 근룡이를 만나 피를 팔면 일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익과 맞먹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안후 인생의 고비나 전환점마다 피를 팔아서 그 위기를 넘겨가는 것이다.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독자들의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이다. 홍수로 흉년이 들었을 때 자린고비를 능가하는 기지로 배고픔을 견디는 것이나, 문혁이라는 혹독한 시간에 비판의 대상에 오른 아내 허옥란의 자기비판회를 여는 모습은 역사와 한 개인의 삶과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89년 톈안먼은 또다른 상흔으로

위화. 이미 중견작가의 대열에 끼어든 그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팬을 갖고 있다
위화. 이미 중견작가의 대열에 끼어든 그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팬을 갖고 있다 ⓒ 신랑왕
80년대 중기 이후에는 시의 전성시대가 왔다. 보통 ‘후기 신시풍’(後新詩潮)으로 불리는데, 앞서 개방이후 생겨난 신시풍을 변화시킨 경우였다. 빙신(?心)은 후기 신시풍을 시속에 반문화와 반숭고라는 두 측면을 대체로 체현하고 있는 어떤 의미에서 다소 극단적인 경향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각자의 톡특한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고 봤다. 현대인의 도시적 감성심리를 파헤치고자 하면서도 신화와 전설로부터 소재를 찾아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낭만의 중간에 1989년 톈안먼의 비극이 일어났다. 다시 심리적 공항에 빠져들기도 했다. 더러는 베이다오처럼 외국에서 그 안타까움을 표출한 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꾸청(顧城)은 1993년 10월 뉴질랜드에서 자살하는 데 그런 분열적 상태가 소설 ‘잉얼’(英兒)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어쩔수 없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의 알튀세르를 생각해야한다. 꾸청이 아내 레이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칠 때 감각이 알튀세르에게는 아내의 목을 조르는 손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런 분열의 개인에게 파생된 것보다는 시대가 준 유산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위화는 이제 그는 중년 작가가 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을 때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 작품들이 나의 감수성을 움직이는가의 여부이지 재미있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다"라는 말했다. 그는 "훌륭한 작가라면 정치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응당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중적인 조류도 마찬가지지만 중요한 것은 작가가 진정으로 사람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던 그는 2002년 11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사를 건너온 여성의 삶을 소설화하겠다고 밝혔다. 남녀평등이 거의 실현되었고, 사회참여가 활발한 중국인만큼 그만한 작가로서 한번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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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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