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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는 '박정희 논쟁'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광복회는 '박정희 논쟁'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전임 윤경빈 회장에 이어 새 광복회장에 오른 장 철 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일파는 다 죽고 후손만 남았으니 이제 용서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친일청산 중단' 발언으로 독립운동 유족들은 물론 온 국민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장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친일청산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국민적 지지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으로 뜻 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항일독립운동가의 유족들의 분노는 더했는데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동암 차이석 선생의 아들 영조 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광복이 되면 제일 먼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한다고 결의했어요. 그것을 기본 정신으로 하여 반민특위법이 생긴 거지요. 물론 단 한 사람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우리 현실이지만 장 철 회장에게 그 누가 친일파를 용서하라는 권한을 주었다는 말입니까? 지하에 계시는 선열들이 통탄해 하실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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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는 다 죽고 후손만 남았다 그러니 이제 용서하는 게 좋잖나"


장철 회장은 유족들의 항의에 못이기는 척 하면서 지난 9월 3일 자신의 신임 여부를 묻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만들어 유족들의 분노를 무마하려 했으나 그의 약속은 현재 온데간데 없다.(<박스 기사> 참조) 오히려, 장 회장은 자신의 퇴진 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 중 하나인 차영조씨를 징계하겠다면서 그에게 12월 5일까지 소명서를 보내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공문내용으로 보아 징계의 직접적인 이유는 장철 회장이 참석한 각종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회장인 자신에게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차영조씨는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김구 주석 비서장을 동암 차이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씨.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김구 주석 비서장을 동암 차이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씨.
"10월 10일 이봉창의사 70주기 추모식과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과 같은 성스러운 행사에 친일청산 중단을 주장하는 자가 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참석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주의를 준 것으로 행사 참석자들 중 다수는 통쾌하다는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나를 징계한다니 개가 웃을 일이지요.

E또 지난 11월 17일에는 새로 개관한 백범기념관에서 여러 독립운동유관 단체들이 모여 '순국선열의 날' 행사를 벌였는데 나를 비롯해 장 회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여러 명의 회원들이 주머니에 계란을 준비해 갔어요. 도저히 말로 해서는 광복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것 같지 않고 이미 합의서마저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행사가 모두 끝나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장 회장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옆에 있던 광복회 간부들이 먼저 나의 몸을 붙잡았고 이어서 국무총리 경호원들이 합세하여 저를 다른 곳으로 완전 격리시켜 버렸지 뭡니까.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동지들이 장 회장에게 계란세례를 퍼부어 그의 옷과 차량이 계란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광복회에서 차 씨에게 보낸 공문에는 그의 징계사유로 거론되는 정관까지 '친절하게' 첨부되어 있다. 과연 그의 행동이 징계 사유가 되는 것일까?

광복회가 차씨에게 보낸 징계 관련 공문
광복회가 차씨에게 보낸 징계 관련 공문
정관 제27조 2항('본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회원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자')과 3항('기타 본회의 발전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따라 정관 제27조 1항에 의거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되어 있다. 차씨는 "이 정관에 의해서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장철 광복회장 자신"이라고 말한다.

광복회에서는 차씨에게 12월 5일까지 징계에 대한 소명서를 보내라고 하였으나, 차씨는 "광복회가 지금 무슨 권위와 정당성이 있다고 나에 대해 징계를 운운하느냐"며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평소 차씨를 잘 아는 한 광복회원은 차씨를 이렇게 평했다.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가난하게 살다보니 선친의 뜻을 잇기는커녕 연금 몇 푼에 벌벌 떨고 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은 고사하고 오히려 수구세력편에 서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차영조씨는 선친의 뜻을 온 몸으로 잇고 있는 몇 안되는 유족이다. 박정희기념관 반대운동에 열성을 다하는 등 평소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언제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광복회가 1965년 만들어진 이후 이 땅의 절실한 시대적 소명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곱씹어 보게된다. 굳이 박정희에 의해서 만들어진 후 초대 회장에 친일 밀정으로 알려진 이갑성(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이 앉은 것은 별개로 하자.

유신독재, 전두환 폭압정권 아래서 수많은 시민·노동자·농민·학생이 항거할 때 '일제시대에 목숨걸고 독립운동했다'는 분들과 그 유족들의 최대의 조직인 광복회는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프랑스의 경우 레지스탕스 출신자들의 조직이 사회에 영향력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국가 원로단체로 굳건히 자리매김되어 있는데 반해 광복회는 어떠한가. 비단 이러한 현실을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만 치부하고 넘어가도 좋을까.

어쩌면 이번의 장철 광복회장의 망언과 차영조씨 징계 사태를 보면서 광복회 스스로 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친일청산운동이야말로 오늘날의 독립운동'이라는 신념을 한시도 포기하기 않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은 "친일청산을 해야할 광복회와 생존 독립운동자들이 나와 함께 나서주니 않으니 나는 항상 외롭다"고 말하며 한 숨을 내쉰다.

광복회 이사회는 12월 4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차씨에 대한 징계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징계로 인해 차씨가 생활에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차씨에 대한 징계는 친일청산이 안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 줄 것인 동시에 언제나 그러했듯이 정의와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아래와 같은 행사를 알리는 초청장이 나뒹굴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61주년 기념식>
- 일시 : 12월 9일(월) 오전 10시 30분
- 장소 : 백범기념관 대회의실
- 국민의례.....사회
- 기념사.....○○○
- 대일선전포고문낭독.....○○○
- 축사 : ○○○
- 축사 : 광복회장 장 철

휴지조각이 된 장철 회장의 '합의서'

장철 회장은 자신의 '친일청산 중단' 발언이 큰 물의를 일으키자 이에 항의하는 유족들을 피해 2002년 9월 3일 독립유공자협회 사무실에서 아래와 같은 '합의문'을 작성, 유족들의 분노를 잠재우려 하였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합의문마저도 지켜지지 않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합의서

근간 광복회 사태 해결을 위하여 전 광복회장 윤경빈, 독립유공자협회 회장 김국주, 장 철 회장 등 3인이 하기와 같이 합의하였음을 증한다.

기,
1. 광복회는 2002년 10월 5일 이내에 대의원 총회를 소집한다.

2. 이 총회에서는 장 철 회장의 신임을 묻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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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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