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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아홉 번째 무학점 강의를 시작한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
지난 9월 27일 아홉 번째 무학점 강의를 시작한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 ⓒ 오마이뉴스 김영균
'다만, 정확한 지식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었던 한 교수가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대학에 의해 강단에서 밀려났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6년, 그 교수는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존경받는 원로 교수들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냈고 대학은 그를 불편해 했다.

2년 뒤 대학은 원로들을 향한 '용비어천가'는커녕, '사관(史官)'처럼 바른말을 쏟아낸 그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함으로써 '괘씸죄'를 물었다. 그로부터 4년 동안, 대학당국은 그의 연구실의 전화마저 끊었고 강의 공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려던 젊은 교수는 대학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이 싸우고 있는 중이다. 전 서울대 미대 김민수(42) 교수. 96년 교내 학술 심포지엄에서 선배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지적한 죄(?)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비상식적인 서울대 '패거리 문화'에 줄곧 항거해 온 그가, 지난 9월 27일 아홉 번째로 '학점 없는 강의'를 열었다. 몇 년을 이어온 서울대 '권위주의'와의 싸움을 다시 시작한 것.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죠. 저도 대책위도 힘들었지만, '학문의 자유'라는 공공성의 훼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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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용 탈락, 힘겨운 복직투쟁 벌이는 서울대 김민수 교수


서울대학교 52동 413호. 여느 연구실과 다름없이 책들이 천장까지 가득 쌓여 있는 좁은 방에서 두 대의 컴퓨터로 수업 준비에 바쁜 김 전 교수는 "싸움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지금의 제 행동은 우리의 '본능'에 따른 것입니다. 산에 캠핑을 가서 텐트를 칠 때, 옆구리에 돌이 걸리면 치우고 자리를 평평히 하는 것과 같은 본능…. 우리 생활 속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는 것과 같이, 현재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고쳐나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죠."

"과오를 바로잡는 것은 상식의 문제"

선배 교수들의 '친일' 문제를 비판했다고 해서 인정받는 연구실적까지 무시하며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대학, 또 그것이 그대로 용인되는 학계의 풍토는 분명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우리는 지금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상당히 무감각해져 있는 상탭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상식에 대한 문젠데, 우리는 그 '상식'을 보지도 못하고 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하고….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핏발 세우고 욕하려 들면서 정작 우리 자신의 문제, 삶의 잔재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가 안되고 있는게 현실 아닙니까?"

김민수 교수와 동료들, 학생대책위 등이 복직을 요구하며 싸운지 4년이 지났지만, 서울대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있다.
김민수 교수와 동료들, 학생대책위 등이 복직을 요구하며 싸운지 4년이 지났지만, 서울대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상식'의 문제에 도전한 김 교수의 싸움은 길었지만, 그 길이 반드시 외롭지만은 않았다. 해직 이후 4년 동안,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도 생겨났고 400여 명의 동료 교수들은 서명용지를 돌려 '탄원서'를 제출했다. 2000년 8월에는 행정법원의 '복직' 판결도 받아냈다.

그러나 아직 그는 해직 교수다. 서울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고, 서울대가 항소한 고등법원은 '복직'을 판결한 원심을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며 파기했다. '학문적 양심'을 가진 교수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상식적인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복직 문제는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대학과 '화평'하라니…'재임용 탈락'은 감정의 문제 아니다"

'젊고 개혁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취임 이후, 김 교수의 '복직' 희망은 조금 나아졌을까.

"대책위가 총장과 면담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해법을 고민하시는지 바쁘신지, 이렇다 할 만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계시죠. 다만 총장님이 저와 미대와의 "화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문제는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거든요. 공적인 문제죠. 감정적인 문제라면 '화평'을 할 수 있겠지만, 대학이라는 '공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얘기한 것에 대해 불이익을 받은 것을 '화평'으로 풀 수 있겠습니까?"

지난 98년 첫 '무학점 강의'를 시작할 때 1학년으로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벌써 졸업을 했다. 4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꽉 막힌' 서울대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하는 길에 문을 닫아걸고 있다.

"제 강의는 1명이 남더라도 끝까지 갑니다. 복직 문제 역시 국내에서 해결이 안 되면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를 해서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서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디자인은 삶과 철학의 문제다"
김민수 교수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펴내

선배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4년이 넘게 싸우고 있는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최근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새 책을 펴냈다. <김민수의 문화디자인>(다우).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디자인이 "삶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장식 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섭리, 물질의 존재, 세상의 이치를 성찰하는 철학이자, 철학과 문화의 접점을 창조하는 실천행위"라고 정의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 월드컵에서 나타난 '붉은 악마'와 태극기의 물결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감동을 준 디자인"이라며 "우리 디자인의 문제는 내공과 철학"이라고 썼다. 내공과 철학, 즉 '알맹이'가 없는 우리의 디자인은 급조된 우리 '근대화'처럼 상업주의나 장식의 천박함에 매몰되어 왔을 뿐이라는 것.

한편 김 교수는 이 책의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달아 '서울대 패거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神)'이 지배한 중세에 '우주의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갈릴레오와 자신이 같은 위치에 서 있다"고 판단한 그는 '서울대'라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케플러의 말을 인용해 일갈한다.

"진실은 신의 눈에 좋게 보여야 할 이유가 없다."

김 교수는 또 학교를 세계적인 명문으로 만들겠다는 서울대가 정작 학내에서는 "학문을 빙자한 조직적인 테러와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고 밝히며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패거리 문화에 동조하지 않고 단지 역사의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것이 그토록 신성모독에 해당한다면 진짜 '조폭'을 시켜 차라리 나를 죽여다오." /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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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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