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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쪽으로 일가 되시는 분이 드디어 며느리를 보셨다. 연년생 두 아이 기르며 공부하느라 어렵던 시절, 다세대 주택의 1층에 살던 내가 3층에 사시던 그 분께 받은 살가운 보살핌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맏아들 부부가 마침 내가 옮겨 앉은 작은 아파트 단지의 옆 동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는 바람에 그 며느리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직계가 아니어서였을까. 내게는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으셨던가보다. 그렇게도 너그럽고 넉넉하신 분이 며느리에게는 어찌나 엄하고 까다로우신지, 며느리는 내 앞에 앉아 눈물 바람을 하곤 했다.

사이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부간에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길까 싶어 무척 조심하면서 지냈고,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고부 양쪽 다 서로에게 적응해 이제는 그런대로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화와 짧은 글로 꾸며진〈우리 할머니〉는 한 일본 할머니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신다.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의 집안 일은 물론이고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봉사 활동까지 하신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이들 옆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재우고 나서야 당신 방으로 가 잠자리에 드신다.

그럼 도대체 며느리는 뭘 할까. 아침에 식구들 모두 나가고 할머니가 밭일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그 때 일어난다. 시어머니가 끓인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시어머니가 봉사 활동을 하시는 동안에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본다.

이집 며느리는 장을 볼 때는 순전히 쉽고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만 고르고, 저녁밥을 하면서도 텔레비전에 한 눈 파느라 국냄비를 태운다. 시어머니가 아이들 재우는 동안에는 남편과 마주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차를 마신다.

만화와 짧은 글로 과장을 하기도 하고 단순화시키기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정말 이럴 수 있을까. 할머니는 화를 내는 법도 없이 둥그런 얼굴과 몸매 그대로 넉넉하시다. 며느리는 이렇게 철없고 뻔뻔스러울 수가 없다.

실생활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 가정의 주부,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정말 이렇다면 이 가정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병들지 않은 이상 가족 간의 이런 역할 나눔은 있을 수 없다. 혹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부, 아내, 엄마의 자리를 내주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며느리는 이미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내게 그럴 수 없이 너그러우신 분이 당신의 며느리에게는 그리도 노여움을 타시고 서운해 하시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은 이미 자신의 품을 떠나 새로 꾸민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와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며느리가 당신만큼 아들을 챙기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는지. 솔직히 당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 속 할머니가 아무리 넉넉한 모습으로 가족을 위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신다 해도, 비록 할머니께는 하루 하루가 좋은 하루라 해도, 한 구석에 아무 역할도 나누어 받지 못한 며느리가 있어서인지 식구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과 환상이 이런 모습을 그려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상대를 밀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이 진정 사람에 대한 예의이며 배려가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

(우리 할머니, 오니시 히로미 글·그림, 주혜란 옮김, 이앤씨포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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