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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똑똑이 '산이'가 뉴스마다 나오는 월드컵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 듯하더니만 보는 운동은 시시한지 직접 축구공을 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테니스 공을 줬더니 대뜸 내질러 버려서 개골창에 처넣어 버렸다. "허 참, 별놈 다 본다" 싶었지만 나도 장난끼가 발동하여 '산이'와 의형제를 맺은 우리집 장남 새들이의 축구공을 줘봤다. 그런데 그것도 이틀만에 농구공으로 바꿔줘야 했다. 서커스단 곰처럼 공 위에 올라가서 공을 드리볼하기에는 농구공이 더 안성맞춤이었던가 보다.

'산이'는 꼭 한 달 전 우리집 새 식구가 된 강아지 풍산개의 이름이다.

이제 생후 두 달되는 산이는 강아지 태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어제는 좀 늦게 돌아왔는데 새들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나에게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산이'가 아랫집 발바리 두 마리와 싸워서 이겼다는 것.

축구를 하는 풍산개 '산이'

"산이가 이겼어? 안 물렸어? 어떻게 싸웠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겼다는 말보다 싸웠다는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진돗개를 키우면서 두 차례나 새끼 때 죽였던 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새들이가 당시 상황을 신이 나서 설명을 했는데 나는 '이겼다'는 말에 겨우 안도하면서도 혹 물린 데나 없는지 상처가 생긴 곳은 없나 살펴보았지만 산이는 멀쩡했다.

아무리 봐도 싸움을 벌일 만큼 자라지는 않았는데 겨우 두 달 된 산이가 싸워 이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 의심이 답답한지 새들이가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설명했다.

발바리는 어미 개와 새끼 개 두 마리를 말하는데 새끼 개도 7-8개월이 된 큰 개다. 덩치야 원래 큰 편이 아닌 발바리지만 두 달 된 산이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두 마리가 협공을 했다는데.

놀라운 '산이'의 싸움실력

그런데 산이는 한 번도 물리지 않았을 뿐더러 발바리들과는 달리 앞발로 발바리 두 마리를 번갈아 내리 갈기면서 두 마리를 완전히 제압했던 모양이다. 산이 앞발에 얻어맞은 발바리가 픽픽 쓰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발바리들이 우리 집 마당에 똥도 싸 놓고 닭을 물어죽이기도 했던 악연을 '산이'가 통쾌하게 복수(?)를 한 셈이다.

오늘도 산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차기를 하고 있다. 킥과 드리볼이 수준급이다. 파워, 스피드, 공간 지각력 등 나무랄 데가 없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엄마 개와 헤어져 몇 백리를 차를 타고 와서 피곤해서인지 비실비실하여 내 애를 태우더니만 밤에는 네 다리 쫙 뻗고는 건드려도 고개조차 못들고 뻗어 버렸었다.

그날은 새들이와 나만 집에 있었는데 내일 땅에 파 묻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었다. 풍산개를 준 사람한테 면목도 면목이지만 이러면 우리집에서 강아지가 죽어난 게 세 마리째가 되는구나 싶은 게 가슴이 콱 막혀왔었다.

뻗어 있는 '산이'를 불을 지핀 벽난로 앞에 누여놓고 새들이랑 기도를 했다. 새들이 기도가 참 애절했었다. 헐떡이는 산이를 만지면서 새들이는 산이가 오래오래 살다가 나중에 죽더라도 나이 많이 먹었을 때 죽어 달라고 했다.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풍산개가 우리 집에 온다고 자랑을 해놨는데 친구들이 보러 온다고 했는데 죽으면 어떡하냐고 하소연 섞인 기도였다.

기도로 살렸던 '산이'

새들이가 하나님과 부처님, 예수님 다 찾아다니며 호소를 해서인지 '산이'는 살아났다. 완전히 포기하고 우리 부자가 새벽 1시쯤인가 잠에 들었는데 새벽에 바시락거리는 소리를 새들이와 내가 동시에 들었다. 방에서 거실로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죽어 있는 산이의 시신을 차마 볼 용기가 없어서였고, 새들이는 바스락거리는 쥐인지 들고양인지 모를 짐승이 무서워서였다. 불부터 켜고 함께 문을 열고 나오던 우리는 다른 이유로 깜짝 놀랐다. 생쥐 보다도 더 빠르게 '산이'가 안방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축 처졌던 초기의 산이 귀도 내가 '산이야'하고 부르거나 공놀이를 할 때면 살짝 일어서기도 한다. 누구 말로는 풍산개의 반은 귀가 일어서고 반은 그냥 처져 있다고 한다. 산이는 먹이를 주면 우선 덥썩 물고는 구석으로 가서 먹는다. 누구 뺏어먹을 사람도 아니, 개도 없는데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야성 때문이려니….

새벽에 내가 마루로 나오면 어느새 낌새를 채고는 산이가 뛰쳐나온다. 눈꼽은 언제 털어냈는지 항상 말간 얼굴로 나온다. 흔들어도, 간지럼을 태워도 한번 골아떨어지면 일어날 줄 모르는 새들이하고는 아무리 (의)형제라고 하지만 엄마가 다른 것을 속일 수가 없다.

섬돌에 내려설 때부터 나는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난감해진다. 내가 가는 곳마다 발걸음에 채이는 산이. 내 발등에 얹혀 다닌다고 해야 할 듯하다. 꼭 한 번. 서둘러 걷다가 산이 앞발을 밟아 버렸다. "깨갱 깨갱 나 죽는다…"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들고 있던 대야를 떨구어 버린 적도 있다.

자동차 문짝을 열어 놓고 차를 닦고 있는데 자동차 시트에 흙탕물 묻은 발로 폴짝 올라간다. "이놈!"하면서 거칠게 끌어내렸더니 이번에는 내 바지 가랭이를 물고 늘어진다. 마루에 못 올라오게 해야지 다짐을 하고 산이가 마루에 오줌을 쌌을 때 "이놈!" 호통을 치면서 밀쳐버렸더니 마루에서 굴러떨어져 마당까지 나뒹굴어져서 "에구 에구 미안하다 산이야"하면서 일으켜주려고 했더니 내 손길보다 더 잽싸게 일어나서 다시 풀쩍 마루 위로 뛰어오른다.

마루에 싼 똥을 가리키면서 야단을 쳐도 순진무구하게 머루알 같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딴전을 피운다.

나를 제일 사람대접 하는 산이

이 세상 만물 중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를 이토록 극진히 '사람대접' 해주는 이는 오직 '산이'뿐인가 싶을 때가 있다. 너무 달라붙는 산이가 정말 귀찮을 때가 있는데 언젠가 깊은 밤중에 비가 뿌리는 소리에 깜깜한 집 뒤안으로 돌아가는데 어느새 산이가 앞장을 서는 것을 보고는 감동이 되었었다.

오늘은 산이한테서 우리 새들이 잠버릇을 발견하고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의)형제인 두 놈이 수십 수 백대 위 조상이 같았나? 싶은 생각에.

민족의학에서 말하는 침상과 경침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작업대를 만들어 놓고 오동나무 켠 것으로 망치질과 대패질을 한참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나서 보니 작업대 밑에서 '산이'가 골아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대패 밥 먼지 구덩이 속에서 나오게 하려고 아무리 발로 걷어차면서 나오라고 말을 해도 눈만 게슴츠레 치뜨다말고는 다시 골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 산송장 치우듯 끌어다가 마루 밑 그늘에 눕히니까 잠결에도 축구공을 끌어다 머리맡에 두고는 다시 골아떨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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