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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산이'의 죽음

꼭 두 달 열흘간 살다 갔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 지 나흘만에, '산이'를 데려다 주신 그분에게 오랜만의 '산이' 안부 메일을 드렸던 날인 바로 어제, '산이'가 죽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이 '산이'에게 보내준 탄성과 애정어린 쓰다듬도 뒤로 하고 날벼락처럼 산이가 죽은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새들이가 온 얼굴을 눈물로 범벅을 한 채 흐느끼는 소리만 남겨놓고 산이는 죽었다. 갑작스런 산이의 죽음에서 오는 당혹과 슬픔이 말할 수 없이 크다. 차마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죽음을 목도해야 했기에 더 그렇다.

문득 속으로 삼키는 새들이 울음소리가 '산이'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랑하는 '산이'가 살다간 짧디짧은 나날들이 그가 흘린 핏덩이처럼 생생하다. 외마디 찢기는 비명으로 쓰러진 산이는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숨이 끊어졌다. 내 흰 고무신을 물고 마당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산이를 깨금발로 뒤쫓으며 거기 서라고 소리치던 순간들이 모두 거짓말 같다. 산이 코 앞에 갖다대고 몇 번 다짐을 한 뒤에 멀찍이 던지던 나무토막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가 자랑스레 다시 물고 올 것만 같다.

내가 산이를 죽인 것 같은 자책이 든다. 산이의 죽음을 놓고 일부러 감정을 세워서 글 잔치를 벌일 생각은 없다. 다만 아침에 산이 목걸이를 풀어주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더 가슴이 아프다. 집을 비울 때는 이런저런 걱정으로 산이 목걸이를 '산이' 집 기둥에 묶곤 하는데 어제는 아침운동도 할 겸 풀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깨개갱하고는 공중제비로 솟구친 산이가 두어 번 뒹굴며 발버둥을 치다 바르르 한번 몸을 떨고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내가 보는 눈앞에서 죽었다. 사고를 목격하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살아만 있어라. 제발. 그러나 깨진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금세 산이의 새하얀 털을 적시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나는 주저앉았다. 하느님께 빌었다. 제발 산이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살아만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꼭 한 토막의 국방색 생똥을 싸 놓고 산이는 죽었다. 눈을 치뜬 채 숨이 멎어 있었다. 주저하며 산이를 보듬어 들었다. 어여쁜 산이의 주검을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축 처진 산이 머리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종이 포장박스에 넣었다. 근 이틀 간에 걸쳐 아담하게 만들어 놓은 산이 집이 마당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헌 슬레이트를 갖다가 지붕을 만들고 돔 식의 출입구까지 예쁘게 재단할 때 내내 곁에서 얼쩡거리던 산이가 톱날로 달려들까봐 가슴 졸이게 하더니 그 산이가 죽고 텅빈 집만 남았다.

양동이로 물을 퍼다가 길바닥의 피를 솔로 닦아냈다. 산이를 깔고 넘어간 자동차는 길가에 세워진 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자동차 시동을 껐다. 좋아라 쫄랑쫄랑 따라 온 산이를 이렇게 죽여 놓았구나. 말라붙은 피는 몇 번을 문질러서야 씻겨 내려갔다. 식구들이 모두 마당구석에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새날이마저 이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겨우 두 달만 허락된 산이와의 인연은 너무 짧았다. 산이를 주신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먼길을 조심스레 데려와 강아지용 분유랑 사료를 별도로 사서 함께 건네줄 때 나는 산이를 자식처럼 받았었다. 엄마개와 헤어져 온 산이가 첫날밤을 못 넘길 것 같아 애를 태우더니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다시 살려 놓은 게 결국 이렇게 내 손에 죽이려고 그랬었나 싶어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우리집 앞마당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산이를 묻었다. 산이가 담긴 박스가 구겨지지 않고 잘 놓여지도록 넉넉하게 팠다. 산이를 바르게 뉘였다. 산이 위로 흙을 한줌 집어 여러 차례 뿌렸다. 곁으로 다가온 새날이가 들꽃 몇 송이를 꺾어 산이 위에 놓았다. 눈물을 훔치려고 손등을 얼굴로 가져가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굴러 내렸다.

빈틈없이 꼭꼭 밟아가며 흙을 덮었다. 그 위로 떼를 입혔다. 언덕길 여기 저기서 삽으로 떼를 떠 와서 작은 무덤을 만들었다. 가만히 합장을 하고 산이를 내려다보았다. 축축하고 어두운 땅 속 기운으로 산이가 내게로 왔다. 내 가슴에 오래 묻히고 싶어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이런 선택을 했나 묻고 싶었다.

오늘 철쭉꽃을 산이 무덤에 심었다. 저녁 어둑발이 들 무렵 새들이가 산이 무덤에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새들이 눈길을 피해 나는 돌아앉았다. 나는 양동이에 물을 퍼다가 철쭉 둘레에 부어가며 발로 꼭꼭 밟아줬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산이의 감촉이 철쭉꽃 줄기 따라 번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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