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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똑똑이'란 말이 있다. 평소에 참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보았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똑똑한 척 한 만큼 아는 것이 별로 없더란 것이다. 바야흐로 '헛똑똑이'들의 양산시대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른바 족벌신문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글을 쓰는 다양한 '헛똑똑이'들을 보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행태가 '헛똑똑이'에서 그치게 된다면 오히려 다행이랄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전문지식을 쌓아온 사람들이며, 따라서 그들의 영역에선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요즘 족벌신문에 써대는 글을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연구실 혹은 강의실에서 박제되어버린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와 그들의 지식이 이 사회가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쓰여지느냐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식인'이라는 오만함으로,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한 영향력으로 올바른 사회를 위한 노력을 폄하하고 훼방놓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신동아 8월호'에 이문열 씨와의 인터뷰기사가 실린 것을 오마이뉴스기사를 통해 알았다. 조선일보의 시론을 필두로 그 동안 언론에 실린 그의 글을 접해갈수록 느끼는 것인데, 참으로 그는 조선일보 시론 이후에는 세상의 비난에 귀막고 그의 문원에 칩거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글을 덧붙이고, 그와의 인터뷰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의 은유적 표현이 그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상이 밝혀질 수 밖에 없는데. 이로써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경박함, 역사의식의 왜곡된 인식이 더욱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장 4시간에 걸친 인터뷰이긴 하지만 그간 그가 신문지상을 통해 주장해왔던 내용이상의 새로운 내용은 없다. 다만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답게 그가 주장해왔던 바에 대한 구체적인 보충설명이 추가되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는데, 그간 그의 글에 대한 비판은 많은 매체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바 있으므로, 이 인터뷰 내용중 특이한 몇 가지 주장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겠다(인터뷰 내용중 이문열 씨의 법과 관련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 하승주 기자가 이미 기사로 비판한 바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첫째, '노동조합에 지배되는 신문론'이다.
"이걸(세무조사를) 하면 신문이 둘 중에 하나가 되리라는 추론, 하나는 정부에 코가 꿰인 신문이고 또 하나는 사주 없이 다중·우중이 주인인 신문, 말하자면 대자보 같은 신문이 되는 것인데, 둘 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신문의 경우 노동조합 내의 역학관계가 모든 걸 결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춘투(春鬪)인가 추투(秋鬪)인가, 뭐 그런 것의 결과에 따라 신문사의 ‘라인’이 다 바뀐다는 겁니다. 논조는 그 라인의 것이 되고”라고 그가 색다른 주장을 이야기하니 인터뷰하던 기자도 어리둥절해진다.
"그런 정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노동조합론의 근거라는 게 참 웃긴다.
"예전에 소설심사를 할 때 결심(結審)에서 그걸 소재로 한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싸움에서 승리한 계열이 다 가져가는 걸로 돼 있더군요.”

기껏 근거라고는 자신이 예전에 읽었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매도하고, 신문의 논조형성과정을 자의로 창출한다. 아마 공정하고 독립적인 편집권을 위해 사원의 투표로 편집위원장을 선출하는 신문사의 예를 자신이 옛날에 읽었던 소설의 이미지와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역시 소설의 대가답게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면이 아닐까한다. 그러면서 그런 '노동조합이 지배하는 신문'을 '대자보'수준으로 폄하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 신문들에서는 전통적인 논조라는 게 없고 그때그때 구성원들의 세력 향배에 따라 논조가 결정되죠. 그래서 다분히 대자보 같은 신문이 되는 거죠.”

상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당연히 신동아기자의 "그 얘기는 곧바로 반론에 부닥치지 않을까요. 뒤집어 말하면 사주가 있는 신문에서만 올바른 논조가 가능하다는 얘기인데…"라는 질문에 직면하지만, 그에 대한 논거와 결론은 없이 흐지부지 얼버무리고 만다. 도대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와 합리적 논리의 전개는 이 대목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 그가 인터넷을 바로보는 시각에 대해서다.
"인터넷 여론은 홍위병의 특성을 갖고 있어요. 의사전달방식이 충동적이고 공격성이 강하고 과장이 심해요. 익명성이 부추기는 무례 혹은 무모함이라고나 할까. 완전히 ‘황제폐하 만세’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가 인터넷 여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은 누구든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누구든 어떤 사실을 비판하고 주장하려면 그 '어떤 것'에 대해 최소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자신 혼자서 이메일도 이용하지 못하고, 인터넷도 '애들'도움을 받아야 열어볼 수 있다고 이 인터뷰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런 컴맹수준의 사람이 인터넷여론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아마 어떤 사람이 그가 쓴 책의 겉표지만 보고 "이 글 쓴 작자는 사고도 불안정하고, 역사의식도 편향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어!"라고 주장한다면, 그로서는 참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지금 그와 같은 무책임한 말을 그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진정으로 그는 그가 애용하는 말인 '비전문성에 의한 전문성 억압'이라는 말의 용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이지 모르겠다.

아마 인터넷에 대한 그의 그런 시각은 조선일보가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안티조선운동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왕성하게 번져가자, 이 신문이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낸 사실은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눈치챘으리라. 이문열 씨도 이런 면에서는 조선일보의 해악을 입은 피해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세무조사를 '희한한 사건'으로 보는 그의 시각이다.
"문민정부 때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여러 모로 비교가 됩니다. 그때는 조사결과를 땅에 묻어버렸어요. 추징도 하지 않았고."

"그게 잘한 일일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YS 때는 지금처럼 심각하게 충돌하지 않았어요. 신문의 대응도 그때는 ‘까짓 것 하면 당하지’ 하는 정도였지, ‘한번 붙어보자’ 하는 식은 아니었어요. 그게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해요. YS도 ‘너희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고. 그런데 이번에는, 세 신문 모두 그 조짐을 알면서도 ‘하려면 해라, 한번 붙어보자’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어요. 정부도 끝까지 밀고 갈 기세고.”

이른바 'YS의 도쿄발언'을 통해 알게되었지만, 그 당시 언론사의 세무조사가 실시되고도 신문사주와 적당히 타협하여 덮어버리고 정권이 언론과 유착한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비판을 아끼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발언은 다분히 '사오정식'사고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충돌하지 말고 YS같이 적당히 타협하라는 이야기인데, 제대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그가 '희한한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탈세신문이나 야당이 무한정 생성해내는 '의도'나 '동기'를 떼놓고 생각하자면, 단순히 탈세를 했기 때문에 세금을 물고 처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그 대상이 말많고 힘있는 신문사라는 것이 이토록 시끄러운 이유인 것이다. 그가 언론사세무조사를 '희한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제껏 정권과 언론이 야합하는 모습밖에는 보지를 못했고, 또 그러한 구태의 모습을 뛰어넘을 진취적 사고를 하지 못했을 따름인 것이다. 우물속에서만 살던 개구리가 우물을 벗어나서 보는 넓은 세상은 '희한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나는 이 인터뷰기사에서 실제로 그가 쓴 책에 대한 환불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뷰중에도 몇 건 들어왔으니 아마 적지 않은 사람이 그에게 책을 반송하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는 '수취인불명'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정말 당당하지 못하다. 한때나마 그의 책을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다.

그의 책을 반송하면서 정말 책값을 돌려받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언론개혁을 둘러싼 그의 주장에 대한 강한 항의의 표시와 사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자신의 책장에서 책을 추려서 힘들게 포장하여 보냈지만, 한편 서운함을 금치 못하는 과거의 그의 열렬한 팬들이 아니었겠는가? 나 역시 책을 반송하지는 않았지만 그 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가 현재의 언론개혁논쟁과는 별도로, 그 자신의 글과 책을 정말 사랑하고 그의 독자들을 진정 아끼는 사람이라면 '수취인불명'이라는 비겁하고 오만한 방법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진정 자신을 문화의 권력이라 생각하며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는 별도로 문학작품은 작품으로 간직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 장의 글이라도 붙여서 정중히 다시 독자의 품으로 보내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의 글과 기사를 접할수록 실망만 더해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인터뷰기사 전문은 아래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8/nd2001080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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