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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신동아 8월호에 실린 이문열씨의 대담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대담의 전문은 아래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8/nd2001080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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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론사 세무조사가 형벌 불소급 및 사후법(事後法)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강조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법의 함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많건 적건 법의 이름으로 언제든 처벌될 수 있어요. 법 위반행위 중엔 하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라 죄의식조차 없는 것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지금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과 우리나라 여자들 몇백만명을 일거에 감옥에 넣을 수 있는 죄가 하나 있습니다. 낙태죄. 그건 분명히 큰 죄예요. 하지만 수십 년째 죄가 아닌 것으로 인식돼 죄의식도 없이 저질러져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낙태죄를 엄격히 적용해 아직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은 모든 범법자를 잡아들인다면 아마 이상한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사주의 비리혐의 중엔 당시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당연하게 여긴 것도 있을 거란 뜻에서 해본 얘깁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두 전직 대통령을 잡아들이며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때 내 형량을 따져보니 나도 한 15년 정도는 살아야 되겠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경제사범에 정치사범이었기 때문이죠. 전두환·노태우가 반란을 일으켰다는데, 그러면 종범은 누구냐. 엄격히 법을 적용하면 반란을 지켜보며 묵시의 동의를 한 사람도 종범이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투표장에 나가 사후 승인을 했으니까. 어쩌면 그때 저항하거나 징역 가거나 맞아죽은 사람 빼고는 다 종범일지 몰라요. 그 정권에 세금 내고, 때로는 안정논리로 부화(附和)까지 한 나는 거의 빠져나갈 길이 없고.

경제 분야도 그래요. 나도 옛날에 집 살 때 말이죠. 돈 모자라면 은행에서 돈 빌렸는데, 비록 뇌물 봉투는 안 줬지만 도와준 친구에게 나중에 술 한잔 샀어요. 그런데 향응도 뇌물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나는 뇌물 주고 은행돈을 많이 빌린 셈입니다. 한 다섯 번 이상 빌렸을 거예요. 부동산투기도 했어요. 바로 이 ‘부악문원’을 지은 땅도 투기꾼 방식대로 산 땅이라. 왜냐하면 그때(84년) 내가 서울에 살면서 주민등록만 옮겨서 샀거든. 그것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나중에 투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집필실을 지은 후에는 주민등록을 그대로 두고 죽 여기서 살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땐 분명히 불법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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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소위 우리문학의 대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좀더 민망한 말을 하나만 더 하자면... 그 앞쪽에서는 비전문이 전문을 평가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면서 이데올로기로 문학을 평가하지말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저는 이데올로기로 문학을 평가하면 안된다고 하는 해괴한 비평논리를 알지 못하는데다가, 정작 이문열 선생은 왜 문학가라는 사람이 이데올로기만으로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는 잡설들을 신문에 쏟아내는지 매우 의심스러워 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데올로기로 문학을 평가할 능력은 없으니 그점에서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만... 아주 기초적인 법학개론적 상식만으로 당신의 법률적 몰상식은 비판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성이 비전문성을 비판하는 것이니 할 말 없으시겠지요?

일단 맨 처음에 언급하신 사후법원칙은 말도 안되는 점이라는 거 아시죠? 예전에는 그것을 처벌하는 법규가 없었는데 지금 와서 그것을 새로 제정하여 처벌하는 것은 안된다는 원칙을 말씀하시려고 한 것같고..

물론 언론사의 탈세가 있던 와중에도 법은 있었으니 형식논리적으로는 일단 말이 안되고... 더 나아가 그 법이 사문화된 것이었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탈세범은 계속 처벌되어 왔으니 절대 사문화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계속 말씀하시려니까 논거가 딸려서 그 이후부터는 치명적인 오류들을 맘대로 발설하시게 됩니다...


1. 낙태죄 주장.

말씀하신 바 대로입니다. 이 조문은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 맞습니다. 따라서 제대로 처벌을 하든가, 아니면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 낙태죄 조항과 탈세범 처벌조항을 병치시키려는 의도는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씀드린 바 대로 탈세범은 계속 처벌되어 왔고, 우리나라 어느누구도 탈세하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설마 언론사주들에게만 탈세가 관행적으로 처벌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처벌되면 안된다고 하실 생각은 없으시겠지요.


2. 엽기 종범.

이상의 글에서 가장 엽기적인 주장입니다. 이 글을 읽고서 웃어야 되나, 열받아야 되나를 고민한 부분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지 왜 아는 척을 하셔서...

역사바로세우기(?) 때문에 당신도 공범자로서 종범으로 한 15년을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요... 그러면서 이게 법의 함정이 아니냐고 하셨는데요...

법의 함정은 당신의 논리만큼 그렇게 어리숙하지않습니다. 적어도 5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적 결정체가 당신의 그 빈약한 논리에 휘둘릴 만큼 그렇게 간단하겠습니까?

제가 찬찬히 설명드리지요.
종범은 범죄를 안말리고 멍청하게 그냥 서 있다고 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은 묵시적 동의가 있었으니 종범이라는 엽기주장을 하셨는데요. 그건 아닙니다. 약력에 보니 한 3년 고시공부를 하셨다고 하던데, 혹시라도 그때 책이 남아 있으면 다시한번 뒤져 보시기 바랍니다.

종범은 부작위로도 가능합니다. 묵시적 동의로도 성립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가만히 있었는데도 종범으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그 부작위가 작위와 같이 평가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법학에서는 이를 보증인적 지위라고 하지요. 또 그것은 구성요건적 동가치성도 갖추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범죄행위와 같이 평가될 수 있는 행위요소도 갖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투표행위가 있었으니 작위다' 라고 하신다면 그렇다고 엽기가 진정성을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엽기입니다.

투표가 작위행위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방조범은 행위만으로 성립하느냐, 아닙니다. 여기서 주관적 구성요건이 필요합니다. 특히 방조범의 고의(주관적 구성요건요소)는 2단의 고의를 필요로 합니다.

가. 방조에 대한 고의 나. 원래범죄의 실현의사

따라서 당신이 방조범으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군사쿠데타를 방조한다는 의식과 함께, 이 군사쿠데타를 완성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엽기적인 주장을 듣다보면 정말 이문열씨는 개인적으로 쿠데타완성의 의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하지만, 당신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서 군사쿠데타를 완성시키고 싶다는 고의를 느낀 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방조범은 그 행위가 무정형한 것이니 처벌의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질 수 있으므로 법학은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 두고 있습니다. 당신같은 비전문가에게 함정운운 당할만큼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답니다.


3.은행돈 빌리기

역시 마찬가지로 어이없습니다.
일단 그죄는 뇌물죄에는 해당하지 않으니까 뇌물죄 운운하지는 마십시요.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배임수증재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배임수증재죄는 말이죠, 돈(또는 향응 등 일체의 물질적 정신적 이익)을 주고서, 그 대가성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청탁을 해야 성립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술 한잔 사고서 (이것이 사교적 답례가 아닌 대가성이 입증되어야지요) 은행원이 당신에게 대출하는 행위가 은행에 대해 배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청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은행원이 당신의 대출요구가 턱도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손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대출한 것이어야 바로 배임수증재죄가 성립합니다. 따라서 술한잔 샀다고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뇌물죄는 조금 다릅니다. 뇌물죄는 그보호법익에서 직무순수성과 불가매수성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그냥 대가성있는 가치(뇌물)를 수수, 제공, 약속하기만 하면 성립합니다. 은행원은 공무원이 아니니까 뇌물죄가 아니라는 말이죠.

뭐, 비전문가가 한 말을 내가 뭐 전문가라고 이렇게 시시콜콜 따지느냐 하면 당신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이데올로기 비평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창씨개명을 하였으니 우리는 모두 친일부역자이고, 거기서 도진개진이니 이제와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소리...그래서 친일 경찰도 용서하고, 만주군 장교도 용서하고, 다만 이런 화해의 분위기를 해치는 눈치없는 반민특위는 족치고...

그런 화해의 분위기 조성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논리가 바로 당신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던가요?

노파심에서 다시한번 그 이데올리기적 비평의 요지를 말씀드립니다.
즉, 당신의 논리는 전체를 일탈행위의 공범으로 일반화시켜서, 책임주체에 가해질 정당한 비판을 무력화시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 자체를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 일반이 창씨개명을 하였으므로 일제부역 하였으니, 박정희의 만주군 장교 복무도 역시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소리, 그것은 이 나라의 건국초기부터 수도없이 제기된 이데올로기 공세의 한 연장선에 불과하며, 이로써 "역사바로세우기"는 여전히 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죠?
이승만도 박정희도 미당 서정주도 부정하면서 어떻게 이나라의 역사성을 세워 나가겠느냐고.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성은 바로 그 이승만, 박정희, 서정주에 대한 정당한 부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모양 이꼴이 아닌가라는 반론이 훨씬 무게있게 다가옵니다. 바로 그 정당한 부정을 가로막는 공범의식의 강요는 유치한 개념장난에 불과하고.

그것은 당신이 말하는 바로 그 전문성앞에서는 베일을 걷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 드립니다. 세상에는 당신의 논리를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법적 무지의 소치인 논리같지도 않은 논리가 이나라의 정체성확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친 것인지 더이상은 상론하지 않겠습니다. 이래서 이데올로기 비평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이것은 명백한 곡학아세(!)의 예이며, 이데올로기적 공세일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지 못한. 그래서 추미애 씨의 곡학아세라는 표현은 정확합니다.

“어때요? 내 얘기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같습니까. 아니면 횡설수설하긴 해도 나름대로 논리를 가진 것 같습니까.”

이게 당신 인터뷰의 마지막 글입니다.

"네. 당신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 맞습니다. 횡설수설 한것이고, 나름대로의 논리는 전혀 없습니다."

이게 제가 본 당신 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이었습니다. 하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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