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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으로 걸어가기

<문화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저씨가 반갑게 웃으면서 "진짜 오랜만이네요. 난 발 끊은 줄 알았는데..." 하십니다. 아이쿠, <문화> 찾아오기에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겼는데 그렇게 내가 뜸했나 싶었습니다.

사실, <신고서점>에서 만난 정년퇴임한 할아버지는 당신이 사는 석관동에서 청계천까지 날마다 걸어다니며 여러 가지 책을 보며 마지막 남은 삶을 즐기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새파랗게 젊디 젊은 제가 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곳을 다닌다는 생각이 부끄러워 <문화서점>으로 걸어가 보자고 했지요.

그래, 어제 일요일을 맞이해 찬찬히 시끄러운 서울 시내 구경도 하고 아현동 가구골목도 구경하면서 헌책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찬찬히 갔는데도 제가 사는 집에서 <문화서점>까지 채 15분도 걸리지 않더군요. 15분도 채 걸리지 않으니 가까이 있음에도 제대로 찾지 않은 제가 참 미안합디다.

<문화> 아저씨는 제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여러 권 챙겨두고 기다리셨답니다. 그래도 언젠가 오겠지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 주지 않으셨다고...

그런 말씀을 듣고 아저씨가 챙겨주신 값진 책들을 보니, 많이 미안합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저렇게 믿고 아낌없이 베푸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아낌없이 베푸는가 하는 생각이 드니 고개가 더 숙여지더군요.

<문화>에서 건진 책들

아저씨가 챙겨주신 책에서 서강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에서 펴낸 민중노래 모음-언제 나왔는지는 모름-도 고르고 아흔세 해나 묵은 옛 교과서도 봅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서정홍-윗몸일으키기, 현암사> 같은 값진 책도 만났고 <길창덕-쭉쟁이의 모험, 기린원(1988)>처럼 애틋하게 다가오는 80년대 만화와 1977년에 나온 <중고등용 음악통론, 성문사>도 보고 박수동 씨가 사잇그림을 넣은 <모두가 몽둥이와 돌멩이로 시작되었다, 백제(1978)>도 봅니다. 일하면서 참고할 <토종 우리말 박사, 능인>와 <최근학-지혜의 칼, 문화출판공사>도 고르고 김승옥 씨 꽁트모음 <위험한 인물, 지식산업사(1977)>도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능인'이란 곳에서 나온 책은 썩 좋은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보아가며 어떻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애썼는가를 살피기도 해야겠죠. 능인이나 예림당, 지경사 같은 곳은 초등학교로 로비를 하며 책을 납품하는 비틀린 책 유통으로 이름난 곳이라 언제나 내켜하지 않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 속에서 <서정홍-윗몸일으키기>를 만나니 참 반갑더군요. 많이 팔리진 못한 책이지만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살갑게 써내려간 시들은 가슴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철 안에서 금세 다 읽었답니다. 아침에 현암사로 전화를 걸어 물어 보니 출판사로 투고해 들어오는 글 가운데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쓴 글은 없다"고 `민족'이나 `문화생활'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우리가 직업으로 가지며 일하는 식구 이야기를 다룬 글은 없더랍니다.

일요일이라 한갓졌으나 이대생 한 분이 책을 보러 찾아오기도 합니다. 일요일에 좀 외지다 싶고 이대에서 멀다 싶은 <문화서점>까지 찾아오다니.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책방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다'고요.

헌책방은 문화공간으로 어떤 구실을 할까

엊그제 <작은이야기>라는 잡지에서 일하는 아는 형님이 헌책방 이야기를 기사로 쓰면서 몇 가지 물어 보더군요. 헌책방이란 곳이 `문화공간'으로서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냐고요. 그리고 어떻게 헌책방 주인들이 애쓸 수 있는지도요.

사실 지난날 독재 때는 정부가 공권력을 들이밀며 조금이라도 사상이나 역사나 뭐 이런 얘기가 있으면 뺏고 검열하고 책방 문 닫게 했기에 이렇게만이라도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경희대 앞 <책나라> 아저씨 말씀-는 얘기도 있습니다.

실제로 헌책방이란 곳은 우리 책 문화유산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기에 정부가 도움을 주면 주어야지 탄압하거나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문화공간 헌책방은 오로지 책방임자와 책손님들만이 꾸려갑니다.

도서관은 열 해나 스무 해마다 한 번씩 낡은 자료나 열람하지 않는 책들을 정리, 처분합니다. 새책방은 절판된 책이나 안 팔리는 책은 반품합니다. 그리하여 이런 책들은 찾고 싶어도 못 찾기 일쑤죠. 그렇다면 이런 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서관에서 처분, 정리하고 새책방에서 반품시킨 책은 볼 값어치가 없을까요?

이럴 때 바로 헌책방이 아주 소중합니다. 이렇게 사라지려는 책을 모두 보듬어 안는 곳이 헌책방이니까요.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어렵게 찾는 사람들은 출판사들을 많이 나무랍니다. 책을 절판시키려면 남은 책(재고)이라도 헌책방에 풀어 헌책방에서라도 그나마 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러나 출판사는 제작비도 뽑지 못하고 세금도 내야 하고 출판사 이미지도 안 좋아진다며 내놓지 않고 그냥 다 잘라 없앱니다. 출판사 사장이나 직원들부터 책 문화를 보는 눈길이 너무도 얕으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이 새책값 다 내고 책을 사 읽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새책값 다 내고 사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사고 그렇지 못하고 책이라도 좀 읽고픈 이들을 위해서라면 헌책방에 반품되어 나온 낡은 책이나 절판된 책이나 구정가 책을 내놓으려는 생각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출판 문화를 북돋울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죠.

그리고 헌책방을 꾸리는 분들은 모두 당신들 가게를 지역 사람을 중심으로 문화공간으로 꾸며 차도 마시고 토론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자리를 갖추고 싶어 하지요. 더불어 좋은 책을 많이 갖추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높은 가게세와 비틀린 유통 현실 탓에 겪는 어려움, 헌책방이 해왔고 해가는 일을 제대로 느끼지도 바라보지도 못하는 우리 문화 현실들이 바로 헌책방이 문화공간으로 우리 곁에 자리잡기 어렵게 만드는 벽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안 보는 버릇은 바로 우리 나라, 정치권력이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입신출세가 최고 목적이 되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은 안 보고 처세술과 흥미와 재미만 주는 한번 보고 버리는 책만 소비하도록 이끕니다. 이런 현실은 그대로 둔 채 헌책방만 달라진다는 건 말이 될 수 없지요.

헌책방에 가자, 그럼 된다

오늘도 <문화서점>을 찾아와 이런 저런 책을 찾아가고 이야기도 나누며 가까이 이대부터 서울 시내 모두, 그리고 대한민국을 통틀어 책을 함께 나누고파 하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저부터 가까운 <문화>를 발품팔아 걸어서 찾아가며 좋은 책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며 살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가까이 있는 헌책방도 즐겨 찾아가고 <문화> 같은 책방도 즐겨 찾아가 보세요. 그러면서 살아가는 즐거움도, 우리 삶도 아름답게 가꿔가고요.

[아현동 문화서점] 02) 392-4641

덧붙이는 글 | * http://pen.nownuri.net 에서도 헌책방 이야기와 우리 말 이야기를 살포시 만날 수 있습니다 *

* <헌책사랑> 14호를 새로 엮었습니다. 종이로 찍은 녀석을 보내드리긴 제가 부담스럽고 아래한글에서 볼 수 있는 파일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연락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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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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