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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에 걸터 앉아 수업을 하고 있는 부럼 선생
 창틀에 걸터 앉아 수업을 하고 있는 부럼 선생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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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틀에 걸터앉아 있고 그 앞에 여자 아이들 셋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락시미 아쉬람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부럼 선생이다. 보통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야외 수업을 하곤 한다는데 아직 밖으로 나서기에는 날이 차다. 그는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힌두어로 열심히 설명하다가 뭔가 중요하다 여겨지는 대목에서는 칠판 앞으로 다가가 단어 몇 자를 적어놓고 다시 설명한다.

나는 세 평도 채 안 돼 보이는 작은 교실 문 밖에서 기웃거리고 있다가 그가 설명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는 틈을 이용해 슬그머니 교실 안으로 들어서 사진기를 내보였다.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린다. 인도에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긍정의 뜻이다. 그는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거나 말거나 빛살 좋은 창틀에 걸터앉아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

댕기머리 학동들과 서당 선생을 연상케 하는  고학년 수업시간
 댕기머리 학동들과 서당 선생을 연상케 하는 고학년 수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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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가 깔려 있는 또 다른 교실에서는 중년의 여선생과 고학년들의 수업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서당의 댕기머리 학동들이 연상될 정도로 엄숙했다. 그런데 6명의 학생이 3권의 책을 펼쳐놓고 있다.

선생은 책을 읽으며 뭔가를 조용조용하게 설명하고 학생들은 두 사람씩 짝지어 한 권의 책에 집중하고 있다. 물자를 아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책을 구입할 만한 자금이 없어서 그런 건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수업 분위기에 눌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섰다.

인자한 할머니 선생님과 자유로운 수업
 인자한 할머니 선생님과 자유로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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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른 교실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 학교에서 가장 나이 어린 아이들이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뭔가에 집중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 선생님의 안경 사이로 보이는 눈가의 주름은 지혜의 표상처럼 다가왔다. 할머니 선생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천방지축 아이들의 말을 일일이 받아주고 있었다. 자유로우면서도 열정이 묻어나오는 학교, 북인도 코사니의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첫 인상이 그랬다.

자유로우면서도 열정이 묻어나오는 학교, 락시미 아쉬람

락시미 아쉬람의 학생이 그린 숲으로 둘러 싸여 있는 학교 전경.
 락시미 아쉬람의 학생이 그린 숲으로 둘러 싸여 있는 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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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쉬미 아쉬람은 여성들만 다니는 숲 속의 학교다. 학교와 기숙사를 비롯해 모두 6동의 건물로 구성된 아쉬람 전체 면적은 11에이커(1만3천여 평). 학교 건물 전체 사진을 찍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주변이 온통 굴참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다. 모두 10개 학년, 60명으로 구성된 이곳 여학생들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선생님들 또한 대부분 여성이다. 부럼씨는 7명의 선생님들 중에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다.

락시미 아쉬람은 마하트마 간디의 영국인 제자 사라 벤(인도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이며 환경운동가)이 1946년 설립한, 소외된 농촌 여성들을 위한 학교다. 간디의 정신을 이어받은 농촌활동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 교육 프로그램을 배우는 농촌 여성운동가의 실습 양성소이기도 하다. 학생들 중에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13세 이상 소녀들과 미처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기혼여성들도 있다.

락시미 아쉬람 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 10개 학년에 60명의 여학생, 7명의 선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락시미 아쉬람 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 10개 학년에 60명의 여학생, 7명의 선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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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학생들은 북인도의 작은 마을 코사니뿐만 아니라 우타란찰주 곳곳에서 찾아온 학생들인데, 이들 중에는 부모가 없는 고아와 장애아들도 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덴마크에 기반을 둔 비영리 자선단체인 '베너' 그룹에서 후원하는 장학금을 받고 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학비뿐만 아니라 기숙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수업을 마친 부럼 선생이 내게 학교 주변을 안내했다. 그가 처음 나를 안내한 곳은 주방. 몇몇 여학생들이 화덕이 놓인 주방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식사 준비를 합니까?"
"예,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직접 식사 준비를 합니다."
"농사도 짓습니까?"
"물론이죠."

락시미 아쉬람 주방.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 직접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락시미 아쉬람 주방.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 직접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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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너른 강당에서 한다. 식단 역시 간디 아쉬람에서처럼 쌀밥과 짜파티, 달로 소박하게 차려진다. 부럼 선생은 학교 근처에 자리한 자신의 집으로 식사하러 갔다. 강당을 겸하고 있는 식당 안에 남자는 내가 유일하다.

식당에는 세 명의 외국인 여성이 보인다. 한 명은 독일 출신이고 다른 두 명은 덴마크에서 왔다고 한다. 21살인 독일 여성은 학생들과 함께 6개월째 공부하고 있고 덴마크에서 온 두 여성들은 한 달 정도 락시미 아쉬람의 교육을 참관하러 왔다고 한다.

인문학 공부에 농사짓고 소 키우는 공부까지

락시미 아쉬람 곳곳에 밭이 놓여져 있는데 모두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학생들은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여 먹고 있다.
 락시미 아쉬람 곳곳에 밭이 놓여져 있는데 모두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학생들은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여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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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치고 부럼 선생이 안내한 곳은 학교 주변에 자리한 밭이었다. 어림짐작으로 2백 평쯤 돼 보이는 밭 가운데에는 펌프가 설치돼 있었고, 수확을 앞둔 마늘과 양파를 비롯한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모두가 화학비료조차 쓰지 않는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한 선생이 두 가지 과목을 맡아 하기 일쑤인 한국의 대안학교에서처럼 과학과 농사를 담당하고 있다는 부럼 선생은 내게 큰 통을 열어 보여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유기농 작물을 강하게 만듭니다."

부럼 선생이 농약 대용으로 쓰고 있는 액비로 보이는 통을 열어 보여줬다.
 부럼 선생이 농약 대용으로 쓰고 있는 액비로 보이는 통을 열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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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어를 깊이 있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10여 년에 걸쳐 유기농을 해온 나로서는 그의 손짓 발짓을 통해 그것이 농작물에 뿌리는 액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밭 주변의 허름한 건물 옆에는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돼 있었고 건물 처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가둬 놓았다가 밭으로 흘려보내는 수로까지 설치돼 있었다. 학교 주변에 설치돼 있는 시설물들 하나하나가 생태적인 순환 농법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돼 있는 건물에서는 장작불을 피워 직접 빵을 굽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재봉실이 있었다. 재봉실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재봉틀을 돌려 옷을 만들고 있었다. 부럼 선생은 다시 나를 건물 뒤편에 자리한 외양간으로 안내했다.

"학생들이 소를 돌보고 있는데, 여기서 짠 우유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소들에서 나오는 똥은 거름과 연료로 쓰겠네요."
"물론입니다."

재봉질을 배우는 학생들. 수학 영어 과학에서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 수업을 비롯해 농사, 음식 만들기, 옷 만들기 등 졸업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수업을 받고 있다.
 재봉질을 배우는 학생들. 수학 영어 과학에서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 수업을 비롯해 농사, 음식 만들기, 옷 만들기 등 졸업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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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시미 아쉬람 학생들은 영어, 수학, 과학, 예술, 역사에서부터 명상과 요가,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 공부는 물론이고, 농사와 음식, 뜨개질, 옷 만들기 등의 기본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여기 졸업생들은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하나요?"
"알모라에는 숄, 트위드 옷, 카페트를 만들고 주변 마을에서 재배된 양모, 실크 등의 섬유를 제조하는 지역 공동체 기업이 있습니다. 거기서 주축이 되고 있는 여성들이 바로 락시미 아쉬람 졸업생들입니다."

알모라는 락시미 아쉬람이 자리한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다. 내가 코사니에 오기 전에 하룻밤을 묵은 중소도시 알모라에는 농촌 지역의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카페트 짜는 기술, 뜨개질부터 마케팅 교육까지 시켜주는 비정부기구(NGO)가 있다고 한다. 이 단체 또한 락시미 아쉬람 학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단체에서는 이 고장에서 나오는 모직을 비롯한 꿀이며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까지 운영하고 있다.

농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여성운동가 양성

북인도 코사니의 작은 마을에 우연히 만나게 된 락시미 아쉬람. 지역 공동체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이 작은 학교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충남 홍성군 홍동면, 아래 풀무학교)를 떠올렸다. 농사짓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풀무학교와 락시미 아쉬람 학교가 유사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구체적으로 배우고 작물을 생산하는 교육과정인 전공부를 갖춰 놓고 있는 풀무학교. 풀무학교의 '농촌수호'라는 애초의 폭넓은 설립 취지와 락시미 아쉬람의 농촌여성운동이라는 한정된 슬로건이 다를 뿐, 이들 두 학교가 지향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풀무학교가 자리한 홍동면은 생태적인 농촌 공동체 마을의 중요한 사례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홍동면 역시 코사니 마을처럼 작은 농촌 마을이다. 하지만 이 작은 농촌 마을은 협동조합, 유기농업, 귀농·귀촌운동을 주도해왔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경제와 녹색정치 운동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히말라야 쿠마온 알모라 지방의 지역 공동체 중심에 락시미 아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홍동면의 농촌 공동체 중심에 풀무학교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도에서 농촌 여성활동가들을 배출해온 민간단체 교육기관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곳이 70년 역사의 락시미 아쉬람이라면, 50년 역사의 풀무학교 또한 한국 대안교육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아쉬람이 공동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진리와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 풀무학교 역시 학우회, 교사회, 운영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 다섯 바퀴가 각자 제 역할을 맡아 협력하고 상생하는 유기적 공동체의 실현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무학교 졸업생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반해, 락시미 아쉬람의 졸업생들 대부분은 바로 자신, 농촌여성으로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농촌여성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1946년 락시미 아쉬람을 세운 영국인 여성 '사라 벤'

히말라야의 딸, '우타라칸 여성 사회운동의 어머니'로 불리웠던 락시미 아쉬람의 설립자 사라 벤(sarala behn1901-1982). 그녀는 마하트마 간디의 영국인 자제였다.
 히말라야의 딸, '우타라칸 여성 사회운동의 어머니'로 불리웠던 락시미 아쉬람의 설립자 사라 벤(sarala behn1901-1982). 그녀는 마하트마 간디의 영국인 자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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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시미 아쉬람 출신 여성들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농촌여성들에게 가장 소중한 생활 근거지인 숲을 지켜냈고, 나아가서는 북인도 가르왈과 쿠마온 지역의 히말라야의 숲을 지켜낸 칩코운동(나무 껴안기 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는 히말라야의 딸, '우타라칸 사회운동의 어머니'로 불린 락시미 아쉬람의 설립자 사라 벤(Sarala Behn, 1901~1982)이 있었다. 부럼 선생은 락시미 아쉬람의 숲에 자리한 사라 벤 추모비를 보여주며 그녀에 대해 설명했다.

"마하트마 간디를 도와 인도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라 벤은 훗날 인도의 환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간디를 도와 영국의 식민통치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녀는 두 번의 투옥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에 간디는 1941년 그녀를 한때 자신이 머무른 히말라야 쿠마온의 작은 마을인 바로 이곳 코사니로 보냈다. 그녀는 코사니에서 건강을 되찾아가며 반식민지운동과 함께 농촌여성들의 생활조건 개선에 힘썼고, 그러다가 1946년 락시미 아쉬람을 설립한 것이다.

나는 사라 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렸지만 한국어로 된 기사는 단 한 줄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락시미 아쉬람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소개된 기사를 지인을 통해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우타라칸드주의 풀뿌리 조직에 영감을 불어넣어 사라보다야운동(산스크리트어로 "모두의 깨달음"이란 뜻. 간디가 붙인 이름으로 나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일과 생각과 에너지를 나눠 행복한 공동체를 이뤄가는 운동)이 주 전체에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인도의 역사학자인 라마찬드라 구하는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녀의 활동주의와 그녀가 설립한 락시미 아쉬람은 새로운 세대의 사회운동가들이 등장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 중에는 혁혁한 활동가로 이름을 드높인 찬디 프라삿 밧, 라다 밧, 그리고 순더랄 바후구나가 있다. 1970년대 이들 활동가들은 칩코운동을 주도했고 다음 세대의 활동가들을 교육시켰다. 이들이 양성한 활동가들은 훗날 우타라칸드주의 환경운동을 주도해나갔다.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혼의 숲을 지키는 공부

그늘 아래에서 손뜨개질 수업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 젊은 여선생은 국어(힌두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늘 아래에서 손뜨개질 수업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 젊은 여선생은 국어(힌두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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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곳곳을 안내하던 부럼 선생은 시간에 맞춰 수업에 들어갔고, 나는 홀로 남아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롭게 앉아 손뜨개질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 둘이 앉아 뭔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풀어놓고 깔깔거리고 있었다.

젊은 여성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국어(인도어) 선생이라고 한다. 그녀의 손에는 뜨개질 실 뭉치가 아닌 받아쓰기 공책이 들려 있었다. 거기에 군데군데 수정한 흔적들이 보였다.

"어떤 분 것입니까?"
"저분인데요. 잘못 쓴 게 더 많아요."

여선생이 지적한 공책의 주인은 부끄러운지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더니,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의 무릎을 툭 치며 힌두어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선생을 비롯해 모두가 까르르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여선생에게 물었다.

"뭐라 말했습니까?"

눈 맑은 여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되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웃었어요?"
"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이분이 자신의 노트가 아니라 저분의 노트라고 말했어요."
"나도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웃었는데요."

락시미 아쉬람의 학생인 중년 여성들은 깔깔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도 뜨개질에서 내내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들이 뜨개질한 목도리는 알모라에 자리한 상점에서 판매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학교 공부는 생활 그 자체였다. 농촌여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학교, 이들의 손은 멈추지 않고 바삐 움직였지만 표정 어디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악착같은 구석이 없어 보였다.

가난하지만 자본의 노예들처럼 숲을 팔아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혼의 숲을 지키는 공부를 하고 있는 락시미 아쉬람의 학생들. 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그렇듯이 락시미 아쉬람은 가난한 농촌여성들에게 자존감을 키워주는 영혼의 학교였다. 이들의 웃음에서 마하트마 간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노예가 스스로 그 이상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그의 속박은 사라진다. 그는 자신을 해방시키며 다른 노예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 자유와 속박은 정신상태에 달려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코사니 락시미 아쉬람, #인도 농촌여성, #숲 지키기, #지역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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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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