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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검단산 가자

지난 10월 이후로 산에 오르면 마주하는 기적
▲ 검단산의 일출 지난 10월 이후로 산에 오르면 마주하는 기적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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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내가 혼잣말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검단산을 오르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고 있는데 문뜩 둘째 산들이가 끼어들었다.

"아빠, 나랑 같이 검단산 가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승낙의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징징대는 산들이기에 우선 다짜고짜 알겠다고 대답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떠는 녀석인데 설마 진짜 검단산을 가겠는가. 물론 예전부터 내가 산을 다녀오면 아빠 어디 다녀 오냐고,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하던 녀석이었지만, 그거야 창밖으로 보이는 검단산의 높이를 체감하지 못해서 하는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계속 못들은 척 해오던 터였다.

이제 쉬어가자 아빠
▲ 산들이식 'V' 이제 쉬어가자 아빠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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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왠걸, 오늘 아침 산들이의 표정은 결연했다. 가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덕분에 얼떨결에 승낙했지만, 아내와 나는 서로 눈을 찡긋했다. 아내와 나, 둘 다 산들이가 산에 오르자마자 곧 내려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아침나절 계속 이야기 했지만 열심히 놀다보면 또 잊겠거니.

따라서 별다른 부담감 없이 아침 뒤 청소를 하고 이제 좀 주말의 나른함을 즐기고자 등을 소파에 붙이려는데 산들이가 와서 다시 묻는다. 검단산 언제 가냐고. 어라? 이 녀석 진짜 산에 가려나 보내?

어쩔 수 없이 그제야 검단산을 가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등산 배낭과 카메라, 수건, 물통을 챙기고 옷을 입으려는데 다시 갈등이 일었다. 이거 보나마나 산을 오르다가 금방 내려올 텐데 굳이 등산복을 입어야 하나? 아내는 기껏해야 10분이라며 몇 시간 뒤에 있는 약속을 위해 구두까지 신고 나섰는데, 나도 편하게 입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에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장남이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산을 간다며 저리 기뻐하고 있는데 등산복과 등산화는 착용해야지. 비록 10분을 오르더라도 녀석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커서 아빠와 같이 산을 가고 싶어 하겠지. 그래, 가자 산들아. 네 덕분에 아빠가 새벽 아닌 낮에 엄마 눈치도 보지 않고 검단산 초입은 구경할 수 있겠구나.

아빠와의 오붓한 시간이 좋다

정상을 향해 걷는 녀석
▲ 씩씩한 산들이 정상을 향해 걷는 녀석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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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다
▲ 계곡 건너는 산들이 어떤 것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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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검단산. 역시나 오는 길에 막내는 잠이 들었고, 아내는 막내의 꿀잠을 위해 주차장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엄마 품이 부족한 까꿍이 역시도. 결국 예상했던 바와 같이 검단산을 오르게 된 이는 산들이와 나, 두 부자였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산행은 처음이었건만 산들이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5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거침이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을 건넜으며, 숱한 바위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빠의 보폭을 따라잡으려면 꽤나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말 없이 산을 올랐다.

더욱 대단한 건 산을 오르는 내내 산들이가 잠시도 쉬지 않고 쫑알댔다는 사실이다. 생전 처음 산을 오르면 숨이 찰 만도 한데, 녀석은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던져댔다. 바위는 왜 흙보다 단단하냐, 왜 밤에 산을 오르면 위험하냐, 왜 나무는 직선으로 쭉 뻗어서 자라느냐, 왜 얼음은 미끄러우냐, 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냐 등등 답이 없지는 않으나 결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다 녀석은 한마디를 덧붙였는데, 아빠랑 단 둘이 산에 올라 좋으니, 이제 매일 산에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첫째와 셋째 사이
▲ 둘째의 숙명 첫째와 셋째 사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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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둘째의 숙명이 첫째와 셋째 사이에서 치이는 것이다 보니 그만큼 산들이는 부모의 관심에 굶주렸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녀석을 산으로 이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라도 부모의 온전한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의 소망. 그것도 모르고 금방 산을 내려갈 거라 판단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계속해서 산을 오르겠다는 녀석의 고집을 마냥 꺾을 수만은 없었다. 분명히 아내는 산 밑에서 곧 내려오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이렇듯 간절한 산들이의 발걸음을 막는 건 아빠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오르다가 지쳐서 스스로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검단산 최연소 등산객 산들이

조금 힘들어질려구해 아빠
▲ 이제 땀 좀 닦아볼까? 조금 힘들어질려구해 아빠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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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길 1시간쯤 지났을까. 그쯤 되자 산들이도 약간은 지치는지 걸음걸이가 늦어졌으며, 등산로 주변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도 늘어났다. 덕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산에 오르는 아빠.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산들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녀석은 더 힘을 냈는데,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녀석에게 건네는 칭찬 때문이었다. 600m가 넘는 검단산을 5살짜리 사내아이가 꿋꿋이 걸어 오르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보는 사람 대부분이 산들이에게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었고, 귤 등의 간식을 건네주었다. 이러니 어찌 산들이가 내려갈 수 있겠는가. 아마도 오늘은 녀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날일 것이다.

비오는 날 북한산 백운대의 추억
▲ 1989년 여름 비오는 날 북한산 백운대의 추억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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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산들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백운대를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산을 올랐던 그때, 우리는 하필 백운대에서 비를 만나 미끄러지듯 산을 내려왔었는데, 아직도 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백운대 바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어린이가 장하다고 한 마디씩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등산을 좋아하게 된 건 그날 이후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날의 기억은 강렬했고, 이후 그 기억은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등산을 비롯해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니 산들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물론 훨씬 어린 탓에 나중에 정확한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무의식에라도 오늘은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되겠지.

꽃 피는 봄에 다시 오자, 산들아

사람들의 칭찬에 힘입어 산들이는 계속해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계속 오르면 억지로 정상까지 갈 수야 있을 테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얼어서 미끄러웠고 돌계단의 높이도 높아졌던 바, 내려갈 길이 태산이었다. 어떻게 녀석을 설득해서 내려가게 할 수 있을까?

꽁꽁 얼어 위험하다
▲ 검단산 정상 오르는 길 꽁꽁 얼어 위험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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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에 못 올라간다고?
▲ 시무룩한 산들이 이제 정상에 못 올라간다고?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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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할 핑계를 궁리하고 있는데 검단산 팔부능선쯤 약수터에 이르자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아이젠이었다. 내려오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아이젠을 차고 있지 않은가.

난 산들이에게 오늘은 우리가 아이젠이 없어서 올라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이젠을 차기 힘드니 얼음이 다 녹는 봄에 검단산을 다시 오자고 했다. 역시나 시무룩해지는 산들이. 그래, 고지가 바로 저기 보이는데 어디 발걸음을 돌리는 게 쉬운 일인가.

다행히 약수터를 지나 조금 지나면 커다란 헬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오뎅 파는 이가 있었고, 산들이는 그 천 원짜리 오뎅 하나에 인상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아빠의 감언이설.

"여기는 검단산의 두 번째 정상이야. 다음번에는 첫 번째 정상에 가자. 이만큼 온 것만 해도 산들이는 대단해. 모든 사람들이 산들이에게 박수를 치잖아. 아빠도 산들이가 자랑스러워."

그제야 산들이는 다시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고, 또 쫑알쫑알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주요 내용인즉 자기는 산이 좋으니 꼭 봄에 다시 오자는 것이었다.

내려오는 길. 문득 산들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첫째 까꿍이에게는 종종 하는 질문이었는데, 산들이에겐 마냥 어리다는 생각으로 한 번도 묻지 않은 질문이었다. 녀석은 나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탐험가'라고 대답했다. 자기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공룡을 찾기 위해 탐험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탐험가라. 그래, 나도 한때 탐험가를 꿈꾸던 적이 있었지. 그 꿈을 자식 입을 통해 듣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왜 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회한과 함께 녀석과 함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도 동시에 들었다. 탐험가? 까짓것 하면 되지 않는가. 많은 이들이 현실의 무게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데 지금 나의 현실이 내 앞에서 나의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뿌듯했다. 녀석이 나와 함께 산을 타고 꿈을 이야기 할 정도로 컸다는 생각에 기꺼웠다. 녀석이 나를 '아빠'라고 처음 불렀을 때마냥 산들이가 내 핏줄임을 확인한 것 같았다. 그래, 부모들이 이 맛에 자식을 키운다고 하는 거겠지.

우리 장남 산들이, 아빠가 고맙고 미안하구 그렇네
▲ 아빠와 함께 우리 장남 산들이, 아빠가 고맙고 미안하구 그렇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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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온 산들이는 엄마와 누나, 동생을 만나자마자 자신의 두 번째 꼭대기 등정을 자랑했고, 그 자랑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산에 언제 또 가냐는 칭얼거림이 함정이지만,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아빠도 언제든 너와 함께 산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거든.

산들아, 너의 첫 번째 등정을 축하한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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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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