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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남매
▲ 일곱살, 다섯살, 세살 우리는 삼남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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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함부로 쏜 화살'이라 하더니 어느새 2015년 1월도 가 버리고 2월이 됐다. '까꿍이'는 일곱 살, '산들이'는 다섯, '복댕이'는 세 살, 그리고 나와 남편은 어느새 결혼 6년 차에 마흔을 두 해 앞두고 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송구영신' 없이 기저귀를 갈며 '또 다시 일 년'을 맞았다. 아이들은 자라며, 우리 부부는 나이 들어가며.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라는 고민보다는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했던 지난 6년의 시간들. 삼시 세끼 세 녀석 밥해 먹이고, 아침 저녁으로 입히고 씻기는 것만으로도 바쁜 하루하루였다.

드디어 각방을 쓰게 되다

이젠 우리끼리 잘께요~
▲ 안녕히 주무세요 이젠 우리끼리 잘께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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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작년 가을, 태어나서 20개월이 되도록 긴 잠투정을 하는 복댕이가 힘에 부쳐 세 아이들을 놀이방에 따로 재우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스스로 잠드는 위의 둘과 달리 복댕이는 한 시간 넘게 젖을 빨고도 한참을 내 품에 안겨 보채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첫째, 둘째 모두 두 돌까지 젖을 먹여 재웠지만 두 돌까지 몇 달 남은 복댕이는 그때까지 버틸 힘이 없었다. 처음 며칠은 서럽게 울며 나를 찾았지만 곧 누나, 형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뒤엉켜 잠이 들었다.

두어 달 만에 자연스럽게 복댕이는 만 두 돌이 되기 전 젖을 뗐다. 형보다 젖도 몇 달 빨리 떼고 누나보다 5년이나 일찍 잠자리 독립을 했다. 복댕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큰 애를 낳은 이후로 '24시간 풀가동' 한 내 가슴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미안함을 모른 척 해버렸다.

6년 동안 바쁘고 피곤하기만 했던 엄마

따로 또 같이
▲ 저마다의 길을 간다 따로 또 같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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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유를 하고 아이들과 각방을 쓰게 되자 아이들과 나 사이를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때야 드는 생각 끝의 반성과 미안함.

'어쩌면 우리 애들은 지금까지 생기 넘치는 엄마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겠구나. 늘 애기 보느라 바쁘다, 글 쓴다 바쁘다, 밥한다 바쁘다, 제발 너희끼리 놀아라...'

그러나 셋을 낳아 기르느라 어쩔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변명한다. 이렇게 바쁘고 무심한 엄마 밑에서도 세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듯하다.

살림밑천 큰 딸 까꿍이

외할머니와 함께 성서쓰기
▲ 일곱살 까꿍이 외할머니와 함께 성서쓰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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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에 첫째 동생을 본 까꿍이는 그때부터 누나로, 다 큰 아이로 자라야 했다. 다섯 살까지 기관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있었지만, 엄마를 오롯이 차지해 본 적은 몇 달 되지 않다. 까꿍이는 내 육아를 도와주는 큰딸, 살림 밑천이었다. 기저귀 심부름부터 우는 동생들 달래고 놀아주는 일까지 해준 고마운 딸. 그런데도 난 셋 중 제일 먼저 말귀가 열리고 말문이 트인 까꿍이에게 내 육아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곤 했다.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 없이도 까꿍이는 네 살 무렵 혼자 글을 깨치더니 여섯 살엔 혼자 글자도 쓰기 시작했다. 엄마 대신 두 동생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글자도 가르쳐주는 일곱 살 누나가 됐다.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아는지 까꿍이는 자기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나에게 아기를 맡기고 자기는 회사에 출근할 거라 한다.

까꿍이는 일곱 살이 되더니 동네 산책을 나가 혼자 집을 찾아가는 일에도 도전 중이다. 동생 손을 꼭 잡고 엄마 없이 엘리베이터 타기도 성공하더니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생협에 찬거리 심부름에도 도전해 보겠다고 한다. '이제 난 일곱 살이거든!'을 외치며.

생각이 자라는 일곱 살 까꿍이

제발 좀 싸우지 마라!
▲ 지지고 볶는 삼남매 제발 좀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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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이 되어 행동반경이 넓어진 까꿍이는 생각도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까꿍이와 나눈 '마주 이야기' 몇 편을 옮겨본다.

"근데 엄마,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져?"
"어? 어? 어... 그건 말이야 설명하려면 좀 복잡하니 아빠랑 정리를 해서 말해줄게."
"아! 알았다. 사람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한테서 태어나는 거야. 맞지? 태어나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그치?"
"음... 그런 것 같은데."
"근데 제일 처음 사람은 누구한테서 태어났지?

옆에서 밥을 먹던 다섯 살 산들이가 끼어든다.

"아냐 누나.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는 거야."
"아니야! 우리 광재 태어나는 거 봤잖아."
"아냐. 하느님이 아가를 만들어서 우리집에 보내준 거야!"
"아냐. 맨 처음 사람만 하느님이 만들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한테서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난 거야."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복댕이는 누나와 형의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네! 네!"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아직 매운 음식을 못 먹지만, 누나따라 김치찌개를 먹어보곤 물을 마셔대던 두 동생들의 생각도 누나 따라 자라났는지 '밥상머리 삼남매 토론회'가 종종 펼쳐지고 있다.

자기 생각이 생기는 다섯 살 산들이

첫째, 셋째는 성격도 외모도 많이 닮았다. 반면 둘째 산들이는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둘과 많이 다르다. 똑소리 나는 누나에게 치이고, 막무가내 동생에게 당하며 살아남기 위해 늘 고군분투 중인 산들이는 타고난 예민한 기질에 통상적인 둘째의 성격까지 더해져서 가장 키우기 어려운 아이다.

그러나 나쁘게 말해 '예민'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섬세'한 아이인 산들이는 남자 아이치곤 외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적은 편이다. 네 살이 돼서야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걸 시작했으니 말이다. 늘 누나 따라 모든 걸 하던 산들이는 다섯 살이 되더니 자기 생각이 시작했다.

좋을 땐 엄청 사이 좋은
▲ 사이좋은 삼남매 좋을 땐 엄청 사이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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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누나의 깊이 만큼은 안 되지만 어떤 면에선 누나보다 예리한 산들이와 나눈 '마주 이야기'도 옮겨본다. 물려받은 옷이 우연히 사이즈만 다르고 같은 디자인이 두 벌 있어 둘째와 막내에게 입혔다. 같은 옷을 입은 형제를 보는 맛이 재밌었다. 그렇게 자주 입혀 겨울을 나고 있는데...

"엄마, 나랑 아가랑 쌍둥이야?"
"아니. 너희는 형제지. 형, 동생."
"그런데 왜 쌍둥이처럼 옷을 입혀?"
"싫어? 엄만 귀여운데."
"응. 싫어."
"왜?"
"쌍둥이처럼 같이 옷을 입으니까 아가가 내가 지 친군 줄 알고 자꾸 뺏고 때리고 괴롭히잖아."

난 형이야 형!
▲ 쌍둥이 옷은 싫어 난 형이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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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 그 후 되도록 같은 옷을 입히지 않으려 주의하고 있다. 누나와 역할 놀이를 할 때도 누나만 좋은 거 한다고 따지고, 엄마의 잔소리에는"엄마, 아빤 만날 하고 싶은 거 하잖아. 아빠는 맥주 먹고, 엄마는 드라마 보고!"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다른 두 아이보다 자아가 강해 자주 부딪히지만 그만큼 더 존중하며 잘 키워야 할 자식이다. 아이가 많으면 그 중 하나는 부모의 선생이라 하더니 아무래도 산들이가 내겐 그런 아이인가보다. 

말문이 트이기 직전의 복댕이, 애교의 왕

그럼 어때, 귀엽잖아!
▲ 막무가내 막내 그럼 어때, 귀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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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개월에 동생을 본 누나, 형과 달리 만 두 돌이 지나도록 집에서 가장 어린 아이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복댕이는 막내답게 애교도 많고, 울음도 많다. 누구에게든, 어떤 일이든 웃음과 눈물로 밀어 붙이며 고집 센 형마저도 이겨 먹으며 자라고 있다.

'막내를 바로 잡아야 집안이 편하다'는 말이 있던데 막내 '프리미엄'은 생각보다 강해 동네에서 엄한 엄마로 소문난 나마저도 복댕이에겐 많은 걸 접고 여느 막내들처럼 '물고 빨며' 기르고 있다. 남편도 막내에겐 유독 관대하고, 까꿍이마저도 산들이보다는 복댕이가 더 귀엽다며 많은 걸 양보해준다.

막내의 막무가내 성격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주위에서 만들어주는 게 더 크다 싶다. 첫째는 모든 게 처음이라 기대가 크고, 둘째는 중간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막내는 마지막이라 모든 게 애틋해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은 뭔가가 있다.

가장 많이 안아주고 입을 맞추는 자식이지만, 나와 남편의 육아일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사진도 잘 찍어주지 않는 막내. 새 옷도, 새 장난감도 거의 없는 그런 자식.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아기의 얼굴이겠지.

바삐 보낸 시간에서 함께 걸어가는 시간으로

이 길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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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몇인지도 모른 채, 부모님 연세는 더더욱 모른 채, 아이들 나이만 겨우 세며 정신없이 보냈던 날들이었다. 지난 몇 년 간의 시간 동안 새 생명을 셋이나 품에 안았지만, 받은 사랑을 갚지 못한 채 떠나 보낸 큰 마음도 많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오는 봄이면 친정 아빠의 2주기가 돌아오고, 내 꿈을 키워주셨던 선생님의 49재는 봄이 오기도 전에 있다.

막내가 곧 말문이 트이고, 기저귀도 뗄 듯하다. 그러면 엄마가 아닌 '나'로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겠지. 그동안 못한 '송구 영신'도 하고, 애 키우느라 놓친 안부 인사도 챙겨가며, 흘려보냈던 아이들의 마음에도 귀 기울이며 차근차근 시간 속으로 걸어가야겠다. 어른들 말씀처럼 키울 땐 힘들어 몰랐던 참 좋은 때인 지금을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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