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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20분. 전자물류센터 정문 앞이다. 가전설치기사들은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한다. 늦어도 오전 8시까지는 출근하며 송장리스트(배송설치할 제품리스트)를 받고 상차(제품을 차에 싣는것)를 하고 오전 9시전에는 물류센터를 떠난다.
 오전 7시 20분. 전자물류센터 정문 앞이다. 가전설치기사들은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한다. 늦어도 오전 8시까지는 출근하며 송장리스트(배송설치할 제품리스트)를 받고 상차(제품을 차에 싣는것)를 하고 오전 9시전에는 물류센터를 떠난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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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맘때쯤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 두어 달 쉬고 있을 때였다.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집 근처에서 일이 끝났다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돼지국밥집에서 나는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친구는 운전도 해야 하고 내일도 오전 7시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한다고 해서 술은 권하지 못했다.

"○○전자면 대기업인데 잘 됐네. 니도 이제 자리잡았네. 축하한다"라며 지친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전자에게 일한다고 엄마가 동네에 자랑도 하고 너무 좋아하다"며 돈도 모으고 올해는 결혼도 할 거라며 이를 악물고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건네준 명함에는 '○○전자 CS매니저'라는 문구와 '저는 항상 친절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며칠 후 친구로부터 부기사(혹은 보조기사)가 그만두었는데 하루만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그날 이후 1년 가까이 친구와 함께 ○○전자 물류배송설치기사 일을 하였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제품을 배송하고 사용법을 설명하고 간단한 작동시범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주기사가 주로 고객응대를 하고 부기사는 주기사의 일을 보조하며 지시를 따라 일하면 되는 것이다.

2.5톤 탑차에 가전제품을 가득 싣고 단순하게 배달하는 육체노동일 거라는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번쯤 해피콜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객님 ○○제품은 잘 받으셨습니까. 기사분의 설치에 대해 매우만족, 만족, 보통, 불만…."

해피콜 결과에 따라 주기사의 다음 달 등급, 배송물량이 결정된다. 주기사의 90%는 지입차주로 배송물량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짜장면 미끼로 이것저것 부탁... 그뿐만이 아니었다

벽걸이 TV를 설치했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49평수인 아파트 거실에 벽걸이 TV를 설치하였다. 벽에 구멍을 뚫고 거치대를 설치하고 TV를 걸었다.

"기사님들 식사할 때가 됐는데, 짜장면 어떠세요"라며 고객이 말하였다. "사모님 괜찮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라며 주기사는 대답하며 일을 하였다.

"애들 방을 바꾸면서 액자걸 게 몇 개 있는데 액자 걸 나사 몇 개만 박아주세요"라며 고객이 부탁하였다. 나는 아파트 콘트리트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박고 액자를 걸어주었다.

"짜장면을 시켜놓았는데 드시고 가세요. 일은 천천히 하세요"라며 본격적으로 이것저것을 시켰다. 소파도 옮기게 하고, 김치냉장고와 양문형 냉장고의 위치도 바꾸게 하고 짜짱면을 미끼로 여러 가지 요구사항이 많았다.

거절할 기회를 놓친 친구와 나는 벽걸이 TV설치와는 무관한 사모님의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짜증나는 일이지만 중간에 거절하면 이 고객은 클레임(불만)을 걸 사람이라는 것을 친구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주기사는 "제품에 대해 궁금하시거나 사용 중에 불편한 점 있으시면 언제라도 전화부탁드립니다"라고 명함을 건네며 허리를 숙이고 그 집에서 나왔다.

며칠 후 클레임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왔다. '그날 설치기사 두 명이 다녀간 후 액자걸려고 꺼내놓았던 망치가 없어졌다. 벽걸이 TV를 설치하고 공구를 챙길때 우리집 망치를 잘못 가져갔다. 기사분에게 이야기 해서 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며칠 후 클레임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왔다. '그날 설치기사 두 명이 다녀간 후 액자걸려고 꺼내놓았던 망치가 없어졌다. 벽걸이 TV를 설치하고 공구를 챙길때 우리집 망치를 잘못 가져갔다. 기사분에게 이야기 해서 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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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클레임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왔다. '그날 설치기사 두 명이 다녀간 후 액자걸려고 꺼내놓았던 망치가 없어졌다. 벽걸이 TV를 설치하고 공구를 챙길 때 우리집 망치를 잘못 가져갔다. 기사분에게 이야기 해서 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사무실의 연락을 받은 주기사는 고객과 통화하였다. '벽걸이 TV를 설치하는 데 사모님집 망치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거실에서 작업을 했고 사모님집 망치를 본 적도 없으니까 한 번 잘 찾아보시고 다시 연락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였다.

그날 저녁 훨씬 심각한 전화가 왔다. '오늘까지 훔쳐간 망치를 돌려주지 않으면 인터넷에도 올리고 본사에도 항의전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졸지에 고객을 망치를 훔친 사람이 되었다.

나는 퇴근을 해서 쉬고 있었다. 오후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나는 주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고객이 훔친 망치를 돌려달라고 난리다. 철물점에서 망치 사가지고 그 집에 가져다 줘라. 부탁한다."

고문에 허위자백을 하면 저런 힘없고 체념한 목소리가 나올까라는 생각를 하며 망치를 철물점에서 구입해서 그 집에 갔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모님"이라며 망치를 건네고 인생 선배로서 충고한다는 말씀을 잠시 듣고 망치실종 사건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

정기적으로 '고객응대'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주로 아침시간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고객응대'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주로 아침시간이 있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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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음료수를 권해주었던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시원하게 들이켰던 일도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심하게 화를 냈던 고객, 냉장고의 설치 위치가 계속 바뀌었던 고객 등 주기사는 고객의 한마디 한마디, 고객의 감정을 감지하기 위해서 고객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항상 신경을 쓰면서 일을 하였다.

부기사는 고객의 눈치보다는 주기사의 눈치를 보면서 일을 한다. 고객에게 받은 짜증을 주기사는 종종 부기사에게 풀곤한다. '저는 항상 친절합니다'라는 명함의 문구는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나 또한 냉장고를 메고 세탁기를 들고 하는 이동하는(기사들은 '까대기 친다'라고 표현함)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보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일 만나는 이상한 고객에게 느끼는 감정노동이 힘들어 한동안 아내에게 신경질적인 반응과 짜증을 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고객에게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아내에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것을 느꼈을때 무척이나 괴로웠다. 감정노동의 악순환이 가득한 사회에 있는 것만 같아 슬펐다. 그날 이후 이상한 고객을 만난 날은 아내에게 혹시나 풀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에 응모합니다.



태그:#전자물류, #배송설치기사, #CS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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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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