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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에는 슬픈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동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이
잡지사에 다니는
영화를 좋아하는 누이
식모살이를 하는 조카
그리고 나

피아노는 밥을 먹을 때도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울린다
피아노의 주인은 나를 보고
시를 쓰니 음악도 잘 알 게 아니냐고
한 곡 쳐보라고 한다
나의 새끼는 피아노 앞에서는 노예
둘째 새끼는 왕자다

삭막한 집의 삭막한 방에 놓인 피아노
그 방은 바로 어제 내가 혁명을 기념한 방
오늘은 기름진 피아노가
덩덩 덩덩덩 울리면서
나의 고갈한 비참을 달랜다

벙어리 벙어리 벙어리
식모도 벙어리 나도 벙어리
모든 게 중단이다 소리도 사념(思念)도 죽어라
중단이다 명령이다
부정기적인 중단
부정기적인 위협
―이러면 하루종일
밤의 꿈속에서도
당당한 피아노가 울리게 마련이다
그녀가 새벽부터 부정기적으로
타온 순서대로
또 그 비참대로
값비싼 피아노가 값비싸게 울린다
돈이 울린다 돈이 울린다
(1963. 3. 1)

수영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준'과 '경'. 큰아들 준은 수영의 할아버지를 닮았다. 허우대가 멀쩡한 준은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수영의 서강 집에는 동네 떡집 막내딸인 경옥이가 자주 놀러왔다. 그때마다 준은 보던 책을 내던지며 경옥와 어울려 놀았다. 어린 둘째 경이도 경옥을 누나처럼 따랐다. 경옥은 경을 등에 업어주기도 했다.

준은 아무 때나 대문간을 빠져 나갔다. 아랫마을로 가서 또래들과 소리를 지를 때도 많았다. 준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놀기만 하는 큰아들은 좋이 보이지 않았다. 수영도 그랬지만 아내 현경이 더 크게 걱정했다. 준이는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였다. 대학 입시처럼 중학 입시를 치르고 들어가는 때였다.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경은 여동생을 떠올렸다.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놀고 있었다. 수영 부부는 그녀를 과외교사로 불러왔다.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집으로 피아노를 가지고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수영은 별 뜻 없이 처제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피아노가 문제가 되었다. 수영이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건넌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나왔다. 치명적인 소음이었다. 소음이나 무의미한 소리에 대한 수영의 강박 증세는 원래부터 심각한 것이었다. 처제의 피아노 소리는 신경증을 일게 했다. 그렇다고 소리를 함부로 지를 수도 없었다. 산문 <물부리>의 일절을 보자.

처제라는 동물은 여편네보다도 더 다루기가 힘든다. 여편네는 사불여의(事不如意)하면 마구 치고 차고 할 수도 있지만 처제는 못 그런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처제의 말에는 여편네의 말보다도 더 쩔쩔맨다. 아무리 중요한 원고를 쓸 때에도 처제의 피아노 소리는 울려오고 나는 그 피아노 소리가 끝나기까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어야 한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52쪽)

그나마 준의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수영 부부는 욕심을 냈다. 준을 서강국민학교에서 덕수국민학교로 전학 보내기로 결정했다. '덕수'는 당시 첫손 꼽히는 국민학교였다. 그쯤에 보내야 당시 최고 명문 중학교인 경기중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가 신통찮았다.

이 큰새끼가 전학을 해서 들어간 시내의 일류 학교―아, 일류 학교란 얘기를 하지 마라! 학적보 이동-동회 서기와의 사바사바-학교장의 거만-담임선생의 영국지 양복-2,000원-2,000원-6학년 전학 성공-시험성적 30점-산수 52점-낙망-신경질-구타! 또 구타!(위의 책, 53쪽)

자식을 전학시키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공무원에게는 아쉬운 소리('사바사바')를 해야 했고, 거만한 교장이나 담임에게는 뇌물이나 촌지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온갖 속물적인 짓을 다 한 끝에 들어간 학교에서 자식은 형편 없는 점수를 받아왔다. 거기에다 천하의 '자유주의자' 수영이 '구타! 또 구타!'라니.

결국 처제는 두 손을 들었다. 능력 포기 선언을 하며 준의 과외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준의 과외는 수영이 떠맡게 되었다. 현경은 과외 월급이 5000원이라니 스스로 5000원 벌이를 하는 폭이라며 좋아했다.

이 시 <피아노>는 그런 풍경 속에서 태어났다. 그 앞에 있는 '슬픈 사람들'(1연 1행)을 위한 것일까. '피아노'는 집안에서 주인 행세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새벽에도 / 한밤중에도 울린다"(2연 1, 2행). 한결같이 들려오는 그 소리를 아이들은 좋아한다. 그 앞에서 아이들은 '노예'(2연 6행)가 되고 '왕자'(2연 7행)가 된다.

하지만 시인은 슬프다. '피아노'는 '삭막한 집의 삭막한 방'(3연 1행)에 놓여 있다. 그곳은 '바로 어제 내가 혁명을 기념한 방'(3연 2행)이다. '덩덩 덩덩덩 울리'(3연 4행)는 그곳의 '피아노'는 '기름'(3연 3행)졌다. '나의 고갈한 비참을 달'(3연 5행)래는 듯하지만, 실은 모욕을 안겨주는 것이다.

나는 '벙어리'(4연 1행)가 된다. '식모도 벙어리'(4연 2행)가 된다. '모든 게 중단'(4연 3행)되고 '소리도 사념도 죽'(4연 3행)는다. '당당한 피아노'(4연 9행)는 '밤의 꿈속에서도'(4연 8행) 울린다. '부정기적'(4연 5행)으로 끊임없이 들려온다. '피아노'가 울릴수록 나는 '벙어리'가 되어 깊은 슬픔에 빠진다.

'덩덩 덩덩덩' 울리는 '피아노'는 '나'를 죽이는 소리다. '나'를 '벙어리'로 만들고 '나'를 죽이고야 마는 그것은 '돈이 울'(4연 14행)리는 소리다. 요컨대 '피아노'는 '돈'이다. '피아노 소리 = 돈이 울리는 소리 = 나를 죽이는 소리'의 등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피아노>는 돈 때문에 느끼는 생의 비참을 읊은 작품이다. 거기에는 세속적인 욕심이 일상을 지배하는 속류의 삶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자식의 일류 학교 진학에 기뻐하고, 낙제점에 가까운 시험 성적에 주먹을 날리는 속물 시인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즈음 수영은 <물부리>(1963년 4월 2일 작)라는 제목의 산문을 썼다. 그 글에서 수영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요즈음 계산은 일체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원고료 계산은 물론 정신적인 계산까지도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위의 책, 53쪽)

수영은 돈의 노예가 되어 가는 제 삶의 주변을 "돈이 울린다 돈이 울린다"(4연 14행)며 탄식했다. '원고료 계산'은 물론 '정신적인 계산'까지 일체의 계산을 하지 않는 몸부림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벙어리'가 되고 생각이 죽어가는 자신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혁명을 기념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피아노>, #김수영, #<물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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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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