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은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고달프다. 2000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중국 연극의 대부 가오싱젠의 <저승>이 2011년에 공연된 데 이어 2012년에도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이 연극에선 한국 전통연희와 무엇보다도 중국 경극의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다. 가오싱젠은 <관을 부수다>와 <저승까지 찾아가다>를 바탕으로 극을 썼다고 한다. 박정석 연출은 "가오싱젠의 대본에 중국 경극의 분위기를 의도하는 지문이 구체적으로 많았으며 그것을 살려 연출하였다"고 설명했다.
점묘적인 타악기 위주의 음악은 연극 중간중간 경극과 전통연희 반주, 그리고 효과음 등 다양하고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연극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인 이승에선 장주가 부인을 유혹하는 장면이, 뒷 부분인 저승에서 유린당하는 부인의 모습이 나온다. 무대는 반원형 모양인데, 여정길을 나무로 만들어 장주의 상여를 진 지게꾼들이 이동하는 통로로 사용됐다.
주인공 장주는 산중에서 공부를 하다 부인의 정절을 의심하게 되고, 공부를 마치기도 전에 속세로 내려와 자신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퍼뜨린다. 이후 변장을 한 뒤 부인을 유혹한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던 부인은 이 남자(변장을 한 남편)가 자신을 살리려면 죽은 남편의 골을 꺼내먹어야 낫는다고 하자 이 남자까지 잃으면 안 되겠다며 유혹에 넘어간다. 이후 부인은 남편의 관을 도끼로 부수려다 관에서 살아난 남편을 보고는 결국 자결한다.
부인은 저승으로 들어가는 강을 지나 저승에 가서도 저승사자는 물론 갖가지 일로 고통을 받는다. 저승에는 처녀로 죽은 귀신, 떡 먹다 죽은 귀신 등 갖가지 사연이 많다.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 자살을 한 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특히 무대 가득 피바다와 원혼들이 뒤섞여 저승의 고통을 표현한 장면이 압권이다. 키 큰 저승귀신들의 장면과 변검을 하여 얼굴 모습을 시시때때로 바꾸는 염라대왕의 모습도 재미있다.
마지막 즈음에 장주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라며 호접몽을 읊조린다. 그 후 등장하는 현대 남녀도 "이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라며 노래한다. 장주 자신도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라며 자신의 시점에서 벗어나 이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양 3인칭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배우 자신이 역할과 배우 자신, 그리고 그 역할을 관망하는 '3중 층위'로 겹겹이 쌓이면서 극을 구성하도록 한 가오싱젠의 의도라고 한다.
장주역을 맡은 박상종의 기품있으면서도 부인을 놀리는 야비한 캐릭터 연기도 일품이다. 하지만, 부인을 결국 죽게 만들면서도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라며 관망해 이 캐릭터에 어떠한 지탄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여자로서 다소 찝찝하기도 하다. 부인 역의 천정하는 이승과 저승에서 유린당하는 고달픈 여성의 모습을 정말 갖가지 표정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내어 공감이 갔다.
한편 이번 공연은 연극집단 '반'과 극단 '바람풀' 두 단체가 합작으로 마련한 무대이다. 이들은 "대학로의 작은 공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의미깊은 대형공연은 하기 힘든 환경에서 좀 더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자 두 단체가 합작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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