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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천주교 월요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해온 시간도 어느새 1년이 지나고 있다. 엊그제 7일에는 제48차 기도회를 가졌다.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는 언제 막을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1년 남짓 남은 이명박 정권이 끝나는 날이 고비일 수도 있지만, 그 이후에도 기도회는 계속될 확률이 크다.

이명박 정권은 경찰을 앞세워 경찰국가의 풍모를 적나라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국회 비준 절차가 진행 중인 이 흉흉한 시기에 대한민국 경찰은 이명박 정권의 충견 노릇에만 올인하는 듯이 보인다.

경찰의 미사장소 점거 10월 31일 저녁, 경찰병력은 여의도 '거리미사' 장소를 점거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 경찰의 미사장소 점거 10월 31일 저녁, 경찰병력은 여의도 '거리미사' 장소를 점거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 전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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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 10월 31일 저녁과 어제 11월 7일 저녁에는 천주교 미사마저 방해했다. 우선 10월 31일 저녁의 풍경을 보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에서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한미FTA 반대 집회가 있었다. 그 집회 때문에 경찰 대규모 병력이 그 일대에 투입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경찰은 천주교의 미사 장소마저 점거했다. 제47차 기도회를 위해 제대가 차려지고 있는데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대 앞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고, 신부님 한 분이 "경찰과 함께 미사를 지냅시다"라는 말을 했다. 수녀님들과 신자들은 경찰들 사이사이에 파고들었다. 경찰들의 오와 열 사이에 신자들이 끼어 앉으니 진풍경이 만들어졌고, 세계에 유례가 없는 풍경 속에서 미사가 시작될 상황이었다.

그때 경찰 지휘자의 지시가 떨어졌는지 경찰 병력은 미사 장소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음향기기 중요 부품을 수거해 가버렸다. 그래서 음향기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한 분 신부님이 타고 오신 승합차의 배터리를 이용하여 불안전한 음향으로 어렵게 겨우 미사를 지낼 수 있었다.

제48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사제들의 일주일 단식기도가 시작된 11월 7일 저녁의 제48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에는 무려 40분의 사제들이 참여했다.
▲ 제48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사제들의 일주일 단식기도가 시작된 11월 7일 저녁의 제48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에는 무려 40분의 사제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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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는 안 돼? 거리미사까지 방해한 경찰

11월 7일 저녁에도 미사 장소의 인접 지점에서 한미FTA 반대 집회가 있었다. 경찰의 대규모 병력이 미사 장소 일대에 투입되어 있었다. 미사가 처음에는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신부님들은 근래 들어 가장 많은 40분이 공동 집전을 했고, 신자들도 평소보다 많은 200명 이상이 참례했다. 미사 지향은 "살려내라 사대강(死大江)! 중단하라 제주해군기지! 그만둬라 한미FTA!"였다. 미사 열기는 처음부터 평소보다 훨씬 뜨거웠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이신 서울교구 전종훈 신부님이 주례를 했고, 강론은 서울교구 이강서 신부님이 맡았다. 전 신부님은 미사를 시작하며 "오늘부터 사제들은 회향과 다짐과 탄원의 뜻을 안고 일주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미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단식기도를 할 천막을 설치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영성체 후 마침기도 전에 단식기도 천막을 설치하는 것은 오늘 전례의 한 부분이었다.  천막을 설치한 다음 '축성'을 하고 미사를 마치려는 것이었다.

새로 등장한 손피켓들 11월 7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새로운 피켓들이 등장했다. 4대강을 살려내고, 제주 해군기지건설을 중단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라는 요구였다.
▲ 새로 등장한 손피켓들 11월 7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새로운 피켓들이 등장했다. 4대강을 살려내고, 제주 해군기지건설을 중단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라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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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근처 차량에 실려 있는 천막을 내리는 순간 경찰이 달려들었다. 일부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달려갔고,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디서 그런 힘이 발동하고 작용했는지 신부님들은 천막을 빼앗기지 않았다. 사수에 성공한 천막을 수녀님들이 깔고 앉아서 경찰은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하자 다시 경찰이 달려들었다. 모든 사제와 수녀들과 신자들이 경찰들을 막기 시작했다. 천막을 굳게 잡거나 에워싸고 신부님 수녀님들과 신자들 거의 모두가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들 또래의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용을 쓰면서 온몸으로 경찰을 막고 밀쳐내었다. 슬픔 때문에 악이 오르기도 했다. 어린 경찰들이 매국 정권을 위해 생고생 한다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복받치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 계속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제단 총무 김인국(청주교구) 신부님은 경찰을 향해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경찰이지 일시적 매국 정권의 경찰이 아닙니다. 이런 일에 나서지 말고 도둑이나 잡으십시오!"라고 외쳤고, 경찰 현장책임자를 불러댔다.

경찰이 일단 물러난 상황 속에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님과 경찰 현장책임자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전 신부님은 집회 시위가 목적이 아니라 사제들의 단식기도가 천막 설치의 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경찰은 천막설치와 사제들의 단식기도를 방해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좀 더 멀찍이 물러났다.

경찰의 기습공격 미사를 마치기 전, 사제들이 일주일 동안 단식기도를 할 천막을 설치하려 할 때 경찰 병력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 경찰의 기습공격 미사를 마치기 전, 사제들이 일주일 동안 단식기도를 할 천막을 설치하려 할 때 경찰 병력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 전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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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황이 수습된 후에야 미사 주례자인 전종훈 신부님은 마침기도와 강복기도, 파견기도를 했고, 모두 함께 파견노래로 <터>를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천막 설치 작업이 진행되었다.

천막 설치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나는 이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또 불시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었고, 사제들의 일주일 동안의 단식기도가 시작된 상황에서 일찍 자리를 뜨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 같았다.

사제들만의 단식기도에 평신도가 끼는 것은 어색하고 불필요한 일이지만, 평신도가 참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 몸으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솟구치기도 했다. 나는 '성인병 백화점' 신세이기에 단식은 어림없는 일이다. 한 끼만 굶어도 저혈당 증세를 느끼는 신체이니 만약 일주일 동안 단식을 한다면 중도에 병원에 실려 갈 터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식기도에 들어간 사제들...저도 매일 함께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또 한 가슴 비애를 끌어안고 9시 50분쯤 무겁게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충남 태안으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매주 월요일 서울 여의도를 다녔던 그 끈질긴 투혼으로, 이번 일주일 동안은 매일 여의도를 가자는 결심이었다.

사제들은 일주일 동안 천막 안에서 단식기도를 하는데, 지난 일 년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을 하느님 안에서 사제들과 함께해왔던 처지에 일주일 내내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나는 매주 월요일 저녁의 미사 때마다, 미사 전에 바치는 묵주기도 5단의 주송자가 아닌가. 묵주기도 주송은 내가 전담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단식 기간에는 매일 여의도에 가서 미사 전 묵주기도 주송을 하고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단식을 하시는 사제들께 힘을 보태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경찰과 한 격렬한 몸싸움 때문에 팔다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감내하면서….

경찰병력 퇴각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신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경찰 병력은 천막 탈취를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도 경찰 병력에 맞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해야 했다. 아들 같은 앳된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 경찰병력 퇴각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신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경찰 병력은 천막 탈취를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도 경찰 병력에 맞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해야 했다. 아들 같은 앳된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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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8일) 오후에도 서울 여의도를 갔다. 미사 전에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5단을 주송하고, 단식기도 중인 열두 분의 사제와 함께 미사를 지냈다. 주례 사제의 강론을 통해 전날 경찰의 전격적인 기습으로 빚어진 심한 몸싸움은 경찰 수뇌부의 지침이 현장 책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에서도 경찰 내부의 어떤 혼선과 무능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9일) 오후에도 나는 서울을 갈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매일 오후에 서울을 왕래할 것이다. 그 생활이 고달프긴 하겠지만, 또 현실적인 이런저런 손실들이 발생하긴 하겠지만, 일주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는 사제들 육신의 핍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들과 행동들, 현실적인 고통과 손해들을 감수하며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오늘의 역동적인 내 삶은, 내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信者)'이기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고 따르는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미력하나마 오늘을 힘껏 살아갈 뿐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 '월요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단식기도#이명박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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