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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재회의 기쁨

.. 서울에서는 하얼빈 시절의 옛 친구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는데, 그녀들로부터 한국전쟁의 비참했던 전쟁 체험담을 들었다 ..  <이응노ㆍ박인경ㆍ도미야마/이원혜 옮김-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 7쪽

"하얼빈 시절(時節)의 옛 친구(親舊)들"은 "하얼빈에서 함께 공부하던 옛 동무들"이나 "하얼빈에서 함께 지내던 옛 동무들"로 다듬어 줍니다. '그녀들로부터'는 '그 동무들한테'로 고쳐쓰고, '비참(悲慘)했던'은 '끔찍했던'으로 손보며, '전쟁 체험담(體驗談)'은 '전쟁을 겪은 이야기'로 손질합니다. 앞말과 이어 "한국전쟁 때 끔찍했던 이야기를 들었다"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 재회(再會)
 │  (1) 다시 만남. 또는 두 번째로 만남
 │   - 재회의 기쁨 / 그들은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  (2) 두 번째의 모임
 │
 ├ 재회의 기쁨을
 │→ 다시 만나는 기쁨을
 │→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 한 번 더 만나는 기쁨을
 └ …

헤어지거나 멀리 떠나간 사람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처음 만나는 기쁨 또한 무척 클 텐데, 다시 만난 기쁨이란 새삼스럽거나 남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죽기 앞서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떠올립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지라도 얼굴이나마 보면 마음이 놓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한 번 더 만나는 일조차 얼마나 큰 고마움이자 반가움일까요. 말 한 마디를 할 때에도 이런 기쁨, 벅참, 고마움, 반가움을 살포시 담는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얼마나 알맞고 어울리는 말을 쓰느냐는, 우리 뜻과 생각을 얼마나 살가이 담을 수 있느냐 하고도 이어지지 싶어요.

 ┌ 재회를 기약하며
 │
 │→ 다시 만날 날을 손꼽으며
 │→ 다시 만날 그날을 헤아리며
 │→ 다시 만나기를 다짐하며
 │→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 …

'재회'는 "다시 만남"을 한자로 덮어씌운 낱말입니다. 말뜻만 살피면 이런 낱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만난다"나 "또 만난다"나 "한 번 더 만난다"라 안 하고 굳이 이런 한자말을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욱이 '재회'라는 한자말은 '-의' 토씨와 잘 들러붙습니다. "재회하는 기쁨"처럼 쓰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회의 기쁨"이라고 하지요. 우리 말은 "다시 만난 기쁨"이요 "또 만나는 기쁨"인데 말입니다.

바르게 말하거나 곱게 글쓰는 흐름하고는 동떨어진 모습입니다. 살가이 말하거나 애틋하게 글쓰는 삶하고는 등돌리는 매무새입니다. 따스하게 말하거나 넉넉하게 글쓰는 마음밭하고는 멀리하는 셈입니다.

'다시만남' 같은 낱말 하나 새로 빚어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새로고침'이라는 낱말을 쓰듯 '새로만남'이라는 낱말을 새롭게 일구어 쓰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다만, 만나니 만난다 하고 헤어지니 헤어진다고 말하거나 글쓰는 말결을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또 만났네" 하고 외치는 노래마냥 '또'나 '다시'나 '거듭' 같은 말마디를 잊지 않으면 반갑겠습니다.

 ┌ 다시 만남
 ├ 새로 만남
 ├ 거듭 만남
 └ …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기 때문에, 맑고 밝게 말하지 못한다면 생각과 삶부터 맑고 밝지 않은 탓이라 할 만합니다. 싱그러운 삶이요 싱그러운 넋이라면 싱그러운 말이지 않겠습니까. 너그러운 삶이요 너그러운 넋이라면 너그러운 말일 테지요. 홀가분한 삶이요 홀가분한 넋이라면 홀가분한 말이 될 테고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제 이야기부터입니다. 저부터 저 스스로 깊고 넓고 고 밝으며 고운 삶을 꾸리고 싶습니다. 따스하고 넉넉하며 사랑스러운 삶을 아끼고 싶습니다. 좋은 삶을 일구고 기쁜 삶을 붙안으며 호젓한 삶을 보듬고 싶습니다. 내세우는 삶이 아닌 스스로 웃음이 넘치는 삶을 껴안고 싶습니다. 저부터 제 말을 제 넋과 삶에 따라 조용히 나누고 싶습니다.

ㄴ. 재회의 기쁨

.. 기분으로야 우리는 오늘이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쪽이 좋을까요? 재회의 기쁨일까요? 이별의 슬픔일까요? ..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69쪽

'기분(氣分)'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느낌'이나 '마음'이나 '생각'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이별(離別)'은 '헤어짐'이나 '떠남'이나 '갈라섬'으로 손질합니다.

 ┌ 재회의 기쁨일까요
 │
 │→ 다시 만난 기쁨일까요
 │→ 또 만난 기쁨일까요
 │→ 만나는 기쁨일까요
 └ …

이 보기글에서 한자말 '재회'와 '이별'이 아닌 우리 말 '만남'과 '헤어짐'을 넣었다 하더라도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처럼 적바림하는 분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낱말 하나는 알맞게 가다듬으나 말투 하나까지 알뜰살뜰 여미지 못하는 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아예 관용구처럼 굳어져 있다 할 만한 "만남의 기쁨"이거나 "헤어짐의 슬픔"입니다. "만나는 기쁨"이거나 "헤어지는 슬픔"이라고 적어야 올바르지만, 올바른 말투와 글투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은 뜻밖에 퍽 드뭅니다.

올바른 말투는 자취를 감추고, 좋은 말투 또한 모습을 감추며, 고운 말투마저 그림자가 스러집니다. 말마디를 옳게 다스리는 매무새는 숨죽이고 있으며, 글줄을 알차게 추스르는 몸짓이란 나날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고루 얼크러진 반가운 말을 나누는 사람을 만나기란 더없이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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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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