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날, 흙은 부드러워 누군가의 발자국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움푹 팬 흙의 가슴에 봄비가 내려 고였습니다. 고인 물, 그냥 떠나는 것이 아쉬워 신록의 봄을 담았습니다.
계곡의 잔잔한 물마다 하늘을 담고, 새순을 담아 겨우내 쌓인 낙엽들을 위로합니다.
'너희들 어릴 적 모습이야, 너희들이 썩어 저 생명을 키우는거라고.'물속에 잠긴 낙엽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젠 흙이 되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물은 숲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고 모여 계곡을 만들고 소를 만듭니다.
생명을 품고자 하는 숲의 마음, 그들이 자신들이 키워낸 생명을 마음에 담는 것이지요.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반영된 그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담고 사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돌아봅니다. 내 안에 담긴 것, 내가 반영한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돌아봅니다.
내 안에 담긴 것 아름답길 원하지만, 내 삶의 실체를 보면 그런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이 맑은 하늘을 담아낼 수 있는 법입니다.
내 안에 맑은 것들이 담겨 있지 않다면, 세상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입니다.
바람에 나무는 흔들려도 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흔들리지 않아도 물이 흔들리면 세상을 담을 수 없습니다.
많은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도 담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흔들린 까닭입니다.
숲 그리고 봄, 이 둘의 조화는 완벽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 보듯 비춰보고 싶어 거울을 보듯 물에 반영된 자신들을 바라보며 치장하는 중입니다.
어떤 곳은 아주 작은 손거울인 듯 작은 물을 남겨두었습니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나무와 하늘이 들어와 있습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나는 숲으로 달려갑니다.
천천히 걸어가며 그들과 호흡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연록의 봄빛, 맑은 하늘 물에 잠겼습니다.
붓으로 찍어 그림을 그리면 수채화 한 점 그려질 듯, 연하고 고운 봄빛, 맑은 하늘이 물에 잠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